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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F에서 만난 영화인들⑥] <푸난> 드니 도 감독, "어머니가 겪었던 이야기는 내게는 유산... 인간의 이면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18-10-31

프랑스 출신 드니 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푸난>은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하에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다. 정치적인 메시지를 앞세우기보다는 어린 소년 소반과 그를 잃어버린 가족이 겪어야 했던 일대기를 시간 순으로 차근차근 짚어주는 영화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말 못할 사연을 마주하는 것은 힘들다. 역사적 사건을 재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고자 했던 사람들이 지켜냈던 인간성을 파고드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대학살의 현장이 실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캄보디아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푸난>이 선사하는 아이러니다. 이를 뚝심 있게 그려낸 드니 도 감독의 비전에 BIAF는 심사위원상으로 화답했다.

-<푸난>이 올해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크메르루주 정권에 의해 자행됐던 슬픈 역사를 다룬 영화를 본 프랑스 및 유럽 관객의 반응은 어땠나.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되는 동안 영화와 거리두기가 어려웠다. 뒤늦게 관객 반응을 보고 나서야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폴란드 관객은 독일에 의해 고통받았던 자신들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줬다고 말하기도 했고, 한 캄보디아계 학생은 부모님께 돌아가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싶다고 말해주기도 해서 큰 힘이 됐다.

-<푸난>의 엔딩 크레딧에는 “어머니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가족이 실제 겪었던 사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가 어쩌면 ‘나의 뿌리 찾기’와 같은 의미였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밥 먹다 음식을 남기면 “검은 옷을 입은 자들에게 고통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절대 음식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어머니는 ‘크메르루주’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한 적이 없지만 나는 그때마다 괴물 같은 형상의 어떤 존재를 떠올리곤 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친구들이 방학 때마다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머니에게 우리의 가족, 역사에 대해 물었지만 늘 답변하길 주저하셨다. 1995년 10살 무렵에 처음 캄보디아를 방문했는데 그때는 역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며 겁부터 났다. 내가 캄보디아인이라는 걸 받아들이기조차 어려웠다. 1997년에 다시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하필이면 그날 야당집회에서 수류탄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기억을 떠올린 어머니는 머물던 친적 집에서 새벽 4시에 나를 데리고 베트남을 거쳐 도망치듯 빠져나오기도 했다. 이를 계기삼아 본격적으로 역사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폴 포트와 크메르루주 군이 상상과 달리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 또 놀랐다. 어머니가 겪었던 이야기는 내게는 유산과도 같은 이야기다.(그는 인터뷰가 끝나고 뒤이어 가진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푸난>의 주인공 소반의 모델이 자신의 형이었다고 알려줬다.)

-벨기에와 프랑스, 룩셈부르크, 캄보디아 합작 영화다. 제작 지원을 받게 된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상황이 너무 어려웠다. 무거운 주제를 지닌 이야기인 데다 데뷔작을 만드는 감독이라 지원받기가 더더욱 힘들었다. 프랑스에서는 TV방송국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 장편애니메이션 제작비를 모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당연히 모든 곳에서 거절당했고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그랑테스트 등 프랑스 지방자치단체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 돌아다녀야 했다. 룩셈부르크와 벨기에쪽에서 공동 제작 형태의 지원을 받고 독일과 캄보디아 제작사도 참여했다. 총 6개 스튜디오에서 지원을 받고 제작하게 됐는데 정말 이런 작업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건강에 해로운 작업이다. (웃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기보다는 한 가족이 겪는 탈출기에 집중한다. 물론 그들과 엮이는 사람들 모두 절대적인 가해자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희생자에 가깝다.

=어머니의 경험담에서 비롯됐지만 그 경험을 그대로 묘사하지는 말자는 나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캄보디아를 방문해 어머니의 지인들도 만나고 많은 역사 자료를 찾으면서 인간이 지닌 다양한 면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크메르루주 정권하에 죄를 범했던 이들의 가족도 실제로 많이 생존해 있다. 그들의 모습을 영화에 담은 이유도 흑백논리를 내세워 이들을 재단하지 말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생존기를 다룸에 있어 필연적으로 당시 자행됐던 폭력적 상황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을 텐데, <푸난>이 여타의 역사 소재 영화와 다른 점은 폭력 묘사를 억제하면서 고통의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는 점이다.

=그들의 범죄를 리스트로 만들어 나열하듯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진짜 담고 싶었던 것은 가족의 이야기, 한 아이가 어머니를 찾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딱 한 장면, 폭력적인 묘사가 등장하는데 피해자가 가해를 저지르는 고통을 수반한 그 장면만큼은 꼭 보여주고 싶었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의 최후를 기억하는가. 미디어에 공개된 그의 최후는 법적인 처벌이 아니라 처형에 가까웠다. 이러한 인간의 이면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고블랭영상학교를 졸업할 때도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했는데 애니메이션을 연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

=어릴 때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어머니가 너무 싫어해서 몰래 그리곤 했다.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부모님의 사인을 위조해서 들어가기도 했다. 고블랭에 진학한 것도 그냥 거기가 최고라니까 무작정 도전한 거였다. 졸업작품을 만들 때쯤 나의 가족, 나의 역사에 대해 직시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꼭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나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전이 구체화됐다. 지금도 어떤 수단이 됐든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푸난>의 극장 상영 배급 스케줄은 결정된 것이 있나.

=한국에서는 수입되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캄보디아에서도 개봉하길 원하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프랑스어 더빙이 아니라 캄보디아어 버전 더빙 작업을 새로 할 생각이다. 어머니가 프랑스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 작업은 꼭 필요하다.

<푸난>은 어떤 작품?

1975년 4월 17일, 폴 포트 군대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던 날에 슈우와 코운 부부는 아들 소반을 비롯해 가족들과 피난길에 오른다. 하지만 크메르루주 세력들이 사람들을 집단수용소로 몰아넣고 강제징용을 시키는 과정에서 슈우와 코운 부부는 소반을 잃어버린다. 아이를 찾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두 젊은 부부와 비극의 현장에 홀로 남겨진 소반이 겪는 수년간의 탈출기를 다룬다. 아름다운 캄보디아 자연경관의 색채와 감각적인 연출을 통해 인간사의 이면을 들춰내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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