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행복한 라짜로>는 2018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수백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동화나 민담의 아우라를 두르고 있다. 순진한 농부들, 사악한 여왕, 반항하는 왕자 그리고 완벽하게 이타적인 거지/성자까지.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은 고색창연한 요소로 이루어졌으되 현대사회의 양극화와 소외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감독의 영화적 화법은 미래의 것이다. 라파엘의 그림에서 걸어나온 듯한 선량한 청년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마치 피노키오처럼 세월을 가로질러 새로운 불평등이 오래된 불평등을 대신하는 세계를 여행한다.
06/09
<엑스맨: 다크 피닉스>(이하 <다크 피닉스>)는 염동력을 통제하지 못해서 벌어진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8살 진 그레이가 찰스 이그재비어 교수(제임스 맥어보이)의 영재학교에 입학하는 신으로 시작한다. 17년이 흐른 1992년. 진 그레이(소피 터너)를 포함한 젊은 엑스맨들은 미국 정부에 적극 협력하는 찰스의 방침에 의해 대중이 열광하는 스타가 돼 있다. 뮤턴트 역사에 전례없는 호시절을 맞은 듯하지만, 실상 그들은 고유한 정체성을 존중받는 게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게 유용한 정도를 기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찰스의 친(親)휴먼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유일한 동료 레이븐(제니퍼 로렌스)이 ‘프라이드’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인간을 위한 임무의 위험을 왜 뮤턴트들이 감수해야 하는지만 문제삼는 모습은 의외다. 우주에서 작전 도중 태양의 불꽃과 접촉한 진은 막강한 에너지를 흡수한 결과 찰스가 봉인한 유년의 트라우마가 깨어나 폭주한다. 나머지 엑스맨들은 오로지 진을 막거나 혹은 구하기 위해 영화 내내 동분서주한다. 개별 영웅들이 사안에 따라 공조하는 여타 슈퍼히어로영화와 차별되는 <엑스맨> 시리즈의 특징은 태생이 앙상블 서사라는 점이다. 엑스맨은 결사체이며 해방 전선이고 유사 가족이다. 여태 엑스맨 중 로건/울버린(휴 잭맨)만이 솔로 영화를 가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찰스, 에릭(마이클 파스빈더), 레이븐 3인방을 제외하고 <다크 피닉스>의 주력 행동대원인 스톰, 나이트크롤러, 사이클롭스, 퀵 실버는 액션 시퀀스에 각자의 초능력을 공급하는 기능 외에 이렇다 할 캐릭터의 여정이 없다. 그렇다고 <다크 피닉스>가 액션으로 일관하는 영화도 아니다. 멜로드라마적 요소는 차고 넘친다. 여러 전작의 작가였던 사이먼 킨버그 감독은 그러나 엑스맨 세계에 지나치게 친숙한 탓인지 관계와 감정을 대뜸 던져놓는다. 진과 스콧(타이 셰리던)의 로맨스, 레이븐을 둘러싼 찰스, 에릭, 행크(니콜라스 홀트)의 상이한 애착, 진을 포기 못한다는 레이븐의 자매애는 장면으로 구체화되는 대신 제시되고 당연한 것으로 취급된다. <다크 피닉스>는 ‘엑스맨’을 타이틀에 포함하고 있지만, 진 그레이에게 집중하는 준(準)솔로 영화라고 변명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진은 극중 사건의 유발자이고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가진 캐릭터이지만 가장 단조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엑스맨과 영재학교의 지향을 둘러싼 실제 갈등은 여전히 에릭과 찰스, 찰스와 행크 사이에서 벌어진다. 감독은 진 그레이의 이름을 교문에 새기고, 이어 맥락 없이 찰스와 에릭이 파리에서 체스를 두는 이중의 에필로그를 넣어 <다크 피닉스>가 독주이자 합주임을 주장하지만 영화는 어느 쪽으로도 만족스럽지 않다.
<다크 피닉스>는 <캡틴 마블>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무한한 힘과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어떤 면에서는 여성적 파워에 포함된 히스테리와 정념, 감정의 불편한 명암까지 포괄하는 더 대담한 시도다. 그러나 제작진은 가야 할 방향은 알고 있지만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지에 대해서는 아이디어 결핍이다. 이를테면 “곤경은 여자들이 다 수습하니, 이참에 이름을 엑스맨보다 엑스우먼이라고 하는 게 어때?”라는 레이븐의 일침은 20년 가까이 소수자의 알레고리로 통용된 시리즈 중 12번째 영화의 대사로서는 거칠고 생뚱맞다. 진을 설복하기 위해 “언제까지 휠체어 탄 남자에게 순종하는 소녀로 살 거니?”라고 도발하는 제시카 채스테인의 대사도 지구에 잠입한 외계인보다 인간사회에 정통한 정신상담의에게 어울릴 법하다. <캡틴 마블>에는 노골적 삽입곡 가사가 장면의 의미를 미리 해석하는 ‘저스트 어 걸’ 액션 시퀀스가 있었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는 전투 중 동선과 무관하게 여자 히어로들끼리 별안간 도열하는 단체 사진 같은 숏이 있었다. 1차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기회조차 드문 여성 관객을 위한 선물인지 모르겠지만, 진보성을 인증받고 “이거면 됐지?”라고 면피하는 게으른 선택이기도 하다. 필요한 것은 인증숏과 슬로건이 아니라 서사와 캐릭터다.
