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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결산⑤]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셀린 시아마 감독, “다양한 목소리가 그들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장영엽 2019-06-05

각본상 수상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포스터.

“몇몇 여성감독들은 정말로 훌륭하다. 나는 그들에게 더 자주 빛을 비추고 싶다.” 지난 3월 작고하기 전, 아녜스 바르다는 <할리우드 리포터>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주목하는 여성감독들의 이름을 언급했다. 프랑스 감독 셀린 시아마는 그중에서 가장 먼저 호명된 이름이었다. 그는 소녀와 사랑에 빠진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데뷔작 <워터 릴리스>(2007)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감독이 됐다. <톰보이>(2011), <걸후드>(2014) 등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정체성과 욕망, 연대의 가능성을 탐구해온 셀린 시아마가 선보인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는 그의 첫 시대극이다. 영화는 결혼을 앞둔 여성 엘로이즈(아델 에넬)과 그의 초상화를 완성해야 하는 여성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의 사랑과 성장을 다룬다. ‘불타는 여자의 초상’이라는 제목처럼, 시대라는 틀에 갇힌 여성들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꽃을 조명하는 이 작품은 여성의 삶과 예술에 관한 아름답고도 먹먹한 소묘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 <캐롤>(2015), <아가씨>(2016)와 같은 선례가 있음에도 그동안 칸과 같은 메인스트림 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에서 여성감독이 연출한 여성 퀴어영화가 상영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셀린 시아마의 이 작품은 ‘피메일 게이즈’(여성적 시선)를 반영한 영화가 왜 더 많아져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제공한다.

-젊은 여성들이 주인공인 현대물을 연출하는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대극을 연출한 계기가 궁금하다.

=여러 가지 열망이 함축된 결과다. <걸후드>를 마친 뒤 이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장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아델 에넬과 다시 한번 작업하고 싶었으며, 여성 예술가들을 다뤄보고 싶었다. 나는 화가와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왜냐하면 그 시대에 많은 여성 화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예술가들은 역사에서 지워졌기에,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때문에 과거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더라도 현재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 좋은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대극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즐겼지만, 사실 그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은 아니었다. 내게는 현대물이든 시대극이든 똑같은 작업으로 느껴졌다. 시대극을 연출한다는 건 과거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감독에게 더 용감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 흥미롭다. 그들은 서로를 판단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도피처가 되어준다. 극중 한 등장인물이 낙태를 결심했을 때, 다른 여성이 그를 돕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나는 자매애(sisterhood)가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내 삶에서 느끼는 자매애의 감정이 극중 인물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서다. 운 좋게도 우리는 여성간의 연대가 가시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여성으로서, 우리는 언제나 남성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존재로 자라왔으며 여성들은 서로 같은 팀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양상이 바뀌었다. 내가 5년 전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쓸 때와 지금은 거의 다른 세기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겐 여성의 감정과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생겼다. 예전에는 금기시되었던 언어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 영화는 압델라티프 케시시가 연출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메일 게이즈(남성적 시선)에 대한 당신의 대답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지는 않다. 나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좋아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피메일 게이즈가 메일 게이즈를 바로잡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내 생각에 피메일 게이즈가 무엇인지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메일 게이즈다. 나는 개인으로서, 감독으로서, 관객으로서, 시네필로서 메일 게이즈를 담은 영화들과 함께 자라왔다.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이 40년 전에 얘기했듯, (여성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여성 예술가들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슈퍼맨 같은 남성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해야 했다. 이처럼 메일 게이즈에 의해 학습되어온 여성의 시선은 남성과 여성의 세계를 결합한 하이브리드의 특성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델 헤넬의 연기가 멋졌다. <워터 릴리스>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로 협업했었는데, 이번 작업은 예전과 달랐나.

=그렇다. 우리 둘 다 변했다. 우린 어렸을 때 처음 만났는데, 아델 에넬과 작업한 지 12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삶 속에서, 영화를 통해서 함께 성장해왔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공동작업과 협업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의 관계와 유사하다. 아델 에넬은 현대적인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아마 사람들은 이 영화에 그가 출연한다고 했을 때 화가 역할을 맡을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델 에넬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준비하며 목소리 톤도 높이고, 동작도 예전과 다르게 할 것을 제안했다. 영화는 아델 에넬이 연기하는 인물을 통해 뮤즈라는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술가와 함께 공동의 작품을 만들었으나 결국 목소리를 잃고 방 한구석에 숨겨져 페티시화되는 여성상에 대해 말이다.

-금지된 사랑 이야기를 다룰 때, 등장인물의 행복을 방해하는 외부 세계의 위협은 극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사랑을 둘러싼 갈등은 등장인물 개인의 내적 문제로 다뤄진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세계에서 욕망대로 살지 않는다는 건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극중 인물에게 그들의 영혼과 몸을 돌려주고 싶었다. 이 영화는 여성과 여성의 사랑이 가능한지에 대해 묻는 작품이 아니다. 다만 나는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빛나며 얼마나 충만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모두 사회가 동성간의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그걸 되풀이해서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균등하게 다뤄보고 싶었다. 이러한 기준은 시나리오를 쓰고 캐스팅 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했는데, 두 주연배우 노에미 메를랑과 아델 에넬은 동갑에다 키도 같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측면에서 강렬하다. 노에미는 신실한 종교인이고 아델은 무신론자다. 종교에 대해서가 아니라 연기에 임하는 방식이 그렇다는 거다.

-이 작품의 배경은 18세기지만, 여성 예술가를 다루는 방식은 여성감독들을 둘러싼 지난 몇년간의 담론과 연결되는 현재적인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의식이라는 생각에서다. 미투운동이 일어났을 때, 특히 프랑스에서 경악스러웠던 것은 ‘프랑스 남성이 여성에게 보이는 정중한 관심’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나는 다양한 목소리가 그들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이야말로 내 최우선적인 관심사다. 프랑스 ‘50/50 무브먼트’(2020년까지 프랑스 영화·TV업계 종사자의 남녀 성비를 50 대 50으로 맞추자는 운동) 창립자 중 한명으로서, ‘여성감독’에 대한 질문이 기자회견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데 질렸다. 우리는 남녀 성비에 대한 문제를 정치적 사안으로 만들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감정 소모는 잠시 제쳐두자. 지금은 옳은 각도에서 문제를 직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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