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武 1998년, 감독 지아장커 출연 웨이왕홍 <EBS> 5월11일(토) 밤 10시
“장이모나 첸카이거는 자본을 추구하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내겐 영화창작의 자유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소무>는 지아장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중국 6세대 감독으로 분류되는 지아장커 감독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중에서 ‘거부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국영기구에 편입되거나 상업영화를 만드는 대신, 게릴라 스타일로 인디영화를 만드는 길을 택한 것이다. 중국 내부에선 상영금지라는 비운을 겪기도 한 지아장커 감독의 <소무>는, 야심작이다. 어느 덜 떨어진 소매치기이자 잡범의 이야기인 <소무>는 전통적인 리얼리즘 계열 영화다.
소무는 시골 출신의 소매치기다. 경찰에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소무는 별로 할 일이 없어진다. 실업가로 성공한 샤오닝이 결혼을 올리게 되자 소무는 축의금을 건넨다. 샤오닝은 밀수로 돈을 버는 처지지만 소무의 축의금을 받길 거절한다. 기가 죽은 소무는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는 메이메이라는 여성을 만난다. 처음엔 어색한 관계로 출발하지만 메이메이와 소무는 차츰 긴밀한 사이가 되어간다. 호의를 보이던 메이메이가 어느 날 갑자기 행방을 감추기 전까지.
“낡은 건 다 철거했는데 새로운 건 어디 있는 거야?” <소무>에서 어느 인물은 이렇게 뇌까린다. 그의 언급은 현실감 있게 들린다.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은 이렇다. 밀수가 횡행하고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며, 호출기가 보급되고 있다.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물결이 거리를 압도하고 있다. 주인공 ‘소무’는 이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낙오자다. 친구들이 밀수로 떼돈을 벌고 있을 때,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여성이 돈 많은 남자를 낚아채고 있을 때, 그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담배나 피우면서 폼만 잡고 있다.
<소무>는 유머감각이 배어 있는 영화다. 소무가 경찰에서 붙잡히자 TV에선 “소무가 검거됐습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시죠?” “속이 후련합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인터뷰가 방송된다. 영화의 미덕은 리얼리즘 미학에 생동감과 역설의 재미를 불어넣은 것. 시대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어쩌면 소유의 개념에 익숙해지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가 벌이는 해프닝을 뒤따르다보면 우리는 중국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과연 무엇이 변화했는지 그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 말이다. 지아장커 감독은 침묵과 소리의 ‘배치’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영화에선 우울한 중국 거리의 풍경, 소무라는 남자의 모습 위로 경쾌한 노래들이 오버랩되곤 한다. 뻔한 내용의 연가(戀歌)다. 이 감상적인 소음은 영화에서 침묵으로, 브레송을 연상케 하는 초월적인 스타일로 급속하게 전환되곤 한다. <소무>에서 이 전환이 인상적인 것은 영화의 엔딩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소무의 시점으로 바뀌고, 주인공을 지켜보는 군중의 시선, 그들의 소음이 들려온다. 그리하여 영화는 다시 잿빛 현실로 홀연히 돌아온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