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리스 멜로디>의 감독 오쿠하라 히로시가 신작 <파도>를 들고 전주영화제를 찾았다. <파도>는 오쿠하라가 10여년 동안 사적으로 작업해온 두번째 장편. “왜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언제부터인가 8mm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고 있었다. 다소 지루한 부분이 있겠지만 참고 봐주기 바란다.” 그는 솔직한 말로 자신의 영화를 소개했다.
<파도>는 1999년 부산영화제 ‘새로운 물결’ 부문을 수상한 그의 전작 <타임리스 멜로디>와 여러 모로 비슷한 영화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는 어느 바닷가 휴양지, 겐사쿠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매년 친척 아저씨의 주유소에서 일하러 내려 오는 연인 미카를 기다렸지만, 미카는 1년새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대신 실연한 뒤 혼자 호텔에 묵고있는 유카가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여기에 빚에 쫓기는 겐사쿠의 친구 다츠가 합류하면서 젊은이들의 미묘한 분위기는 점차 위태롭게 변해간다.
<파도>는 시간에 몸을 내맡기는 젊은이들의 일상과 그 일상이 부서져가는 과정을 담담하고 세심하게 지켜보는 영화다. 당연하게 상업성이라고는 없기 때문에, <타임리스 멜로디>가 그랬던 것처럼, 오쿠하라는 친구들과 어렵게 일해야 했다. 처음 모인 인원은 감독과 촬영감독, 두명의 프로듀서였다. 그 네명이 몇십만엔 정도를 힘들게 모았고,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는 사이 프로듀서들은 도쿄에 가서 못 쓰는 필름을 구하거나 기획서를 돌리며 제작비를 구했다. 후반작업을 하던 도중 돈이 떨어지자, 현상소 주인은 이들이 더 이상 돈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현상을 해줬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지만 오쿠하라는 마음 편하게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친구들과 놀고 시나리오도 쓰려고 바닷가 집 한채를 빌렸다. 그런데 그냥 거기서 찍자는 의견이 나와 찍어버렸다”는 것이다. 제목 역시 <파도>라는 노래를 듣다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붙여 버렸다고 한다.
그런 감독인 만큼, 오쿠하라는 영화의 해석 역시 관객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믿는다. 관객들은 일본의 미학이나 제목의 상징성에 관해 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오쿠하라의 대답은 간단했다. “일본적인 감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외국인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잘못은 아니다”거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의미가 있는 거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다”는 식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독립영화제인 피아영화제를 통해 데뷔한 오쿠하라는 아직 신작 계획이 없는 상태. 그러나 그는 “일단 찍고 보자”는 생각으로 영화를 시작하기 때문에 몇 달 안에 새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관객들의 궁금증에 답했다.
김현정 ▶ 씨네21 [2002전주데일리]홈페이지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