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제작연도 2002년 광고주 현대카드 대행사 웰콤 제작사 옐로우프로덕션(지덕엽 감독)
2탄-제작연도 2002년 광고주 현대카드 대행사 웰콤 제작사 매스메스에이지(박명천 감독)
솔직히 첫인상은 시큰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대충 훑어봤는데 호감가는 구석이 그닥 눈에 띄지 않았다. 빼어난 외모가 아니었고, 세련된 옷 따위로 감각있게 자신을 포장한 흔적도 별반 없었다. 말투도 요즘 감각에 맞지 않게 진지하고 고지식했다. 그 정도 경쟁력으로 어떻게 나같이 콧대 높은 여성을 사로잡겠다고 나섰는가란 의구심이 들었다. 예전에 만나본 ‘킹카’급 상대를 떠올리니 더욱 한숨이 나왔다. 그들은 애교있는 화술과 여유로운 상류층 이미지로 처음 대면하자마자 내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들었다. 근데 예상치 못한 후유증을 맛보고 말았다. 헤어진 뒤 그가 던진 말 한마디가 자꾸 귓전에 맴도는 것이었다. 그의 애프터 신청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욕구가 솟기 시작했다.
현대카드 CF를 미팅에서 만난 이성으로 비유하면 그랬다. 삼성카드, BC카드, LG카드 등의 CF가 카드업계 광고전에서 ‘빅3’로 가공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가운데 한발 늦게 출전한 현대카드 광고는 후발주자의 태생적인 약점을 쉽게 떨쳐버리기가 힘들어보였다. 그런데 신통치 않은 초반 반응을 딛고 늦바람이 불더니 어느덧 선발주자와 거리를 좁히며 긴장을 돋우는 경쟁상대로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준호 편과 장진영 편으로 이뤄진 현대카드의 론칭 CF는 지난 2월 낯선 개성을 뿜어내며 소비자들에게 탄생을 알렸다. 전쟁터마냥 어지럽게 소음이 오가는 곳에서 정준호(장진영)가 촉각을 곤두세운 채 무엇인가를 열심히 살피고 있다. 피를 말리는 긴장된 결정의 순간이 왔는가보다. 정준호(장진영)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굴러떨어진다.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을 입으로 ‘훅’ 부는 정준호(장진영)의 모습과 함께 흐르는 내레이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랄라라’로 시작하는 경쾌한 배경음악이 흐르면서 정준호(장진영)는 눈 깜짝할 새 공간이동을 감행한 듯 자동차에 몸을 실은 채 확 트인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바람의 촉감을 맛보는 그의 표정엔 해방감이 잔뜩 배어 있다.
20대 후반 및 30대를 목표소비자로 겨냥한 이 CF는 도시남녀의 ‘일’(Work)과 ‘즐거움’(Joy)을 이분화해 병렬배치했다. 다른 카드 CF가 다짜고짜 카드 사용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삶의 여유와 멋을 강조하고 있다면, 이 광고는 현대카드가 지향하는 타깃의 특성을 알리는 데 공을 들이며 운을 뗐다는 측면에서 차별성을 띤다. 가입자 및 사용자의 수가 많을수록 카드업체는 희희낙락하게 마련. 그럼에도 이 광고는 진정한 속내와 달리 카드 사용자의 자격조건에 ‘열심히 일한 당신’이란 단서조항을 달았다. 이는 한발 늦게 카드시장에 뛰어든 현대카드가 ‘카드 신용불량자 100만명 돌파’, ‘과소비 부추기는 신용카드’ 등과 같은 카드 권하는 사회의 그늘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알리는 전략적인 전제. 건강하고 특별한, 그래서 주목할 만한 새내기임을 강조한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란 말에 일순 뜨끔해지면서 동일시가 쉽게 이뤄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광고의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비단 긍정적인 가치를 바탕에 두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다음의 두 가지 요소가 진한 잔상을 남겼다. ‘떠나라’란 카피, 그리고 바람과 손의 접촉을 그린 영상이 그것. 제작진의 부연설명을 참고하지 않으면 사실 초반부 상황은 모호하다. 시선을 뒤로 물리고 싶을 정도로 모델의 얼굴을 가깝게 포착한 영상은 외환딜러(정준호), 영화기획자(장진영)란 구체적인 설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심지어 혹자는 ‘그들이 정준호와 장진영이었느냐, 몰랐다’고 말한다. 극단적인 반전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던지겠다는 목표에는 부합하지만 매력적인 감흥을 주기엔 부족해보였다.
뜻밖의 반가움을 전한 것은 반전을 예고하는 ‘떠나라’란 말. 이 단호한 한마디가 카타르시스의 언어로 마음을 두드렸다. ‘떠나라’를 속엣말로만 반복한 채 입 밖으로 차마 꺼내 실행하지 못하는 보통의 생활인에게 ‘매혹적인 주문’으로 다가온 것이다. 모델 정준호 및 장진영이 보여주는, 손가락 사이로 바람을 맞으며 환하게 미소짓는 행위는 얼핏 치열한 일터를 떠나 얻을 수 있는 혜택치고는 소박한 듯싶다. 그러나 거창한 일탈과 다른 현실감 있는 설정으로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이 CF는 영상이 매끈하게 잘 빠졌거나 모델의 매력이 극대화된 감상용 광고는 아니지만 투박한 이음새 사이로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진솔한 호소력을 발산한다. 제작진은 두 요소가 현대카드 광고의 특징을 이루는 중요한 자산임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론칭 광고에 이어 4월 초부터 선보인 제2차 CF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를 일관되게 외치면서 차창 밖으로 손내밀기란 동작을 반복해 선보이고 있다. 새 광고는 연인 사이인 정준호와 장진영이 일을 마치고 로맨틱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론칭 광고의 거칠지만 독특한 영상화법은 이번에 사라졌다. 세련된 감성광고의 모양새를 띤다. 1탄이 그랬던 것처럼 현 CF도 뜸을 들인 다음 진가를 인정받을지 모르겠지만 한참 맛을 들인 1탄의 독특한 질감이 바래 아쉬운 감도 있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