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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독립영화 감독③] <공사의 희로애락> 장윤미 감독 - 자꾸 뒤를 돌아보는 아버지의 그 감정, 그 시기를 담는다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19-03-13

한 남성의 꾸밈없는 독백과 나이 든 육체 그리고 건설 현장의 노동과 자연의 풍경이 긴밀히 얽혀든다. <공사의 희로애락>을 보는 경험은 이렇듯 비범한 조화를 마주하는 일이다. 장윤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공사의 희로애락>은 지난해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언급을,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한국경쟁 최우수 한국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DMZ국제다큐영화제 홍형숙 집행위원장은 장윤미 감독의 도약을 “눈부신 신진. 한국 다큐멘터리계의 가능성을 확장시킬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라고 언급하며 축하했다. 장윤미 감독은 사실 최근의 활약 이전에도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감독이다.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어머니가 방에들어가신다>와 <늙은 연꽃>에서 각각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콘크리트의 불안>에서 붕괴를 앞둔 스카이 아파트를 오롯이 기록한 그다. 가족 구성원을 중심에 둔 일련의 작품이 눈에 띄지만, 장윤미 감독에겐 “가족이든 타인이든 다큐멘터리의 대상이 되는 순간 오히려 더욱 낯설고 어려워지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쉽고 가까워 보이는 사적 대상이 어떤 의미로는 더욱 복잡하고 마주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이렇게 빨리 아버지에 관한 영화를 찍게 될 줄 몰랐다.” <공사의 희로애락>은 원래 장윤미 감독이 건설 노동이라는 거시적인 테마로 구상했던 작품이다. “도시가 온통 공사 중이라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끼다가도, 건물을 짓고 있는 사람과 지어지고 있는 건축물을 보면 금세 반가운 마음이 들곤 했다.” 이런 애정에는 대구·구미 지역에서 평생 건설 기술자로 일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작업 초기에는 아버지를 해당 주제에 관한 인터뷰 목적으로 만날 생각이었다. “내 아버지보다는 한 사람의 노동자로 바라보고 싶다”는 딸의 제안에 아버지도 선뜻 동의했다. 그러나 2017년 3월에 촬영을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카메라 앞에 자기 아버지를 앉히면서 애초 계획과 조금 다른 지대로 나아가게 됐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는 깨달음과 함께, 투박하지만 진솔하게 자기 인생을 술회하는 한 남성 노동자 개인의 이야기는 놓치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평생 과로에 가깝게 건설 노동에 투신한 남자는 노년에 접어들어 자주 우울에 잠긴다. 얼마 전 어머니를 잃었고, 마음과 달리 육체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쇠락하고 있다. 구미의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는 서울에 사는 딸과 통화하면서 “왜 사는지 이유를 확실히 모르겠다”라고 혼잣말처럼 한탄한다. 감독은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아버지가 유독 뒤를 돌아보고 계셨다. 아버지의 그 감정, 그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로써 <공사의 희로애락>은 산업화 혹은 베이비붐 세대의 남성 노동자에 대한 인류학적 스케치를 시도하는 동시에, 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포착한다. 아버지의 직업을 통해 공사(工事) 중인 인간과 사물에 이유 모를 애정을 키워온 감독이, 그 풍경의 이면에서 한 인간의 공사(公私)가 복잡하게 뒤섞이는 과정을 그려낸 것이다.

그런데 장윤미 감독의 영화가 인물 다큐멘터리로서 진정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다. 관찰자와 대상 사이에 어떤 불화나 괴리가 생길 때다. 영화는 “아버지가 노동자로서 이렇게 분노가 많을 줄 몰랐다”라고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는 순간과 “나는 아버지와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고민이 양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릴 땐 <조선일보>를 받아 보는 우리 집이 너무 싫었지만”, <공사의 희로애락>에서 감독은 아버지와 새삼스레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자기 과거를 조금은 후회스럽게 반추하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해, 감독 자신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의견도 그대로 실었다. 그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드러내는 태도는 보기 드물게 침착하고 담대하다. 연출자의 조바심과 강박을 벗어던지자 다큐멘터리 속 대상이 더욱 생생하게 빛난다는 귀중한 실험 결과다.

스무살 무렵 고향 대구에서 상경한 장윤미 감독은 인권운동사랑방, 인문학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를 자신의 중요한 근거지로 꼽았다. 사랑방에서 인권 감수성을 비롯한 기본적인 가치를 배웠고, 수유+너머의 영상팀에 합류하면서 핸디캠을 들고 무작정 주변을 찍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2년간 EBS에서 방송국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방송 환경 특성상 매우 빠르게 돌아가는 다큐멘터리 작업 방식은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꼈다. 이후 출판사 마케터로 3년 간 일한 그는 퇴직금을 들고 2017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이 내겐 아직 잘 와닿지 않는다.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찍는 것이 좋다.” 장윤미 감독이 지금껏 다큐멘터리를 고집하는 이유다. 이끌린 대상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특히 그는 보통 사람을 “개인”으로 담고자 했다. 이를테면 가족 구성원을 찍더라도 가급적 한 화면에 여러 명이 모인 풍경은 담지 않겠다는 마음 같은 것이다. 홀로 존재하는 대상에 애정을 기울이는 만큼 장윤미 감독 스스로도 홀로 작업하는 걸 선호한다. 그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택한 데는 “혼자 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평소 가지고 다니는 장비는 소니 캠코더, 삼각대, 카메라에 부착하는 사운드장비 한대가 전부다. 이전 다큐멘터리는 모두 혼자 찍었고, <공사의 희로애락>만 일부 지방 촬영에 카메라 보조 스탭 한 사람이 동행했다. 아무리 독립 시스템이라지만 촬영감독은 꼭 필요하다는 주변의 조언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장윤미 감독은 “아마추어 영화처럼 보일지언정 아직은 내가 카메라를 잡고 싶다”고 했다. 그 덕분에 촬영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종종 “있는지도 몰랐다. 배경처럼 앉아 있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조용히 공간에 스며드는 감독의 접근법 중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대개 듣기만 한다는 것과, “나이에 맞게 보이려고 혹은 프로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않기”도 있다.

