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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④] '테넷' 배우 로버트 패틴슨·엘리자베스 데비키·케네스 브래너 인터뷰
안현진(LA 통신원) 2020-09-01

<테넷> 배우 로버트 패틴슨, "모든 퍼즐이 완성되자 두려울 정도였다"

배우 로버트 패틴슨.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란의 대본은 복잡하고 정교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던 때 이야기를 해달라. 놀란이 어떻게 새로운 영화를 설명했나.

=크리스와 처음 만났을 때 일로 만났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사적이고 친밀한 분위기였다. 그의 사무실은 집 안에 있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집이다. 처음 만나서는 대본에 대해 듣지 못했고, 영화를 준비한다는 말도 없었다. 세 시간 반을 앉아서 크리스와 이야기하는 동안 <테넷>에 대해서는 한 단어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아, 이건 미팅이 아니었나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에 크리스가 새 대본을 쓰고 있다면서 며칠 뒤에 다시 만나서 대본을 읽어보겠냐고 말했다. (웃음)

-세 시간 반이라니,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대본을 읽는 데만 네 시간 이상 걸렸다고 했는데, 대본을 이해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나.

=(웃음) 그래서 거의 끝날 즈음에 당이 떨어져서 쓰러질 것 같았다. 테이블에 <테넷>의 제작자이자 크리스의 아내인 에마 토머스가 준 초콜릿이 몇개 있었다. 먹어도 되냐고 묻고 하나를 입에 넣었을 때 크리스가 “만나서 반가웠다”고 말하는 거다. ‘아, 먹지 말았어야 했어. 이건 테스트였구나!’ 하고 순간 후회했다. (일동 웃음) 다시 대본을 읽으러 크리스의 집에 갈 때까지 어떤 정보도 없었다. 영화를 보면 알게 되겠지만, 하나의 장르로 딱 규정할 수 없는 이야기다. 어떤 장르로 시작했다가도 이내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의 스코프는 계속해서 확장한다. 사소한 디테일, 트릭 하나하나가 모두 연결되어 영화의 규칙을 완성한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몇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고,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져 완성된 큰 그림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았을 때 두려울 정도였다. 이건 크리스가 정말 잘하는 분야이다. 그의 영화 중에 인상적이지 않은 영화는 없었지만 이 영화는 정말 작정하고 만든 것 같다.

-오디션 없이 캐스팅됐나.

=없었다. 크리스가 캐스팅 권한을 전적으로 갖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처음 만났을 때 연기에 대해서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배우가 가진 자신감의 정도, 역할을 연기해낼 수 있는 능력, 이런 걸 보는 것 같았다. 그만큼 크리스는 스튜디오로부터 전적인 신뢰를 받고 있었다. 요즘 이 정도 제작비가 투입되는 오리지널 스토리는 유니콘이나 다름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이기에 가능한 영화다.

-영화의 내용을 말하지 않고 캐릭터에 대해 최대한 설명한다면.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연기한 캐릭터의 동료다.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그는 영국인이다.

-촬영 중에 장면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촬영했나. 크리스토퍼 놀란이 영화의 큰 그림이나 청사진을 공유했나, 아니면 조각 정보를 가지고 장면을 만들어갔나.

=케네스 브래너, 존 데이비드 워싱턴, 엘리자베스 데비키,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전체 대본을 볼 수 있었던 배우들이었다. 스턴트 코디네이터도 크리스에게 원본 대본을 받아서 내용을 확인했고, 우리 각자의 대본도 마치 폭탄을 담은 서류가방 같은 데 각각 담겨져 있었다. 물론 추적장치가 달려 있었다. (웃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본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거대하고 비싼 영화를 중간에 수정하기란 불가능하다.

<테넷> 배우 엘리자베스 데비키 - 감독의 재능과 배우의 최선이 만났을 때

배우 엘리자베스 데비키.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란은 로버트 패틴슨에게 대본을 주기 전에 먼저 만났다고 하던데, 당신의 경우는 어땠나.

=2019년 2월경에 크리스와 만났다. 차 몇잔을 마시면서 일과 삶, 그 사이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몇주 뒤 크리스가 오디션을 제안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오디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캐스팅 확정 소식을 들었다. 대본은 그다음에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의 작은 방에서 혼자 읽었다.

-대본만 보고도 놀란 감독의 설정을 이해하기 쉬웠는지 궁금하다.

=대본은 상당히 복잡한 컨셉을 담고 있었고, 여러 번 다시 읽어야 했다. 많은 기자들이 대본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질문하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지휘관이 있으니 언제라도 물어볼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대해 당신의 경험을 얘기해준다면.