06/17
<알라딘>은- 그리고 십수편의 디즈니 장편애니메이션들은- 왜 실사로 다시 만들어지나? 첫째, 노스탤지어와 브랜드가 수익을 보장한다. 둘째, 1990년대에는 실사로 찍기 불가능했던 장면이 지금은 CG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받아 구현 가능하다. 셋째, 겸사겸사 시대에 뒤처진 젠더, 인종차별적 표현을 수정할 기회다. 첫 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보탤 말이 없다. 지적재산권 재활용이 없다면 오늘날 할리우드는 쓰러질 것이다. 두 번째는 만족스러운 이유가 못 된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반드시 작품으로 제작될 정당성을 주지는 않는다. 나는 1992년작의 팬은 아니었지만 2019년판 <알라딘>이 애니메이션이나 뮤지컬로서 원작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도시 아그라바의 공간감은 빈약하고, 지니(윌 스미스)가 이끄는 알리 왕자의 입성 행렬은 마치 디즈니랜드 공연단의 퍼레이드를 보는 듯하다. 기술의 진보가 리메이크의 사유라면 최고의 그래픽을 보여줘야 할 텐데, 마법 동굴과 <A Whole New World>를 부르는 양탄자 비행 신의 CG는 너무 어두운데다 경이감도 없다. 중동으로 설정된 아그라바는 기존 이슬람과 동남아시아 문화 기표의 절충으로서, <블랙팬서>의 와칸다 같은 독창적 공간이 아니다. 심지어 엔딩 크레딧은 갑자기 분위기가 발리우드다. 가창력이 빼어난 배우는 자스민 역의 나오미 스콧뿐이며, 군무가 동반된 노래 <Prince Ali>는 실사 구현을 위해 템포가 늦춰진 반면 일부 춤 장면은 영사 스피드를 올린 티가 난다. CG로 가필한 실사는, 핸드드로잉 카툰의 리듬감과 상상력을 따를 수 없다. 더구나 <알라딘>은 디즈니 장편애니메이션 가운데에서도 초현실적인 카툰 그림체의 작품이다. 파가니니의 악마적 명인기를 방불케 하는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는 핸드드로잉 애니메이션의 키네틱한 역동성만이 구현할 수 있었다. 다행히 윌 스미스는 로빈 윌리엄스를 극복하는 대신 유쾌한 래퍼 지니가 되기를 택했다. 셋째, 문화적 다양성의 수용 수준은 비백인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분명 향상됐다. 모계가 인도 혈통인 나오미 스콧과 이집트계 메나 마수드 같은 재능 있는 뮤지컬 배우가 대작을 통해 세상에 소개됐다. 아그라바를 묘사했던 ‘야만적’이라는 가사는 ‘혼란스러운’으로 대체됐고 ‘귀를 자른다’는 표현도 사라졌다. 자스민은 배우자의 선택권을 넘어 술탄이 되고자 하는 공주로 변했고 독창곡 <Speechless>를 얻었다. <위대한 쇼맨>의 작곡가들이 참여했다는 이 노래는 뮤지컬과 오디션 프로그램의 클라이맥스에 등장할 법한 각성의 발라드다. 곡 자체로 흠잡을 데 없지만, 나머지 <알라딘>의 노래와는 확연히 이질적이다. 리메이크의 동기 중 관점의 현대화가 절실했다면, 아예 자스민의 이야기로 <알라딘>을 다시 써야 옳았겠지만 그것은 장편애니메이션 실사화 사업에 임하는 디즈니의 전략이 아닌 듯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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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토이 스토리> 연작의 악당은 대체로 동기가 분명하고 입체적인데 <토이 스토리4>의 개비 개비(크리스티나 헨드릭스)도 전통을 계승한다. 앤티크 숍에 사는 개비는, 눕히면 눈꺼풀이 닫히고 (주인공 카우보이 우디처럼) 줄을 당기면 녹음된 대사를 말하는 1950년대생 빈티지 인형이다. 그저 귀여운 모습이지만 인간이 없을 때면 복화술 인형 벤슨 형제들을 거느리고 가게의 보스 역할을 한다. <환상특급>의 ‘토키 티나’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은 개비는, 사랑스러운 동시에 위협적이다. 코와 입매는 앳되지만 주도면밀한 계획을 간직한 눈은 노인의 그것이다. 그는 관절이 흐느적대고 말 못하는 벤슨 형제를 복화술사처럼 부린다. <토이 스토리>의 다양한 인형 가운데 가장 사실적인 외모를 가져 인간에 가까운 감정표현을 보여주는 개비의 연기력은 탁월하다. 똑같이 사람에게 버림받았지만, 양치기 인형 보핍(애니 포츠)과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관습대로라면 독립된 삶을 개척한 보핍이 ‘배드 걸’ 역할이겠지만, <토이 스토리4>는 반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정을 가지려는 개비를 안타고니스트로 정해 훨씬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