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은 끔찍했지만, 종 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 먹는 라면과 꽈배기의 맛은 최고였다. 아니, 늘 끔찍했기 때문에 뭐든지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요리에 관심있는 고등학생들이 직접 만든 급식으로 대결하는 tvN <고교급식왕>을 보며 창의적인 메뉴에 혹하고, 더 마음에 드는 팀에 혼자 투표를 할 때마다 그때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진짜 흥미로운 순간은 한끼의 급식이 만들어지는 노동의 현장을 비출 때다. 영양, 열량, 단가, 대량 조리 방식이라는 제약 안에서 야심찬 아이디어는 현실과 타협을 거듭한다. 하나 만드는데 1분 걸리는 주먹밥을 1천개 만들 수 있을까? 새우와 닭꼬치를 함께 내놓으면 예산 초과일까?
실전을 맞아 시행착오를 겪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독려해 어떻게든 제시간에 한끼를 차려내는 이들은 매일 그 급식실에서 수백명분의 음식을 만드는 조리원들이다. 그들의 책임감과 노련함에 감탄하던 중, 대부분 40~50대 여성인 급식실 노동자 절대다수가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고 호흡기와 피부질환, 화상 등 사고성 재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보았다. 얼마 전 전주 한 중학교의 영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학생과 학부모의 ‘맛없다’라는 항의와 급식 만족도 조사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다고 했다. 누군가의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노동이 그 노동자의 목숨을 갉아먹는 환경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더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