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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브릿지 부부>
2002-05-02

가족 박물관

Mr&Mrs. Bridge 1990년,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출연 폴 뉴먼 <EBS> 5월4일(토) 밤 10시

1990년대 머천트 아이보리 프로덕션의 영화들은 비슷한 궤도에 있다. <모리스>와 <전망좋은 방> <하워즈 엔드> 등은 E. M. 포스터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것이며 1900년대 초반 무렵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들이다. 이 작업들 사이에 놓인 <브릿지 부부>는 조금 색깔이 다르다. 미국 중산층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사건을 다루는 <브릿지 부부>의 원작자는 에반 코넬이며 극적인 로맨스가 부각되지는 않는다. 우아하고 품위있는 귀족사회라곤 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제임스 아이보리 영화에 흥미를 가졌던 사람이라면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다.

고집 센 변호사 월터 브릿지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냉담하다. 그는 늘 무심한 태도로 가족들을 대하고 독재자 같은 태도로 군림한다. 그에게 자식들은 단지 철없는 아이들일 따름이다. 월터의 아내 인디아는 남편과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적인 여성이다. 그녀는 그림 수업을 받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게 유일한 낙이다. 딸들은 하나둘씩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아들 더글라스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군에 입대함으로써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자식들이 떠나가자 인디아는 남편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흔히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는 ‘박물관 미학’이라 정의된다. 시대적 재현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브릿지 부부>의 시각적 스타일은 완벽에 가깝다. 비슷한 시기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에서 발견되었듯, 깔끔하고 단아한 미장센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소품에서 배우의 헤어 스타일, 그리고 의상에 이르기까지 호화롭기 그지없다. 1940년대 미국 시카고에서 살아가는 어느 중산층 가정의 풍경은 이렇다. 그들은 넓은 정원이 달린 집에서 생활하고, 가끔 짬을 내 유럽으로 여행을 다니며 극장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영화를 관람한다. 아이들은 차 안에서 몰래 사랑을 나눈다. <브릿지 부부>는 상영시간 내내 당시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화면에 비추는 데 주력한다. 그 현실성이 지나쳐 극히 인공적인 것으로 비칠 만큼 말이다. 당연하게도, 비슷한 시기의 다른 아이보리 작품에 비해 드라마의 굴곡이이 적으며 다소 호흡이 달린다.

요약하자면 <브릿지 부부>는 ‘실망’에 관한 영화다. 큰딸은 갑자기 배우가 되겠다고 떠나가고 둘째딸은 예상 밖의 남자와 결혼해 집을 떠난다. 그리고 아들은 군대에 입대한다. 부부간의 관계 역시 푸근한 기운이라곤 없다. 평온하고 남부러울 데 없을 것 같은 가정은, 곧 깨어질 살얼음판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리안 감독이 만든 <아이스 스톰>의 전범이라 할 만한 요소를 지니는 것도 사실. <브릿지 부부>에서 관심을 끄는 건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의 연기다.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노배우들은 건재한 모습을 비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