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러니까 이건 대한제국 국민 말도 들어봐야 한다. 입헌군주제 정말 괜찮은 건지. SBS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에서 대한제국 황제 이곤(이민호)은 부산에서 정7품 백마 맥시무스를 타다 대한민국 서울 광화문에 떨어졌는데, 여기가 평행 세계임을 금세 알아채지만 “나는 나라서 나인 사람이라”(줄이면 ‘내가 낸데’) 황제로서의 애티튜드를 당당히 유지하며 홀로 으쓱댄다.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도 세금을 내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라는 황제는, 재킷의 다이아몬드 단추를 팔아 명품 쇼핑과 스위트룸 투숙에 탕진하면서도 태연하다.
대한제국이 대한민국과 거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근대국가라는 점은 이곤이란 인물을 둘러싼 위화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80년대생 이곤이 양쪽 세계에서 종종 던지는 농담은 “참수다”인데,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세자 이창(주지훈)도 “삼족을 멸할 것이다” 같은 농담을 했지만 그는 조선시대 사람이기라도 했다. 대한제국 황실은 종묘사직이 위태로우니 ‘후사’를 보는 것이 황제의 의무라는 전근대적 공간이다. 황실 전통의 수호자인 제조상궁 노옥남(김영옥)은 이곤의 행방을 찾는 총리 구서령(정은채)을 경계하며 “임기 5년짜리 선출직 공무원이 감히!”라고 외치는데, 이쯤 되면 민주공화국 국민으로서 의문이 생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리가 정해져 있던 이씨 집안 남자들에겐 대체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는지.
이곤이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황실 공보실에서 “#폐하는_그루밍_중 #마스크_뿌시고_나오는_빛용안” 따위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린 황제의 일상 사진에 “훈훈합니다”, “너무 멋져요” 같은 댓글과 하트를 날리는 국민은 맹목적인 연예인 팬덤처럼 그려진다. 총리는 황제와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지금 이 그림으로 국민들은 더 행복해질 거”라고 말한다. 정말? 차라리 이 모든 이야기가 팬픽 작가 출신 황실 공보실 직원 명승아(김용지)가 쓴 팬픽이었다고 하면 좋겠다.
VIEWPOINT
김은숙 작가의 세계관
대한제국 최초의 여성 총리 구서령은 황실보안검색대를 통과할 때 경보음이 울리자 말한다. “와이어가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 받쳐줘서요.” 이것은 혹시 ‘탈브라’ 시대를 맞아 매출이 떨어진 브래지어 PPL인가? 구서령을 포함해 <더 킹: 영원의 군주>의 여러 여성은 자신의 외모를 무기로 삼거나 자신의 외모에 무엇이 부족하다고 말하거나 다른 여성의 외모를 평가한다. 그러나 이곤이나 조영(우도환)같은 남성들은 외모에 무심하면서도 ‘잘생겼다’ 는 여성들의 찬사를 자연스럽게 누린다. 이것이 김은숙 작가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