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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인디포럼2020의 상임작가 4인, 백재호·백종관·송효정·조민재 - 영화의 실험, 영화제의 진화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20-07-30

백재호, 송효정, 백종관, 조민재(왼쪽부터).

인디포럼이 2년 만에 다시 관객의 품으로 돌아온다. 1996년 ‘인디포럼96’으로 시작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영화제로 자리매김한 인디포럼은 그간 새로운 한국 독립영화의 발굴, 상영, 소통, 비평의 장으로 기능했다. 인디포럼작가회의가 주관하고 독립영화인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비경쟁 영화제로서 영화적 실험, 그리고 독립영화계의 자정과 자생에 관심을 기울여온 인디포럼. 지난 한해 영화제를 쉬어가며 영화제 본연의 의미를 점검하고 프로그래밍에 심혈을 기울인 상임작가진 중 백재호·백종관·조민재 감독, 그리고 송효정 평론가를 만났다. 개막작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종이접기 튜토리얼>과 배우 최희서의 사회로 7월 23일 개막하는 인디포럼2020은 7월 27일까지 5일간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인디포럼을 움직이는 작가회의는 인디포럼에서 상영된 적 있는 작품의 감독, 배우, 작가, 스탭 그리고 평론가 등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다. 최근 상임작가들의 면면을 소개해달라.

백재호 조직위원장 성격인 의장직을 선출하지 않았다는 게 인디포럼2020 상임작가진의 가장 큰 변화다. 박홍준 전임 의장 이후 새 의장을 선출하지 않고 상임작가들이 일을 분담해서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오늘 참석자 외에 김기문·김태진·송주원·양시모·이건욱·이완민·이현빈·최이다·한태희 감독 그리고 정지혜 평론가까지 총 14명의 상임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송효정 지금 모인 분들은 대체로 2018년부터 어려운 시기를 쭉 함께해온 분들이다.

백종관 가입 후 어떻게 활동할지, 시기와 기간 등은 전적으로 자유다. 영화제나 월례비행으로 새롭게 인연이 닿은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참여를 구애하고 있다.

-2019년에 영화제를 쉬고 조직 구성과 운영 방침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 영화제 운영의 새로운 변화가 있다면.

백재호 의장 없는 공동운영 방식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여부는 영화제가 끝나고 평가 회의를 통해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웃음) 예산 면에서는 당해 기준으로 2년 연속 개최되는 영화제만 서울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 때문에 올해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만 받았다. 전체 예산이 크게 줄어들면서 영화제 규모는 약간 축소됐다. 상영작 수는 줄었지만, 프리미어에 연연하지 않고 지난해 상영하지 못한 작품까지 포함해 넓은 범위에서 선정했다. 그리고 올해는 출품료를 받았다. 영화제의 몸집 불리기가아닌, 상영 활동가 임금 문제 등 지킬 건 지키면서 가보자는 취지였다. 활동가와 심사위원의 임금, 상영료 지급 등 우선 최소한의 비용이라도 정확히 책정하려 했다.

백종관 성평등위원회 활동과 조직 재정비 등 제도적인 보완만큼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올해는 특히 조민재 감독을 비롯해 새로운 안목으로 작품을 발굴해줄 심사위원(조민재·유은정·채형식 감독, 조영직 촬영감독, 김병규·채희숙 영화평론가)들과 함께했다.

-2018년 인디포럼 개막식에서 불거진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영화제를 다시 열기까지 내부적으로 어떤 과정이있었나.

송효정 2018년에 영화제가 끝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해 8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회의를 지속했다. 성평등위원회 및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성폭력 사건 재발 방지에 힘쓰는 동시에 인디포럼의 존재와 영화제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인디포럼영화제는 과연 필요한가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형태로 지속 가능할 것인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등…. 우리만의 성격과 개성을 질문했다. 사실 구성원들의 성향이 제각기 뚜렷해서 어떤 이슈든 쉽게 만장일치가 나오지는 않는다. 최선의 합의점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집단인데, 관객을 향한 영화제의 필요성만큼은 모두가 동의했다. 지난해 12월에 동시대 한국의 영화제에 관해 토론하는 ‘모두를 위한 각자의 영화제’ 포럼을 연 것도 그런 고민의 일환이었다.

백재호 상임작가들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이뤄진 집단인 만큼 성평등위원회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력과 역할이 컸다. 올해는 인디포럼 공식 홈페이지에 혹시나 영화제 기간 중성차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즉각 신고할 수 있는 성평등위원회의 핫라인을 안내하고 사건 처리 규정의 개정안도 공지했다.

-영화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영화제라는 점에서, 관객에게 인디포럼은 그동안 어떤 의미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는지 더욱 궁금하다.

백종관 이번에 상영 활동가 몇분을 새롭게 맞이하면서 지금까지 인디포럼이 걸어온 길에 대해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질적인 업무 안내도 중요하지만 인디포럼이 어떤 영화제인지 정체성을 공유하고 싶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시기별로 관객이 인디포럼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씩 달랐던 듯하다. 1996년에 ‘인디포럼96’으로 처음 시작한 후 초창기에는 흥행이 잘됐다. 2000년대 초중반에 부침이 있었지만, 독립영화의 플랫폼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한때는 입장 수익만으로도 영화제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다. 서울독립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까지 포함해 독립영화 신이 전반적으로 활성화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독립영화까지 볼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영화제 모객이 힘들어졌다. 관객도 반드시 인디포럼에 가야만 한다는 당위가 약해진 상태이고, 2010년대에는 오히려 영화를 본다는 것 이상의, 힙스터 문화의 일부로 수용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조민재 감독이 신작전과 기획전 프로그래밍에 모두 참여했는데 올해 선정작들 사이에서 감지된 경향성이 있나.

