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는 1973년 한국과 일본의 8월을 뜨겁게 달궜던 김대중 납치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이 사건의 진상을 그리려는 영화는 아니다. 한국의 중앙정보부, 주일 한국영사관의 일부 외교관, 그리고 일본 자위대가 이 사건의 수면 아래 존재했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폭로한다.
하지만 <케이티>가 진정 보여주려 하는 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들의 비장한 삶이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눈을 번득이는 김차운과 ‘군인이 아닌 군인’이라는 존재조건을 견디지 못하는 도미타는 자신만의 신념을 세우고 이에 따라 단호하게 행동을 취한다.
반면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중앙정보부와 자위대라는 거대한 조직은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기만 한다.아웃사이더들의 비루한 삶을 격정적이면서도 넉넉하게 담아온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국가, 조직,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장벽 뒤에서 꿈틀거리는 군상의 모습을 힘있게 스케치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