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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8 스페셜] 영상화 추천하는 한국 SF소설들, 그리고 당신이 알아둘 만한 한국 SF작가들

김혜수가 곤룡포를 입은 대한제국 황제로…

이산화 <나를 들여보내지 않고 문을 닫으시니라>

이산화는 이상한 작가다. 그가 다루는 소재들은 어쩌다 이런 데까지 관심을 가졌을까 싶을 정도로 기이하고, 그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뭘 이렇게까지 파고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집요하다. 외계인에, 음모론에, 화학에, 멸종위기종에, 디저트에, 게임에 이르기까지, 그가 다루는 교양 일반은 그래서 흥미롭다.

그런 그의 작품, <나를 들여보내지 않고 문을 닫으시니라>는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의 수록작으로, 우주탐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뒤 홍수에 대한 악몽에 시달리게 된 해양학자가 꿈을 테마로 하는 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겪는 사건을 다룬다. 이렇게 소재를 나열하기만 하더라도 이 작품에 잠재된, 우주과학과 기독교 그리고 현대미술을 아우를 영상미가 떠오르지 않는가? 물론 이 작품에 담긴 주제의식 또한 근래 한국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이야기이기에 영상화를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듀나 <구부전>

19세기 조선, 고아가 된 주인공이 학자 집안에 시집을 간다. 하지만 곧 학자 집안에 우환이 닥친다. 남편은 죽고 시아버지는 중병을 앓게된 것이다.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지 며칠이 지나 집안에는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 죽은 시아버지가 흡혈귀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시아버지는 가족 대부분을 흡혈귀로 만들고는 조선에 유교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지배체제를 세우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주인공은 남장을 한 채 바깥으로 나가 먹잇감을 가져오는 임무를 맡으면서도, 언젠가 이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질로 잡힌 가족을 구출할 계획을 세운다. 도입만 적었는데도 이렇게 재밌는 <구부전>이다. 저자 후기를 보면 애초부터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집필한 작품이라고 한다. 비록 완성까지는 가지 못했다고는 하나, 이야기에 담긴 잠재력은 작품을 읽은 누구나 느낄 터이다.

해도연 <안녕, 아킬레우스>

해도연의 소설집 <위대한 침묵>에 수록된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을 처음 읽고서, 나는 이 작품이야말로 대자본을 투자받아 영상화가 되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토성의 위성, 에우로파의 빙하 속 바다에서 살고 있는 외계생물체와의 조우를 북유럽신화와 연결 지은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내 뇌에서는 작중의 모든 묘사가 과학적으로 정교하면서도 신화적으로 장엄한 영상으로 변환되어 송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면에서 추천하려는 작품은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에 수록된 <안녕, 아킬레우스>다. 이 단편은 비유로 말하자면 코고나다가 감독한 <사랑의 블랙홀>이다. 내용적인 이유로 코고나다 보다는 데이비드 핀처를 떠올릴 독자가 많았겠지만, 나를 믿어도 좋다. <안녕, 아킬레우스>는 코고나다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숨겨진 위태로움과 이를 뒤흔드는 이방인의 방문 그리고 아름답지만 질식할 것만 같은 이야기를 읽노라면 정답은 확연하다.

김보영 <저예산 프로젝트>

SF는 언제나 로맨스의 멋진 단짝이었다. 8광년 떨어진 연인을 다룬 <별의 목소리>나 시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인 <사랑의 은하수>를 떠올려보라. 로맨스의 맛을 돋울 시공간적 장벽을 SF처럼 극단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장르가 또 어디 있던가? 그리고 이런 SF적 오작교를 가장 잘 다루는 작가를 꼽으라면 당연히 김보영을 말해야겠다. 김보영의 오랜 팬이라면 앞 문단을 보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비롯한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를 이야기하려나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상화를 권한다면 게임 업계를 경험한 작가들이 모여 제작한 앤솔러지 <엔딩 보게 해주세요>의 수록작 <저예산 프로젝트>를 들고 싶다. 이 작품은 증강현실게임을 통해 이미 세상을 떠난 게임의 제작자를 추억하고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시공간 수준이 아니라 차원을 넘어서는 러브 스토리인 셈이다.

손지상 <우주아이돌해방작전>

인류가 우주에 진출한 미래, 배달의 민족-한족은 우주 택배기사로 은하수 곳곳을 유랑한다. 이 우주 화물선의 선원들은 케이팝락킹, 비보이타이, 하카라테 그리고 힙합기도까지 이르는 무술춤-마샬댄스의 고수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주에는 이렇게 유쾌한 집단만 있지는 않다. 자칭 위대한 총괄 프로듀서, 아돌하라 쇼틀러가 버추얼 아이돌을 앞세워서 조직한 소아성애파시스트 집단인 아르탄당이 은하를 정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주아이돌해방작전>의 세계관 설정이다.

만약 야망 가득한 누군가가 <우주아이돌해방작전>의 영상화에 도전한다면 이 소설로 써진 불화(佛 )를 다시 화면에 옮겨야만한다는 험준한 실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더 기대되기도 한다. 은하를 누비는 택배기사들이 K팝에 맞춰 배틀을 벌이는 장면을 문장이 아닌 영상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테니까.

문목하 <돌이킬 수 있는>

커다란 재앙이 도시를 덮치자 국가는 이 사건을 은폐하고자 한다. 하지만 멸망한 도시에는 생존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재앙의 여파로 초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국가비밀정보조직은 이 생존자들을 통제하기위해 두 세력으로 나뉜 생존자 집단에 유형무형으로 간섭하고자 한다. 이렇게 구성된 세 집단을 오가야 하는 한명의 여성이 있다. SF 누아르 <돌이킬 수 있는> 도입부의 간략한 요약이다.

부디 이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투박하게만 요약한 나를 용서해주기 바란다. 변명하자면, <돌이킬 수 있는>의 문장과 행간 사이에 스며든 치열함을 몇 문장으로 전달하기란 누구라도 쉽지 않을 일이다. 나는 그저 이 작품을 영상으로도 보고 싶으며, 그 이상으로는 더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 이는 문목하의 팬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바일 터이다.

홍지운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뻔뻔하게 내 소설도 언급해본다.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은 대한제국이 입헌군주제의 형태로 21세기까지 지속된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대체역사물이다. “아, <> 같은 건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는데, 좀더 보태자면 <>을 베이스로 한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칼바니아 이야기>풍으로 쓴 글이었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 대한제국의 황제는 여성이고,차기 후계자로 낙점된 공주는 황실폐지론자인 강경 운동권이라는 정도의 작은 차이가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날 내 머리 속에 “김혜수 배우가 곤룡포를 입고 21세기 대한제국의 황제로 군림하는 모습을 재현하라”라는 괴전파가 수신된 것이다. 나는 그 괴전파의 명령에 따라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을 집필했으며 여전히 이 명령에 사로잡힌 상태다. 김혜수 배우님, 부디 출판사에 연락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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