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하고 집요하다. 다르덴 형제와 소년은 익숙한 조합이지만, 아메드(이디르 벤 아디)는 다르덴의 어떤 인물보다 마음을 굳게 잠근 채 곁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이슬람 급진주의에 빠진 아메드는 일상에서 가족과 선생님에게 말로 상처를 입히는 데 이어, 선생님에게 실제적인 상해를 입히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가 아직 아이 티를 벗지 못한 13살 미성년이라는 사실은 그의 행동을 더욱더 위태롭게 만든다. 실제의 차원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영화를 통해서야 비로소 마주 볼 수 있는 소년의 얼굴을 한 광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했나. 서면으로 진행된 다르덴 형제와의 인터뷰에서 손을 내밀 수도, 거둘 수도 없는 딜레마 속에 있는 관객을 힘껏 떠민 의중을 물었다.
-비전문 배우 주연의 영화로 돌아왔다. 배우의 경력에 따라 작업 방식에 차이를 두기도 하나.
=전문 배우들은 자신의 몸과 목소리를 조절할 줄 알고, 비전문 배우들은 각자 삶에서의 모습 그대로를 가져온다. 하지만 실제 촬영장에서 몇주에 걸쳐 작은 카메라로 리허설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이때 대사보다는 배우의 신체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인다. 배우가 몸을 통해 극중 인물이 될 때 대사의 리듬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리허설을 하다보면 배우들이 ‘진짜 거기에 있는’ 상태에 도달했음을 느낀다. 우리 영화에서 즉흥적인 것은 하나도 없지만 테이크가 길다 보니 정확히 똑같은 장면은 없다. 배우들이 연기하거나 카메라가 움직이는 동안 발생하는 작은 변화들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관객은 지금, 이 순간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구성에서 벗어나는 무언가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많은 구성이 필요하다.
-유럽에서 발생한 실제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종교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 어떤 고민을 했나.
=이슬람을 비롯해 특정 종교를 비난하고자 하지 않았다. 맹신은 모든 종교와 일부 정치이데올로기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속 아메드의 엄마는 광신자가 된 청년을 마주한 우리의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려 노력한다. 영화 마지막, 맹신에서 벗어난 주인공이 살기 위해 부르는 이가 이맘(오스만 모먼)이나 마호메트 또는 알라가 아니라 엄마이기 위해서는 테러를 저지르는 이들보다 훨씬 어린 인물이어야만 했다. 우리는 불순하고 이질적이며 낯선 이와의 만남이 끊이지 않는 삶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그간 묘사해온 인물에 비해 아메드는 가장 가해자에 가까운 인물이 아닐까 싶다.
=아메드를 무섭게 만드는 것은 강력한 세뇌의 힘이다. 아메드는 이맘과 같은 사람에게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나이이며, 세뇌의 피해자다. 작업 초반에는 주인공이 당한 세뇌가 얼마나 깊으며, 광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상상하지 못했다. 세뇌는 아메드를 완전히 사로잡고, 삶에 대한 의욕까지 잃게 할 정도로 강력하다. 우리는 변화 가능성을 지닌 어린 주인공이 삶의 의욕을 되찾는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우리 눈에 아메드는 끝내는 삶의 의욕을 되찾은 소년으로 보인다.
-아메드의 행위는 실패하거나, 실행 직전에 멈춘다. 필연적으로 그래야만 했던 것 같다.
=아메드는 살인을 위해 훈련받은 전문 킬러가 아니다. 아메드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부엌에서 쓰는 작은 칼을 고르고, 칼을 다루는 것도 서툴다. 살해하고자 하는 행동이 어설프고 자신이 저지르려는 행동이 두려운 아이이므로 살해 계획이 미수에 그치게끔 했다.
-일반화하긴 힘들지만, 소년 범죄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까.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답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 또는 청소년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그가 살인을 저질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허락은 누가 하는 걸까. 아메드의 경우에는 종교지도자 이맘이었다. 다른 상황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어른들이 있다. 왜 이 어른들은 살인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바로 이것이 문제다. 이 문제의 당사자는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어른이 아닌, 증오에 찬 정체성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어른이다.
-이디르 벤 아디를 주인공 아메드 역에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안경을 쓰는 것도 고려했나.
=오디션 현장에서 시나리오의 한 장면을 다른 리듬으로 연기해보라고 요구했는데 정확히 그것을 해냈다. 그는 배우에게 꼭 필요한 리듬 감각을 지녔다. 이디르의 미소와 손, 걸음걸이, 달리는 모양에는 아이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이디르가 간직한 어린아이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으며 주인공이 유년기에서 사춘기로 넘어가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려 할 때, 그가 다시 삶으로 되돌아오기를 관객이 마음속으로 희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루이즈(빅토리아 블럭)와의 관계에서 아메드의 변화 가능성이 드러나는데.
=루이즈와의 장면은 다른 장면과 달리 와이드숏과 고정숏으로 촬영했다. 바람이 불며 들판의 풀과 루이즈의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여느 아이들처럼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에 눈뜨는 순간을 담았다. 하지만 이것이 아메드를 광기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슬람 광신도들을 상담한 교육자, 심리학자, 심리분석자를 여럿 만나본 결과, 광신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심지어 엄마까지도 광신도로 만들며 그 반대의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광기는 인간 내면 깊숙이 파고든다. 첫사랑으로 아메드가 다시 삶을 되찾는다는 설정은 우리가 볼 때 ‘형편없는 소설’처럼 느껴졌다.
-아메드의 광기가 스스로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될 굴레라면, 그의 곁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엄마의 사랑, 주변인의 공감과 선의에도 불구하고 아메드는 단 한순간도 자신의 행위와 생각, 믿음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광신도들은 자신이 선을 위해 행동하며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은 옳고, 자신이 믿는 절대적인 진실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이나 행동은 파괴될 수 있거나 파괴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아메드가 이네스 선생님을 죽이려는 생각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우리가 마지막으로 찾은 방법은 말 그대로 아메드를 추락시키는 것이었다. 아메드가 인간의 유약함을 깨닫고 자신의 죽음에 직면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엔딩 크레딧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이 흐른다.
=2악장의 도입부는 강하고 내밀한 힘과 동시에 부드러움을 느끼게해준다. 음악은 아메드의 얼굴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이 사라지고 스크린이 검게 변하는 순간, 관객의 마음속에 아메드가 계속해서 존재하게 해준다. 엔딩 크레딧용 음악이 아니라,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 아메드의 얼굴이 한동안 잊히지 않게 해주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