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여자력’이라는 말이 있다. 여성스러움을 위한 노력을 뜻하는 말로, 가령 스커트가 10벌 이상 있다거나 손수건과 휴지를 꼭 갖고 다니는 덕목(?)을 의미한다. <국화와 단두대>는 ‘여자력’과는 거리가 먼, 현재 일본의 사고보다 더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 혼란스러웠던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여성 스모단이 주인공으로, 그들의 강인한 모습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강한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 토모요, 대규모 학살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 왔다가 창녀가 된 조선인 타마에도 있다. 두 주요 캐릭터를 각각 연기한 기류 마이와 간 하나에는 일본에서 떠오르고 있는 신인배우다. 이들은 스모 선수를 연기하기 위해 최소 2개월 반에서 3개월까지 대학 여성 스모부 코치에게 지도를 받고, 5kg 정도 체중을 불렸다고. 스모는 직업 특성상 운동을 꾸준히 하는 배우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스포츠였다. 간 하나에는 “갑자기 불어난 체중 때문에 발목에 무리가 가 병원에 가기도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거의 민낯으로 여성의 강인한 신체를 보여주는 연기를 하는 것은 배우로서도, 여자로서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우린 원래도 참 ‘여자력’ 없는 사람들이었다. (웃음) 여자들끼리 연기 연습을 위해 모일 때마다 어떻게 넘어져야 할지 이런 얘기들만 나눴다.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스모에만 집중했던 경험이 소중했다.”(기류 마이) 극중 토모요와 토카치가와는 무정부주의자 단체의 나카하마(히가시데 마치히로), 후로타(간 이치로)와 가까워지는데, 실제로 배우들끼리 무척 친해졌다고. “여자들은 점점 강해지는데 간 이치로는 촬영하면서 7kg가 빠져서 보기 안타까웠다. (웃음)”는 기류 마이의 말에서 현장의 유쾌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간 하나에는 실제 재일교포다. 그는 “증조할아버지가 도쿄에서 유학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시를 쓰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며 어릴 때부터 한국인의 아픈 역사를 부모에게 전해 들었다고 전했다. 간 하나에는 <국화와 단두대>가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를 언급한 것을 넘어서서 “힘이 약한 여자나 아나키스트, 오키나와인 등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강해지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강조했다. “앞으로도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부분은 어디에나 있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어떤 나라, 어떤 국민도 다 갖고 있지 않을까.”
[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⑰] <국화와 단두대> 배우 기류 마이, 간 하나에 - 세상을 바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