=크리스는 내가 이전까지 본 적 없는 수준의 리더십을 촬영장에서 보여줬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몸과 정신을 온전히 한곳에 집중해 촬영장의 사람들을 압도했다. 많은 스탭들이 이미 자기분야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었는데, 크리스와는 비교하기 어려웠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가 만든 세계에 대해 크리스는 연출가로서 완벽한 범주의 뇌를 따로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천재적인 감독과 최선을 다하고 싶은 배우, 이 조합은 촬영장에서 최고를 뽑아냈다. 크리스의 현장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해서 그 에너지를 느끼는 것이 배우로서 큰 기쁨이었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배우들은 공간의 모든 에너지를 느끼고 싶어 한다. 조금도 새어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 크리스는 그 에너지를 충분히 잡아둘 수 있는, 이제껏 한번도 본 적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몸연기가 좋은 사람, 신체능력이 좋은 사람, 이를테면 존 데이비드 워싱턴 같은 사람과 액션 연기를 맞추는 건 어떤 경험인가.

=한마디로 존 데이비드와 경주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웃음) 친교적인 의미에서 남자배우들 사이에 경쟁심이 불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지금까지 영화 현장에서 푸시업 대결을 정말 많이 본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아니었다. 모든 액션이 너무나 치열해서 다른 데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었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각자가 스스로를 추스르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서는 몇 시간이고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존 데이비드는 사실 그런 장면에서 용기를 북돋는 역할을 했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액션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응원해줬다.

-<테넷>을 촬영하며 시도한 도전이 있다면.

=첫 번째는 <테넷>의 영역을 이해하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이야기를 이해하고 그 속의 역할을 할 준비를 갖추는 것, 영화를 본 뒤에는 나의 고민이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영화 촬영 기간이었다. 배우로서 이 영화보다 오래 촬영한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촬영 기간이 긴 것뿐 아니라 내내 긴장을 유지해서 더욱 그랬다.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말하고 나니 그렇게 좋게 들리지 않는데, 사실은 긍정적인 경험이었다.

<테넷> 배우 케네스 브래너 - 젠틀맨의 얼굴을 지우고

배우 케네스 브래너.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지난 4월에 있었던 <테넷> 비디오 정킷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주연배우 4명에게 대본을 전달한 방식이 모두 달랐다는 사실이다. 존 데이비드 워싱턴, 로버트 패틴슨과는 사적으로 우선 만난 뒤에 감독 권한으로 캐스팅을 결정하고 대본을 전달했다. 엘리자베스 데비키의 경우, 사적으로 우선 만난 뒤에 강도 높은 스크린 테스트를 거쳐 캐스팅 확답을 내렸다. 그러나 케네스 브래너는 달랐다. 놀란 감독이 직접 브래너의 집으로 찾아가 대본을 전달했다. 제작자 에마 토머스는 브래너의 캐스팅 방식을 두고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케네스를 영화에 캐스팅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브래너는 “긴말 없이 대본을 건네준 크리스는 내가 다 읽으면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4시간이 지나 두 사람은 다시 만났고, 놀란은 브래너가 이 영화에 기여할 수 있는 공헌에 대해 말했다.

<테넷>에서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한 캐릭터는 악역 안드레이 사토르다. 캐릭터의 이름조차 발설할 수 없었던 지난 4월의 인터뷰에서 브래너는“악당 역이다. 어두운, 어두운, 어두운 영혼을 가지고 있다”라고 짧게 설명했다. 놀란 감독은 사토르를 연기할 브래너에게 이전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좋은 남자, 평범한 남자의 한 조각이라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매 순간 강조했다. 때문에 사토르만의 말투와 개성을 유지하기 위해 브래너는 촬영이 시작되고 난 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고한다.

두 사람이 감독과 배우로 인연을 맺은 첫 작품은 <덩케르크>(2017). 배우로 먼저 알려졌지만 데뷔 이래 꾸준히 감독으로서의 필모그래피도 쌓아온 브래너는 <테넷>을 위해 직접 집까지 찾아온 놀란의 정성에 감동해 다시 한번 놀란의 카메라 앞에 섰다. “크리스는 내게 찾아온 그날부터 전화, 화상통화, 촬영장에서의 연출, 가벼운 대화 등 어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감독의 권한을 강요한 적이 없다. 되도록 자신을 적게 드러내지만 충분히 디렉션을 전달하며 배우에게 많은 재량을 허락했다. 그럼으로써 영화의 놀라운 순간이 탄생하도록 배려했다. 그처럼 디테일이 완벽한 감독이 배우에게 즉흥성을 허락한다는 건 멋진 대칭이다.”

때때로 현장에서 브래너는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크리스토퍼 놀란을 관찰하기도 했다. <토르> <신데렐라> <오리엔트 특급 살인> <아르테미스 파울> 등 영화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브래너는 “크리스가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겐 특권이었다.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최고의 수업을 들은 셈이다”라고 전했다. 브래너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에 이어 또 한편의 애거사 크리스티 원작 소설인 <나일 강의 죽음>을 영화화해 개봉을 준비 중인데, <나일 강의 죽음> 촬영에 <테넷>에서 사용된 65mm 파나플렉스 카메라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관에서 신작을 관람하기 어려운 요즘, 브래너는 고전영화를 다시금 감상하며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위대한 탈출> <라쇼몽> <치티치티 뱅뱅> <사냥꾼의 밤> 등 다채로운 고전영화 아카이브 속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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