장윤미 감독의 차기작은 구미 지역의 한 노동조합을 다룬다. <공사의 희로애락>을 끝낸 뒤 감독은 “내게 남은 질문은 여성 노동자에 관한 것”이라고 느꼈다. 특히 동일한 노동을 하고도 남녀 임금 격차가 큰 현실이 주요 화두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남성 노동자 역시 나름대로 소외되는 지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바깥으로 꽤 드러나는 존재였다고 본다. 이제는 산업화 시대를 거쳐온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에 주목하고 싶다.” 이런 문제의식은 방송국을 그만둔 장윤미 감독이 생계를 위해 물류센터에서 일할 때 저임금 고강도 노동의 고통을 체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심화됐다. 이미 1년 남짓 촬영을 진행한 신작에 대해 감독은 이전보다 조금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재현의 방향성 역시 더 좁고 느린 길로 가려는 듯 보인다. “노사문제를 다루지만 투쟁 장면은 없다. 노동 행위를 애써 더 특별하게 비추는 장면도 배제하려 한다. 노동조합 분들이 좋아해주실지 걱정되지만 그래도 조금은 새로운 영화가 나왔으면 한다.”

<공사의 희로애락>과 차기작 모두 지방 촬영에 필요한 교통비만 해도 상당한 액수일 텐데, 장윤미 감독은 제작비를 어떻게 충당하고 있을까. “작업 아니면 생계, 딱 두 가지만 생각한다”는 감독은 일반적인 제작지원 사업이 선호하는 것과 거리가 먼 자신의 작품 스타일을 우스갯소리로 한탄했다. 딱 한번 <공사의 희로애락>을 만들 때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집행위원회와 미디액트가 공동주최한 지원 사업에서 200만원을 받은 것이 큰 힘이 됐다. 아쉽게도 <공사의 희로애락>은 아직 개봉 계획이 없다. 장윤미 감독은 동료들과 함께 영화제나 배급사에 의존하지 않고 상영할 수 있는 독립 상영관 시스템을 도모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으론 척박한 환경에 골몰하지 않는다며 기자를 안심시켜주기도 했다. 그는 “카메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며 내적인 믿음을 다지는 편이었다. 이번 만남으로 장윤미 감독 한 사람과 그의 곁을 지키는 카메라 한대가 앞으로 얼마나 무수한 기록을 남길지 예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됐다. 그 치열한 희로애락의 기록을 가능한 한 더 많은 관객이 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장윤미 감독에게 영향을 준 감독과 영화

“샹탈 애커먼의 영화를 좋아한다. 대단한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 스민달까. 감독이 2015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그의 작품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왠지 인간적으로 애틋하고 궁금한 감독이다. 특히 샹탈 애커먼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에 관해 만든 다큐멘터리 <노 홈 무비>(2015)는 국내 예술영화관이나 미술관에서 상영할 때마다 챙겨 본,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 말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정서로 전달하는, 그래서 문학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생각해보면 내가 다큐멘터리를 재밌게 느끼는 이유도 사회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장르라는 점이 작용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좀더 문학에 가까운,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도 해보고 싶다.”

● 장윤미 감독의 전작들

장윤미 감독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한 한 남자가 기자회견이 아닌 파티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의 촬영을 시작했다. <늙은 연꽃>은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한 할머니의 일상을 바라본 작품이다. 할머니의 부재와 그 애도 기간이 담긴 <공사의 희로애락>과 공간적으로 짝을 이루기도 한다.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어머니에게 장윤미 감독이 공부를 가르쳐주는 과정을 기록되어 있고, <콘크리트의 불안>에서는 서울의 최고령 아파트라 불렸던 정릉의 스카이 아파트가 무너지는 광경을 비춘다. 붕괴 직전으로 판정받았으나 오랫동안 무너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있는, “건물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린 작업이다. 타인이든, 가족이든, 사물이든 장윤미 감독의 영화에서 모든 존재는 있는 그대로 막연하고 자유롭게 포착된다. 일말의 부정성까지 배제하지 않기에 감독이 다루는 대상은 더 복잡한 아름다움을 갖는다. 최근작으로 올수록 기술적으로 조금씩 매끄러워지고 있는데, 카메라 너머에서 대상을 지지하고 애도하며 또 저항하는 감독의 치열함은 조금도 변함없이 일관적이다.

● 필모그래피: 장편 2018 <공사의 희로애락> 2012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 / 단편 2017 <콘크리트의 불안> 2016 <늙은 연꽃> 2014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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