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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
2002-04-25

혼란의 위대함

Deer Hunter 1978년, 감독 마이클 치미노 출연 로버트 드 니로 <EBS> 4월27일(토) 밤 10시

“<디어 헌터>의 위대함은 혼란의 풍부함에 있다.” 어느 평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디어 헌터>는 위대한 영화다.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 등 미국영화 거장들 작업을 연상케하는 이 영화는 마이클 치미노 감독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행운과도 같았다. 치미노 감독은 한때 “위대한 건축가이자 영화형식의 혁신자”라는 가슴 벅찬 찬사를 들은 적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디어 헌터>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면서 치미노 감독에겐 행운의 열쇠가 되었지만 이후 그의 명성은 바닥에 떨어졌다. 대작 <천국의 문>이 흥행에 완전히 실패하면서 제작사를 파산지경으로 몰아간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영화는 세 남자의 이야기다. 제철소에 다니는 마이클과 닉 등은 종종 사슴사냥을 즐긴다. 이들은 스티븐이 결혼한 뒤 베트남으로 향한다. 마이클 등은 베트남에서 포로가 되는 신세가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육신이 피폐해지기 시작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마이클은 닉이 실종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다시 베트남으로 향한다.

<디어 헌터>에서 잘 알려진 것은 러시안 룰렛 장면. 베트남에서 포로가 된 마이클 등은 러시안 룰렛을 강요받는다. 총에 몇개의 실탄을 넣고, 자신의 생명을 운에 맡긴 채 머리에 총을 겨누는 것이다.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싼 남자들을 촬영한 이 장면은, 소름 돋는다. 포로로 잡힌 이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들 머리에 총을 겨눈 채 게임을 벌어야만 한다. 이 와중에 누군가는 정신적 파멸을 경험하기도 한다. 영화의 러시안 룰렛 장면은 당시 미국영화에서 베트남전이 어떤 시각으로 재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내부’의 적을 향한 연민 어린 시선은 이후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등의 영화로 이어진 바 있다.

영화의 구조는 매혹적이다. 치미노 감독이 건축가에 버금가는 솜씨로 영화를 직조했다는 평은 공감이 갈 만하다. <디어 헌터>는 상영시간에 비해 시퀀스의 숫자는 턱없이 적다. 특히 도입부의 결혼식 시퀀스는 장황하게 느껴질 정도. 영화는 크게 다섯 단락으로 이루어지는데 결혼식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의 귀향으로 이어지는 내러티브 구조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를 도식적이라 보면 곤란하다. 치미노 감독은 순수성의 상실, 미국적인 꿈의 소멸 등의 주제를 영화구조의 기하학에 힘입어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전쟁터와 미국을 오가는 공간 배치도 극의 설득력을 높인다.

로버트 드 니로 등이 연기하는 인물들은 존 포드 영화에나 나올 법한 고전적 캐릭터들로, 전쟁의 비극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사람들은 서서히 미쳐가고, 도덕적 판단은 쉽게 내릴수 없다. <디어 헌터>의 진정한 힘은 이 영화가 지루한 설교 대신,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중요한 ‘무엇’인가를 스스로 판단하게끔 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