조민재 연출자의 입장에서 경향성을 섣불리 진단하는 것은 위험할 것 같고, 심사위원이었던 김병규 영화평론가의 말을 빌리고 싶다. “동시대 영화가 마주한 격렬한 소용돌이를 반영하는 타 매체와의 혼합, 장르영화적 변형 등의 영화에 대한 전통적인 판단에 재고를 요구하는” 작품, 그리고“영화 매체의 영역과 그 경계에 대한 다른 방식의 사유를 산출해”내는 모호하고 충돌적인 영화의 풍경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개막작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종이접기 튜토리얼>은 전시 작품에 가까운 영화들로 영화 매체의 정의와 상영 플랫폼에 관한 의제가 돋보인다.

조민재 영화, 그리고 영화제와 관련된 공간이 점차 소실되어감을 느낀다. 물리적 공간의 상실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 감각을 다시 일깨워줄 수 있는 영화들에 주목했다.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은 현실의 표면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카메라(촬영)가 제거된 영화로, 가상의 공간에서 물리적 주소의 배열을 찾아내고 접촉을 시도한다. <종이접기 튜토리얼>은 평면으로 이뤄진 오브제를 입체적으로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상실해가는 영화의 물리적 감각을 소생시킨다.

-‘장소, 유령, 스팟’, ‘배회하는 시네마의 주체들’ 등 신작전 외의 기획전 섹션들은 관객이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송효정 ‘장소, 유령, 스팟’의 <붉은 심장: 하얀 길목을 돌다>는 김소영 감독의 영화에 관해 김소영 감독 본인과 조민재 감독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다른 작품인 임철민 감독의 <야광>까지, 두 영화 모두 장소의 역사성을 탐문하는 작업과 존재론적 고민이 깃들어 있다. 김소영 감독이 지정학적 장소라면 임철민 감독은 특정 스폿의 역사성을 들여다본다. 기획전 명칭을 정할 때 이런 공통성에 유령이라는 말이 어울렸던 것 같다. ‘배회하는 시네마의 주체들’에는 동시대 장편영화에 대한 고민을 녹였다. 지금의 영화들이 무엇을 담론화하고 제언하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방식에 있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특정 아카데미 특유의 만듦새가 굳어지는 등 최근의 장편 극영화들 사이에서 우리가 원하는 무언가를 만나기가 어려웠다는 점을 짚었다. 장편 극영화 <여름날>과 장편다큐멘터리 <모아쓴 일기>를 묶어본 것도 그 둘 사이에서 질문, 배회하며 의미를 탐구해나가자는 제안에 가깝다.

-폐막작 <여름날> 외에 올해 상영작 중 장편 극영화가 장우진 감독의 <겨울밤에>뿐인 점도 비슷한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겠다.

조민재 주제마다 영화의 형상과 시선이 달라져야 하는데 지금의 작품들은 너무 비슷하다. 수많은 미디어를 끊임없이 접하는 시대인데, 전면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들을 다시 영화 안에 끌어들이는 느낌이 든다. 아직 정확한 언어를 찾지 못한 상태이지만 피상적으로 복제된다는 인상이 강하다.

-비평의 장으로서 영화제의 기능을 복원하려는 노력도 느껴진다.

백재호 무대인사 형식의 관객과의 대화(GV)로 꾸려지는 영화제 구성에 회의감을 느꼈다. 만남 자체가 짧은 것도 있고, 서로 좋은 말만 해주는 분위기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조민재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둔 김소영 감독과의 대화 <붉은 심장: 하얀 길목을 돌다> 외에도 이모지톡을 활용해 상영작 감독과 화상 인터뷰를 나누는 형태의 작업이 이후에 유튜브를 통해 업로드될 예정이다. 작가의 세계가 돋보이는 작품을 선정해 대화를 나누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언어화하려는 시도였다.

-올해 프로그램 중 ‘포스트 시대, 독립영화의 오토포이에시스’ 포럼이 눈에 띈다. 송효정 평론가가 사회를 맡고 변성찬 평론가, 이나라 이미지 문화 연구자, 함연선 <마테리알> 편집인, 한가람·김남석 감독이 참여한다.

송효정 이번 포럼은 영화제의 형식에 대한 우리의 관심,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영화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의미를 뒀다. 이제 어떤 영화들은 촬영 없이 편집실에서 완성되고(<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팬데믹 이후의 영화계를 예측하기 어려우며,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독립영화가 어떻게 자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도 여전하다. 포럼을 통해 고립된 상태를 벗어나 전반적인 산업 진단, 현대 영화의 이미지, 대안 비평, 독립영화감독의 작업기 등을 들어볼 예정이다.

-프로그래머의 추천작을 꼽는다면.

조민재 <붉은 심장: 하얀 길목을 돌다>(감독 김소영), <호랑이와 소>(감독 김승희),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감독 배꽃나래) 세 작품을 묶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과거에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당해 단절되고 억압되었던 개인의 표현을 작가가 직접 개입해서 현재의 감각으로 표현한다. 소외된 서사를 역사의 한 줄기로 다시금 자라게하는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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