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 감독의 단편 <성인식>이 올해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은 전세계 학생들이 제작한 단편영화를 선보이는 경쟁부문으로 올해는 17편이 칸의 선택을 받았다. <성인식>은 집과 학교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는 스무살 대학생 현우(권순형)가 모텔에서 만난 직업여성(민효경)과 반복적 만남을 가지는 내용이다. 숭실대학교 영화예술전공 2학년인 김민주 감독이 학교 워크숍 수업에서 만든 첫 단편영화로, 감독은 “결핍의 원천을 마주하는 이야기”라고 영화를 설명했다. 신인의 어설픈 치기 대신 자연스러운 연출과 담담한 거리두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 초청을 축하한다.

=무척 기쁘고 아직도 꿈만 같다. 영화제에 직접 가면 실감이 난다고 하던데, 코로나19 때문에 칸에 가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를 알아봐준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칸영화제 이전에 다른 영화제에도 출품했었다고.

=지난해 8월에 영화를 완성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국제영화제 여러 곳에 출품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칸에서 연락이 왔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초청 이메일을 받았을 때 누가 장난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동고동락하며 영화를 찍은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릴 때 감정이 벅차오르더라. 친구들도 울고 나도 울고.

-어떻게 구상하고 만든 이야기인가.

=문득 네온사인 가득한 밤거리를 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있는 남자가 정처없이 헤매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글을 쓸 땐 흔히 겪기 힘든 강렬한 감정에 끌리는 편인데, 이 인물에게 미칠 듯한 감정을 더하고 싶었다. 처연하고 슬프고 막막한 감정을. 이미지와 감정을 먼저 생각한 다음엔 그에 따라 주제와 설정을 발전시켰다.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결핍이 뭘까 생각했을 때, 모성의 결핍이 떠올랐다. 신화를 좋아해서 오이디푸스 신화와도 결부해 생각해보았고, 결핍이 곧 목표가 되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첫 단편영화에는 자기 반영적인 얘기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성인식>은 어떤가.

=시나리오를 쓸 때 나를 반영하려고 하진 않았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인물, 나와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인 인물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프로덕션 때 내 감정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20대 초반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던 내 모습이, 막막했던 심정들이 주인공 현우의 모습에 반영된 걸 뒤늦게 깨닫고 소름이 돋을정도였다. 이게 나였다니!

-대학생 현우는 모텔에서 이른바 직업여성 ‘305호의 여자’를 만난다. 반복해서 여자를 만나러 가는 현우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그 감정은 모성에 대한 결핍이라고 명확히 박아두었다. 이 영화는 현우가 어른이 되면서 결핍의 원천을 마주하는 이야기이지 욕망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그래서 처음 현우와 여자가 마주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섹슈얼한 장면은 배제했다. 현우가 여자에게 느끼는 것은 그리웠던 품에 대한 갈망이고, 배우들에게도 혼선이 없도록 분명히 말해두었다.

-여자 캐릭터를 묘사할 때 주의를 기울인 점이 있다면.

=이야기상의 세팅에서 과도하게 피해자로 보이거나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를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돈을 받는 입장이지만 당당하다. 여자의 직업이 주는 인상이나 소재주의적 측면에 편승하지 않도록 캐릭터 그 자체의 매력을 잡는 데 노력했다.

-현우와 여자의 목 뒤에 난 점이나 모텔과 현우 집의 꽃무늬 벽지는 의도한 맞춤인가.

=점은, 여자가 자신의 엄마라고 생각하는 현우의 마음을 대변하는 설정이다. 사소한 것에서도 공통점을 찾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와 어머니도 똑같이 목 뒤에 점이 있다. (웃음) 벽지는 일부러 맞춘 건 아니었다. 현우 집의 경우 꽃무늬 벽과 꽃무늬가 아닌 벽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한쪽은 촌스럽고 한쪽은 세련된 이미지 차이가 재밌을 것 같았다.

-참고한 영화가 있나.

=촬영과 조명 관련해선 <화양연화>를 참고했다. 빛과 색감을 강조하는 프레임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었고, 길거리나 복도의 통로 같은 공간에서 인물의 외로움을 포착하고 싶었다. 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선 전혀 다른 세계를 살던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참고했고, 배우에게도 츠네오(쓰마부키 사토시)의 연기 톤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성과 아이들의 이야기, 귀엽고 재밌는 상상력, 맑고 순한 감정들을 최근 한국 단편영화들에서 자주 보게 되는데, <성인식>은 그와는 결이 다른 영화다.

=내가 보아도 거칠다고 느낀다. 첫 작품이기 때문에 거친 것도 있고, 이야기의 소재나 감정이 거칠기도 하고. 일부러 요즘 단편영화와는 다른 영화를 만들겠다고 차별화한 건 아니다. 만들고 보니 요즘의 트렌드와는 다르다고 느꼈고, 그래서 국내 영화제에선 초청받지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거칠고 투박하지만 거리를 두고인물을 지켜보자는 기조는 처음부터 고수했다. 지도 교수님 중에는 좀더 거리를 좁히고 집중해서 들어가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해준 분도 있었는데, 나는 거리를 두고 싶었다. 순간순간의 몰입과 공감을 목표로 영화를 만들진 않았고, 주인공이 밤거리를 헤매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이 쓸쓸함과 먹먹함을 느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스무살은 어땠나.

=방황을 꽤 했다. 나쁜 짓을 한 건 아니고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몰라서 자아성찰의 시간을 꽤 오래 가졌다. 식당에서 일도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다만 집이 한국영상자료원 근처여서, 영화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거의 매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영화를 봤다.

-그러다 영화과에 진학한 건데,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창작하고 싶다는 열망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DVD 부가영상을 보는 게 재밌었다. 메이킹 영상을 보면서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담겼는지 알 게 됐고, ‘그래, 이거다!’ 싶어 뒤늦게 영화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영향을 받은 감독이나 영화의 목록이 궁금하다.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게 한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다. 극한의 슬픔이 광기로 변하고, 누구도 물러서지 않은 채 끝까지 대결하고, 그 대결의 끝은 예측하기 힘든. 여러모로 충격적인 영화였다. 이렇게 박찬욱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할 수 있어 영광이다. 불가피한 투쟁과 모험 속에서도 낭만이 느껴지는 영화를 좋아하고 나 역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