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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③] '테넷'의 물리학 개념을 Q&A로 물어봤습니다
임수연 2020-09-01

“<테넷>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 석사가 필요하다.”(<SFX 매거진>의 로버트 패틴슨 인터뷰) 실제로 <테넷>은 엔트로피부터 반물질, 열역학에서 양자역학을 아우르는 물리학 개념들이 쏟아져 나와 관련 지식이 없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테넷>을 본 관객이 가장 궁금할 법한 질문을 모아서, 가능한 한 쉽고 친절한 설명을 시도해보았다.

도대체 엔트로피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엔트로피를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다. 엔트로피란 ‘계(system)의 무질서도’를 뜻한다. 예를들어 꽃병에 꽃을 꽂으면 그 향기가 방 전체에 퍼지고, 물에 잉크를 떨어뜨리면 물 전체로 퍼지고, 소금을 물에 넣으면 짠맛이 고르게 나는 소금물이 된다. 이때 분자들은 무작위 방향으로 움직이며 확산되는데, 이는 분자들이 취할 수 있는 수많은 결과 중 가장 가능성 높은 형태에 해당된다. 때문에 계의 무질서도, 즉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게 된다. ‘열역학 제2법칙’은 이런 경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설명도 어렵게 느껴진다면 청소를 하지 않고 방치해둔 방을 떠올리자. 옷가지와 책, 머리카락이 뒹굴며 점점 난장판이 된다. 그렇게 방의 무질서도, 즉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방을 청소하지 않는 한 방이 알아서 깨끗해지는 일도 없다. 그 확률은 너무 낮기 때문이다. <테넷>의 극중 대사처럼 엔트로피는 줄어들 수 없다.

엔트로피의 감소로 국소적 시간 역행이 가능하다는 <테넷>의 설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엔트로피는 기본적으로 감소할 수 없지만,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있을 만한 조건을 상상한 과학자는 있다.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이다. 그는 분자의 운동을 모두 알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속도가 빠른 분자와 속도가 느린 분자를 분리해 따로 존재하게 한다면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이것이 <테넷>에서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가 만나는 과학자의 연구실 칠판에 적혀 있던 ‘맥스웰의 도깨비’(Maxwell’s demon)다. 영화에서 믿음, 운명, 선지자 같은 종교적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맥스웰의 초월적 존재를 염두에 둔 가정과 무관하지 않다. <테넷>에서 미래의 어떤 존재가 과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까닭은 ‘인버전’이라는 기술이 미래에 가능해졌다는 가정 덕분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버전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나 <어바웃 타임> 등의 작품에서 봤던 시간 여행과는 다른개념이라는 거다. 현재의 상태를 과거의 상태로 돌려놓는 인버전 기술은 주인공이 경험하는 시간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처한 환경만을 과거의 그것으로 바꿀 수 있다. 덧붙이자면 현실에서도 엔트로피가 감소할 만한 사례가 있다. 이를테면 엔트로피는 온도가 높아질수록 증가하는데, 냉장고에 콜라를 넣어두면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것 아닐까? 냉장고 안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냉장고를 작동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는 결국 외부로 열을 방출시킨다. 때문에 집 전체, 지구 전체, 우주 전체로 보면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한다.

인버전 상태에서 호흡기를 쓰는 이유는? 화염에 휩싸였던 주인공은 왜 저체온증에 걸리는가?

사람은 산소를 흡입하고 일련의 호흡 과정을 거친 후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 역시 엔트로피 증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화학반응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므로 여기에선 생략한다. 인버전 상태에서는 사람이 이산화탄소를 마신 후 호흡의 역과정을 거친 후 산소를 배출해야 한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사람은 질식해서 죽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버전 상태에서 극중 인물들이 호흡기를 끼고 있는 것이다. 인버전 후 남편에게 복수하는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은 왜 호흡기를 끼지 않느냐는 질문이 적지 않게 있다. 그는 인버전을 통해 베트남 요트 시점의 상태로 간 후 다시 인버전을 했기 때문에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비가역적 상황을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호흡기가 필요하지 않다. 한편 앞서 언급한 대로 온도가 높아질수록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고속도로에서 화염에 휩싸였던 주도자는 원래대로라면 점차 체온이 올라가고 엔트로피가 상승하겠지만, 인버전 상태에서는 오히려 엔트로피가 감소하며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다. 주도자가 저체온증에 걸렸다는 직후 장면의 대사는 엔트로피 역행 개념을 이용해 만들어낸 <테넷>만의 일종의 유머다.

하지만 영화에 좀더 엄격한 과학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설명하지 않고 지나가는 부분도 허다하다. 인간은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는 음식물에 포함된 영양소를 분해해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로 저장하고 부산물을 방출한다. 이 모든 과정이 인버전된다면 호흡기를 끼는 것만으로 사람이 버틸 수 있을까? <테넷>의 장르가 기괴한 호러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왜 인버전한 자신과 마주치면 안되는가?

대사 중에도 한번 언급되는 ‘물질’과 ‘반물질’을 영화의 아이디어로 끌어온 것으로 보인다. 양자물리학에는 원래 물질과 성질이 반대인 반물질 개념이 있다. 가령 전자의 반물질은 양전자, 양성자의 반물질은 반양성자다. 주도자가 싸웠던 인물이 알고 보니 인버전한 자신이었고, 서로 얼굴을 봐서는 안된다는 대사는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시간은 사라지고 두 물질의 질량에 해당하는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는 ‘쌍소멸’ 개념과 연결된다. 물론 미시 세계의 입자물리학이, 아무리 인버전됐다고 하더라도 거시 세계에서 똑같이 적용될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증명된 바가 없다. 현대물리학의 다양한 개념을 끌어온 <테넷>이 발휘한 영화적 상상력으로 수긍하는 편을 놀란 감독 본인도 원할 것이다.

‘할아버지의 역설’이란 무엇인가?

미래의 내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테넷>에서 이야기하는 ‘할아버지의 역설’이다. 영화에서 닐(로버트 패턴슨)과 주도자는 자신들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지구를 멸망시키려던 사토르의 계획이 성공하지 못했음을 짐작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할아버지의 역설은 <테넷>과 큰 관련이 없다. 주도자와 닐 일행은 시간 여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로 가서 무언가를 바꾸고 불가능했던 일을 실현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의 어떤 상태로 간 후,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던 일을 벌어지게 한 것이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라는 닐의 대사는 교묘하게 할아버지의 역설을 피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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