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해본 게임들 중 제일 중독성이 높은 게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다. 판타지 세계에서 용과 천사, 피닉스 등을 거느리고 선과 악이 대결을 벌이는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1편은 해보지 못했지만 2편을 처음 사서는 한동안 낮이고 밤이고 게임에 빠져 살았다. 이러다간 큰일나겠다 싶어서 과감히 지워버리고 게임 CD는 깊숙이 처박았다. 그런데 한두달이나 지났나 다른 일을 하다가 못 견디게 하고 싶어졌다. CD를 찾느라고 온 집안을 뒤집어 엎었다. 간신히 찾아 무조건 다시 깔았다. 수십번 반복했던지라 맵이고 전술이고 전부 외다시피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두근두근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여러 번 한 게임을 또 하고 또 하는 건 시간낭비였다. 수치심과 좌절감에 거칠게 게임을 삭제했다. 하지만 몇주 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이 증상은 그 후로도 3편이 나올 때까지 계속 주기적으로 발작했다.
목빠지게 기다리던 3편이 나오자마자 당장 입수한 건 물론이다. 시스템이 더 풍요로워지고 그래픽 역시 발전했다고 들었기에 기대가 대단했다. 그런데 기대만 못했다. 전작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면서 훨씬 정교하고 복잡해진 시스템이 너무 낯설었고, 전에 즐겨 구사하던 전략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어느새인가 2편을 다시 깔아 익숙하게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씩 3편에 적응해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2편 못지않게 클리어에 클리어를 거듭했다. 본편은 물론 <아마겟돈 블레이드> 등 확장팩까지 모두 휩쓸었다. 인스톨과 언인스톨을 반복하며 다음 편이 나오기를 기다린 것 역시 마찬가지다.
드디어 4편이 나왔다. 이번에는 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각 종족의 유니트와 특수 기술이 헤쳐모여로 재편성되었고, 전략 전술 역시 처음부터 다시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번과 마찬가지로 낯설고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새로 생긴 건물과 마법, 기술을 외우고 가장 효과적인 일반 원칙들을 수립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걸릴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2편과 3편을 지겹도록 한 내가 이 정도면,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에 처음 입문하는 초보자가 겪을 고충이 어느 정도일 지는 대강 짐작이 간다.
제작사라고 진입 장벽을 세우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시리즈물의 경우 후편이 전편보다 나아야 팔린다. 1인칭 슈팅 게임이나 대전 액션 게임, 스포츠 게임이라면 기술 발전으로 전에는 하지 못하던 것들이 구현되므로, 단순비교했을 때 전편보다 못한 후편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직접적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는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시스템을 좀더 정교하고 풍부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게임이 되는 것이다.
4편을 시작한지 꼭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한판도 제대로 클리어 못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대강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번 역시 중독성이 높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시스템뿐 아니라 플레이 시간도 길어져서 한판 끝내는 데 예닐곱 시간은 훌쩍 지나버린다. 다시 한번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의 세계에 뛰어들어야 할지,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 발을 빼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