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클랜스맨> 촬영현장의 스파이크 리 감독과 애덤 드라이버(왼쪽부터).
지난 칸국제영화제 최대 이변은 단연 <블랙클랜스맨>(국내에서는 극장 개봉 없이 2차 시장으로 직행했다)의 심사위원대상 수상이었다. 냉정하게 말해 스파이크 리는 21세기 들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름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좋아해>(1986)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인상적인 데뷔를 한 스파이크 리는 <똑바로 살아라>(1988), <정글 피버>(1991), <말콤 X>(1992) 등 대표작을 연달아 내놓으며 블랙 시네마의 아이콘이 됐지만, 최근 10여년간 그가 손댄 작품은 흥행에 참패하고 비평적으로도 혹평을 면치 못했다. 특히 한국영화 <올드보이>(2003)의 할리우드 리메이크판이 안겨준 실망감이 결정타가 됐다. 투자받는 데 난항을 겪은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흑인 부대를 다룬 <안나 성당의 기적>(2008)의 제작비 마련을 위해 유럽까지 건너갔고, <더 스위트 블러드 오브 지저스>(2014)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았다. 하지만 <겟 아웃>(2016)으로 단숨에 할리우드 최고 유망주가 된 조던 필 감독은 <블랙클랜스맨>의 연출자로 스파이크 리를 떠올렸고, 그가 10여년 만에 메이저 스튜디오(포커스 피처스)와 작업한 <블랙클랜스맨>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스파이크 리 전작들의 총합
실화와 허구가 적절하게 혼합되었다는 자막으로 문을 여는 <블랙클랜스맨>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1970년대, 론 스쿨워스(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콜로라도 스프링스 경찰서의 첫 흑인 경찰이 된다. 이곳의 ‘재키 로빈슨’이 된 그는 자신에게 기록실 업무 이상의 임무를 맡겨달라고 먼저 의사를 표할 만큼 의욕이 넘친다. 그는 극단적 백인우월주의자 모임인 큐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이하 KKK) 단원을 모집하는 신문광고를 보고 대뜸 전화를 걸어 자신이 흑인과 유대인, 이탈리아인, 중국인 등을 모두 싫어하는 순수 아리아인 혈통이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진짜 이름을 말해버린 그에게 KKK쪽에서 가입을 권유한다. 흑인 영어와 백인 영어에 모두 능숙한 론은 KKK와 전화로 연락하고, 그의 유대인 동료 플립(애덤 드라이버)은 론 행세를 하며 KKK와 직접 만나 비밀 정보를 수집한다.
아마 스파이크 리의 오랜 팬들은 <블랙클랜스맨> 곳곳에서 전작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소재 면에서는 시민평등권 운동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 교회에서 벌어진 KKK의 테러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 <네 소녀>(1997)가 연상된다. 또한 <블랙클랜스맨>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와 <국가의 탄생>(1914)이 가진 인종차별적 요소를 활용한 시퀀스를 선보이는데, 뉴욕 대학교 재학 당시 만든 단편 <대답>(1980) 역시 수업시간에 <국가의 탄생>을 보고 “왜 D. W. 그리피스의 영화 제작기술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이 영화가 KKK를 미화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느냐”며 분노한 그가 만든 작품이었다. “미국은 절대 KKK의 전국 국장 데이비드 듀크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론의 대사를 무색하게 만드는 푸티지는 LA 흑인 폭동을 촉발시킨 로드니 킹 구타 사건으로 문을 연 <말콤 X>와 닮았다. 70년대 KKK를 이끌었던 데이비드 듀크는 2017년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백인우월주의 집회는 미국을 되찾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될 것”이라며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샬러츠빌의 비극에 대해 “양쪽 모두 잔인했다. 그들 모두가 신나치주의자도, 백인우월주의자도 아닐 것”이라고 평가한다.
오스카 공로상을 받아도 ‘Oscars So White’
스파이크 리 감독은 <블랙클랜스맨>에서 흑인 급진파 운동가 콰메 투레가 인종차별적인 영화 <타잔>을 보며 자란 장면을 예로 들며, “영화는 언제나 강력한 세뇌의 매개체였다. 그게 할리우드 역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GQ>)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 그의 작품이 잊혀선 안 될 흑인의 역사를 담고, 현재와 직접적으로 병치하는 구도를 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누군가는 이런 형식이 지나치게 프로파간다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젊은 세대는 아무것도 모른다. 말콤 X가 누구인지, JFK가 누구인지, 무하마드 알리나 재키 로빈슨에 대해서도 모른다”(무하마드 알리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가 왕들이었을 때>(1996) 중)고 꼬집는 그에게는 종종 메시지가 미학보다 우선한다. 특히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주의자인 기업인 출신 엔터테이너가 투표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지금, 스파이크 리에게 상업영화의 대중적 파급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스파이크 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블랙클랜스맨>이 투표에 영향을 미쳐 2020년 선거에서 에이전트 오렌지(스파이크 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칭할 때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독성 고엽제의 이름으로 대신 불렀다.-편집자)를 백악관에서 몰아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신을 비롯한 흑인들이 아카데미 시상식과 칸국제영화제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내온 영화인이다. 빔 벤더스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던 당시 칸국제영화제는 <똑바로 살아라>가 아닌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했는데, 스파이크 리는 상을 빼앗겼다며 공개적으로 영화제와 빔 벤더스를 비판했다. 2016년에는 아카데미 시상식 공로상의 주인공으로 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Oscars So White’(지나치게 백인 중심적인 오스카) 비판에 동참해 참석을 거부했다. 최근 <GQ>와의 인터뷰에서는 “1989년에 <똑바로 살아라> 대신 작품상을 탄 영화가 무엇인지 아나? 빌어먹을!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다. (Driving Miss Motherfuxxing Daisy) 지금 누가 그 영화를 보는가?”라며 비꼬았고, 그가 참여한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보다 그것이 좋아>(스파이크 리의 <그녀는 그것을 좋아해>의 드라마판이다.-편집자)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말콤 X>의 덴젤 워싱턴이 <여인의 향기>(1992)의 알 파치노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뺏겼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블랙파워가 대세인 것처럼 보이는 최근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분위기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흑인 여성들이 패션지 커버를 장식하고 있지만 정작 커버 모델을 결정하는 사람 중에는 흑인이 없다. 우리가 영화를 만들고, TV에 나오고, 음반을 만드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리를 위한 마지막 싸움은 그곳의 문지기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데이즈드>)
<블랙클랜스맨>은 스파이크 리가 해왔던 일의 총체와 같은 작품이며, 근본적으로 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다만 LA 흑인 폭동이 벌어지기 직전 개봉한 <똑바로 살아라>로부터 30년 후, 스파이크 리의 직설적인 영화가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세상은 속 시원한 그의 영화를 호출하고, 스파이크 리도 기꺼이 정공법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35년경에는 오히려 백인이 소수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미투(#MeToo)와 타임스 업(Time’s Up) 운동으로 중요한 분기점을 맞이한 할리우드는 (특히 시상식에서) 다양성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상징적인 장이 됐다. 스파이크 리는 현재의 미국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감독이며, 지금 가장 중요한 할리우드 감독으로 거론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