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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 생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배동미 사진 최성열 2020-10-22

데뷔작에서부터 배우들에게 이처럼 사랑을 받은 감독이 있을까. 배우 유아인은 <소리도 없이> 제작보고회에서 “오늘 자리는 홍의정 감독을 스타 감독으로 만들기 위해 초석을 다지는 자리”라고 이야기했다. 인터뷰 때 만난 홍의정 감독은 당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 말을 다시 들으니 땀이 난다”라며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소리도 없이>는 데뷔 전부터 홍의정 감독이 꾸준히 주목해온 생존이란 주제를 다룬 영화다. 기묘한 듀오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은 조직원이 살인을 저지를 때 나타나 피가 튀지 않도록 바닥에 비닐을 깔아주고 피해자의 목숨이 끊어지면 아무도 모르게 시체를 암매장한다. 살인방조죄에 사체유기죄까지 저지르는 이들이 순하고 성실한 직장인처럼 보여 마음이 쓰이는 탓에, 범죄는 괄호가 쳐지고 홍의정 감독이 만든 영화적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신인감독의 영화적 세계가 담긴 대본에 응한 유아인과 유재명 또한 비슷한 마음이었으리라.

-어떻게 평범한 얼굴로 범죄에 가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나.

=어린 시절 <별주부전>을 읽고 화가 났을 때부터다. 토끼가 꾐에 넘어가 잡혀갔는데, 용왕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간을 내놔야 할 위기에 처한다. 친구들은 토끼가 얄밉다고 하더라. 거북이는 용왕을 아끼면서 성실히 일했을 뿐인데 토끼가 거북이를 속였다는거다. 토끼는 생존하려고 한 것뿐인데 억울하고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별주부전>이 납치와 관련이 있다 보니, <소리도 없이> 역시 범죄와 관련된 영화가 됐는데 사실은 생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별주부전> 속 토끼가 초희(문승아)인가.

=맞다. (웃음) 초희가 처음 등장할 때 쓰고 있는 가면도 토끼 모양이다. 그저 약자로만 보이지 않았으면 해서 강해 보이는 토끼 가면을 씌웠다. 거북이는 유아인씨다. (웃음)

-주요 배경이 되는 시골을 어느 지역이라고 특정하기 어려웠다.

=충청도 외진 시골에서 자라 충청도로 생각하고 만들었다. 개인사가 영화에 조금씩 묻어 있다. 어린 시절에 봤던 어른들이 영화 속 캐릭터에도 담겼다. 예를 들면 내가 살던 곳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소외된 사람들이 살았다. 그중 나와 친했던 개장수 청년도 있었다. 어렸던 그땐 개를 판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고 그저 개를 많이 키우는 사람으로만 알았다. 친구들이 ‘개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그분이 태인 처럼 말이 없었다. 어느 순간 개가 팔려간다는 걸 깨달았고, 개를 파는 행위와 개를 예뻐하는 게 다른 문제란 걸 그때 알았다. 그분은 개를 되게 예뻐했다. 개 아저씨에게 손님을 데려오는 연결자도 있었는데 창복 같은 사람이었다. 말이 많았고, 개 아저씨를 가족처럼 챙겼다. 태인과 창복이 100% 그들과 같다고 할 순 없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의 특징을 조금씩 가져오게 됐다.

-유아인에게 태인을 “영역을 침범당한 고릴라”와 같이 표현해달라고 주문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고릴라는 사실 무서운 동물이 아니라고 한다. 대부분 초식을 하고 개미 정도만 먹는다. 유아인 배우에게 레퍼런스 영상을 보내줬는데, 고릴라가 어딘가에 숨어서 개미를 먹는 장면이었다. 외모는 무서워 보이지만 개미를 먹는 동물이니까 자연스럽게 개미를 섭취하는 거다. 태인도 범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외모도 거칠어 보이지만, 마음 만은 우리의 생각과 달랐으면 했다. 물론 겉보기에도 고릴라와 같은 걸음걸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유재명에겐 어떤 주문을 했나.

=사회성이 아주 뛰어나다기보다 자기 나름대로 암기를 해서 능수능란해진 사람처럼 표현해달라고 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데 버릇이 들어 물건까지도 높여서 말하는 사람. 예를 들면, “컵께서”라고 말실수하는 사람. 창복의 아이러니를 전달하고 싶어서, 창복이 태인에게 소중하게 전달하고 싶어 하는 말이 많지만 그 내용이 정말 쓸데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태인이 초희를 떠맡게 되어 집으로 데려가는 장면에서, 옷가지가 널린 방뿐만 아니라 옷더미에서 등장하는 태인의 여동생 문주(이가은)의 이미지가 압도적이다.

=초희와 반대되는, 동물 같은 아이가 있었으면 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구분되지 않고, 졸리면 자고 먹고 나면 먹은 걸 그대로 두는 아이. 그러다 보니 집이 좀 지저분해져야겠더라. (웃음) 태인 역시 집을 방치했을 것 같고, 남매가 양쪽에서 협공을 펼치는 바람에 방이 지저분해졌을 것 같다. 마치 창복과 태인이 선후배이듯, 초희와 문주도 선후배로 묶고 싶었다.

-초희 이야기도 하고 싶다. 문주를 씻기고 집을 치우면서 납치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똑똑한 아이로 그렸더라.

=아이를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았고, 표정 변화를 통해 속으론 생존하려고 이렇게 행동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초희는 삼대독자인 남동생과 계속 비교당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과 남동생의 가치가 달랐기 때문에, 초희는 그 부족함을 채우는 방법을 경험적으로 깨우쳤을거다. 빨래, 요리, 동생 돌보기도 그 과정에서 습득했을 것이다.

-극을 이끄는 태인과 창복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두번 준다고 느껴졌다.

=모든 캐릭터들이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면서 앞만 보는데, 누군가는 옆을 봤으면 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태인만 뛰어내리는 거다. 말한 것처럼 모든 캐릭터에게 두번씩 기회를 줬다. 한번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해서 한방에 나쁜 결과를 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태인이 마지막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옳은 결정을 했을 때 항상 좋은 결과가 온다는 건 증명되지 않은 명제다. 나는 불행도 행복도 무작위로 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카타르시스를 주고 나 또한 정말 좋아하지만, 내가 <소리도 없이>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건 생존의 이야기였다.

-구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영화 마지막에 태인이 굴다리 아래에서 검은 정장을 벗어던지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멈춰 세운 건가.

=태인이 결핍이라고 느꼈던 욕망을 해소하는 순간이다. 그러면서도 선과 악이 섞이는 연출을 하고 싶었다. 선한 결정을 할 때 마침 조폭의 옷을 입고 있다. 결국 태인은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뒷이야기까지 보여주면 어떨까도 생각했지만, 태인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2016년에 베니스국제영화제 제작 프로그램 ‘베니스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영상원과 런던 필름 스쿨을 다니면서 워크숍을 많이 경험했을 텐데 베니스 워크숍은 어떻게 달랐나.

=한달 정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먹고 자면서 참여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진행됐기 때문에 피 토할 것 같은 심정으로 임했다. (웃음) 이야기 속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내 스토리를 분석하기도 하고 내가 다른 사람의 스토리를 분석하기도 했다. 또 할리우드와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분들이 강의했는데, 스토리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중요한 걸 남기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는 과정을 한번 겪으면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의 원형이 나왔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는 뭔가.

=늘 공상과학을 좋아했다. 단편도 다 공상과학 장르였다. 현실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 워낙 크다 보니 그걸 바꿀 수 있는 곳은 오히려 현실이 아닌 배경이어야 하는 것 같다. 현실이 비틀어져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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