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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국영화④] <시동>의 네 가지 관전 포인트
임수연 2020-03-12

디테일의 힘

1년 중 가장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다는 크리스마스 연휴. 그 직전에 개봉하는 작품들은 1년간 투자•배급사들이 여름 시장 다음으로 사활을 기울이는 격전지다. <시동>의 개봉일이 이 시기로 잡혔을 때 적지 않은 관계자들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마동석을 필두로 중견배우와 젊은 배우의 조화가 돋보이는 캐스팅은 근사하지만, 중급 예산의 드라마 장르는 보통 명절 연휴나 비수기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12월 10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영화가 공개되자 다양한 의미에서 예상을 빗나갔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시동>은 가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소재를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고 캐릭터 자체에 승부를 건 원작 웹툰의 정체성을 그대로 고수한다. 집을 나와 군산에서 중국집 배달부 일을 시작한 택일(박정민), 사채업자들과 함께 일하게 된 상필(정해인)이 가족 아닌 어른들과 부대끼며 벌어지는 일은 갈등의 크기도 성장의 폭도 소박하다. 그럼에도 <시동>은 웹툰의 호흡을 스크린에 구현한 도전이 신선하고, 캐릭터의 디테일이 가진 재치에 감탄하게 만든다. 규모에만 주목하면 놓치기 쉬운 <시동>의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보았다.

웹툰과 다르면서 같은

<시동>은 원작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웹툰으로만 남아 있던 작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캐릭터가 강하고 굵직한 에피소드가 없어 영화화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영화계에서 쉽게 선택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에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NEW도 마음을 열었다. <시동>은 웹툰의 형식과 영화와 다르다는 점을 의식해 에피소드의 잔가지는 쳐냈지만, 극적인 전개를 추가하진 않는다. 일상의 작은 변화에 주목한 원작의 정서는 영화에서도 온전히 구현된다. 소박한 에피소드를 이어가는 웹툰 ‘정주행’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잔재미로 승부하는 <시동>의 구성에 오히려 친숙함을 느낄 수 있겠다는 기대도 걸 법하다. 하지만 디테일한 면에서는 원작과 달라진 부분도 있다. 장풍반점의 공 사장(김종수)은 원래 건물 2층에 살았지만 어떤 연유로 이곳을 다시 찾지 못한다. 대신 2층 공간을 직원들 숙소로 내놓은 그의 사연은 웹툰에서 보다 상세하게 서술돼 있다. 생략된 서사를 비주얼로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의 특성상 공 사장의 역사는 장풍반점의 가정집이면서 식당인 이중적인 공간에 대신 반영돼 있다.

사연 있는 헤어스타일

<시동>의 포스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누구 하나 평범하지 않은 헤어스타일이다. 실제로 그들의 머리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서사가 된다. 전작 <사바하>(2019)에서 염색을 했던 박정민은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노란 머리를 했다. 초록이나 파랑 같은 후보가 있었지만 “아주 양아치는 아닌 10대가 한번 일탈해보고 싶다며 바꿀 법한 머리는 역시 노란색”이었다는 게 최정열 감독의 설명. 또한 그의 헤어스타일은 모 아이돌 그룹 멤버의 사진을 레퍼런스로 한 결과였는데, 청소년들이 ‘워너비’로 삼을 만한 게 보통 인기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상필의 앞머리는 그의 감정 변화를 알 수 있는 시각적인 장치다. 영화 초반 이마를 덮은 정해인이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이미지라면, 이른바 ‘반깐’ 머리를 거쳐 ‘올백’ 스타일로 가는 과정은 그가 몸담은 ‘글로벌 파이낸셜’에 자신을 구겨넣는 그것과 병행된다. 그러니 그가 모자를 써서 머리를 아예 숨기거나 다시 앞머리를 내리는 순간은 극중 전개에 중요한 기점이 될 수밖에 없다.

외유내강의 신인감독 발굴

제작사 외유내강은 꾸준히 신인감독 발굴에 공을 들여왔다. <너의 결혼식>(2018), <엑시트>(2019), 내년 개봉 준비 중인 <인질>(2019)은 모두 신인감독의 입봉작이다. <시동>은 CJ ENM이 주최한 신인감독 프로젝트 ‘버터플라이 프로젝트 공모전’ 당선작이었던 <글로리데이>(2015)를 연출한 최정열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글로리데이> 이후 조성민 외유내강 부사장에게 영화가 재밌었다며 연락을 받았고, 그로부터 제작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최정열 감독은 “보통 영화 제작사는 만나서 계약을 한다든지 구체적인 것을 논의하고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외유내강은 천천히 찾아보자는 식이라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가 우연한 기회로 웹툰 <시동>을 보고 외유내강과 함께 조금산 작가를 만나 영화화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 건 2017년 추석이 지났을 때였다. 꾸준히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고 그 결과가 좋은 성과로도 이어졌던 외유내강의 선구안이 이번에도 빛을 발할지 주목된다.

마동석의 새로운 얼굴

퍼스널컬러를 완전히 무시한 듯한 매치다. 마동석이 핑크색 맨투맨에 도트 무늬 바지를 입고 헤어밴드를 두른 모습은 오로지 <시동>에서만 볼 수 있다. 어딘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그에게 원작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남지수 의상실장은 “마동석 선배님과 여러 작품을 했는데, 사실 해온 작품들을 보면 캐릭터가 많이 다른데도 ‘마동석은 맨날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시동>에서만큼은 예전 이미지를 모두 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작 웹툰에서는 거석이 형이 대체로 다운된 톤의 옷을 입는데, 영화에서는 생동감을 주기 위해 전체적으로 색감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특히 신경 쓴 것은 마동석 특유의 근육을 보이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반팔이나 반바지를 주로 입는 웹툰과 달리 긴 옷을 입혔고, 팔뚝이 드러나지 않게 팔뚝 통을 크게 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노래방 장면에서 거석이 형이 구만(김경덕)의 초록색 비니와 경주(최성은)의 선글라스를 뺏어 쓰는 설정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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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