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삽삽삽-.’ 복도 바닥을 스치는 교사용 슬리퍼 소리가 빨라진다. 뭔가 일이 생겼다. 교사가 학생들 틈에서 뛸 수 없으니 잰걸음으로 교무실로 향하는 소리일 때도 있고, 부서간 회의시간이 겹쳐 낭패를 겪는 교사의 발소리일 때도 있다. 학교 복도에 구두 굽 소리를 내는 이는 학생이나 교직원이 아닌 외부 방문객이다. 사립고등학교 기간제교사 채용 면접을 보러온 국어과 교사 고하늘(서현진)의 발소리도 외부인에서 내부인의 것으로 바뀌었다.
tvN 드라마 <블랙독>의 주인공은 교사들이다. 하나같이 검정색 슬리퍼를 신어도 정교사와 기간제교사의 처지는 같지 않다. 졸업하고 찾아오겠다는 학생들의 해맑은 약속에 기간제교사는 시선을 피하고 말끝을 흐린다. 교사는 맞는데 ‘진짜 교사’가 아니란다. 고하늘은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 교육현장의 당사자가 되어 복도 안쪽으로 걸어들어간다.
사고나 위기가 생기면 끊임없이 대응하고 수습하는 곳이 학교다. 보통의 교육계 고발 드라마라면 채용비리, 학교폭력, 입시경쟁 등의 소재가 몇번이고 끓어넘쳤을 텐데 <블랙독>은 찬물을 섞거나 잠깐 불에서 내린다. 정의로운 교사 개인의 활약 대신, 최소한 이것은 지키자, 그것만은 안된다는 하한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 기준을 두고 치열한 합의를 해도 결론은 정답이 아니며, 아이러니가 불거질 때도 많다. 그래서 싱겁고 지루한가 하면, 수업 중 교내방송에 식은땀이 흐르고 학교행정과 학사일정에 울고 웃는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