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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②] <영주> <여자의 비애> <소피아> 外
임수연 2018-09-26

<영주> Young-ju

차성덕 / 한국 / 2018년 / 100분 /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영주(김향기)는 자기보다는 사고뭉치 동생 영인(탕준상)을 보살피며 사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이제 엄마 같은 것 필요 없다”고 당차게 말하는 18살 소녀 가장이다. 하지만 영인이 큰 사고를 쳐서 합의금을 내지 않으면 소년원에 갈 위기에 처하고 설상가상으로 대출 사기까지 당하면서 기댈 곳이 부재한 현실을 자각한다. 우연히 부모의 교통사고 관련 판결문을 읽다가 가해자의 집 주소를 발견한 영주는 무작정 그들을 찾아가고, 상문(유재명)과 향숙(김호정)의 두부 가게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하지만 동생의 합의금도 내주고 친딸처럼 대해주며 검정고시 준비까지 도와주는 부부의 친절함에 영주는 처음과 다른 마음을 갖게 된다.

일찍 돌아가신 친부모보다 그 부모를 죽게 만든 사람이 자신에게 더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는 감정선이 꽤 파격적이지만, <영주>는 이를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쉽게 타인에게 마음을 주고 버려짐을 두려워하는 10대의 보편적인 심리가 바탕이 되어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감정을 원 없이 쏟아낸 영주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어깨를 다독이는 엔딩이 반갑다.

<여자의 비애 > Working Woman

미셀 아비아드 / 이스라엘 / 2018년 / 93분 / 플래시 포워드

자식 셋을 키우고 있는 올나는 자신의 성실함을 기억하는 베니 덕분에 그의 비서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된다. 베니는 바다 옆에 고층 빌딩을 짓고 있다고 과시하는 부동산 업자로, 업계에서 인맥도 잘 쌓아왔다. 하지만 올나는 직장인으로서의 커리어와 상사의 성희롱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받는다. 호텔방에서 키스를 기도하는 베니를 완강하게 거부하지만, 그는 자신이 잠시 미친 것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하고는 빠른 승진을 시켜주는 식이다. 직장 내 성폭력에 침묵하면 엄청난 대가가 돌아오고, 더군다나 올나의 남편은 레스토랑 일이 어려워지면서 부인에게 기대려고 한다. 남편과 자식 걱정하랴 집안일하랴 다중의 짐을 짊어진 기혼 여성들은, 일에 대한 욕망을 갖는 순간 더한 고충에 시달려야만 한다. 여자쪽이 자신을 미치게 만든 것이라는 베니의 발언이나 직장 내 성폭력이 있을 때 즉시 일터를 박차고 나오지 못한 피해자를 나무라는 전개는 최근 미투(#MeToo) 운동 이슈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올나가 위기를 극복하는 어떤 방식은 일하는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보여준다.

<소피아> SOFIA

메리엠 벤바레크 / 프랑스, 카타르 / 2018년 / 79분 / 플래시 포워드

모로코의 지방 법에 의하면, 결혼으로 연결되지 않은 반대 성의 사람들끼리 성관계를 하면 1개월에서 1년 정도 징역형을 받는다. 아직 미혼인데 덜컥 임신한 소피아 역시 감옥에 갈 위기에 처했다. 그와 비슷한 또래이자 의대생인 친척 레나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서 무사히 아기를 낳을 수 있었지만, 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결국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나름 중요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던 소피아의 아버지는 조만간 징역형을 살지 모르는 딸 때문에 상황이 난처해졌다며 화를 내고, 일을 바로잡을 방법을 궁리한다. 그래서 딱히 남자를 사랑하지도 않았던 소피아와 그의 가족, 레나의 가족은 소피아와 성관계를 맺은 오마르의 집에 모이게 된다.

성폭행 피해 여성이 오히려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여성 인권문제가 심각한 모로코의 사정은 도입부부터 충격을 안긴다. <소피아>는 여기에 계급 문제를 함께 그려낸다. 레나 그리고 부유한 프랑스인과 결혼한 레나의 엄마는 오마르보다 계급이 높다. 소피아와 레나, 오마르는 집안 풍경부터 옷차림까지 눈에 띄게 차이가 나며, 소피아의 처벌을 막기 위해 이들이 모여 논의하는 모습은 각자의 계급과도 흥미롭게 이어진다. 영화를 연출한 메리엠 벤바레크 감독은 모로코에서 태어나 파리 및 벨기에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의 첫 장편 <소피아>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행복도시> Cities of Last Things

호위딩 / 대만, 중국, 미국, 프랑스 / 2018년 / 107분 / 아시아영화의 창

영화는 갑자기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남자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강렬한 이미지로 누군가의 죽음을 먼저 보여준 후 그 내막을 보여주는 도입은 <행복도시>의 전체 구성과 닮았다. 전직 형사 장동링의 인생에 중요한 분기점이 된 굵직한 사건을 시간 역순으로 배치하면서, 그가 파멸에 이르게 된 본원적 이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1부의 배경은 모든 시민이 국가에 감시당하는 마이크로칩을 손목에 삽입당한 채 살아가는 어떤 디스토피아적 미래다. 장동링은 과거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났던 전 부인을 찾아간다. 2부의 그는 당시 부인이 상사와 정사를 나누는 과정을 목격하고,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며 살던 외국 여자 아라와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눈다. 10대 시절 스쿠터를 훔친 혐의로 경찰에 잡힌 장동링이 같은 현장에서 체포된 여성이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어머니임을 알게 되는 것이 3부다. 허우샤오시엔의 <쓰리 타임즈>(2005)와 가스파르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2002)을 섞은 듯한 영화다. 때문에 나중에 등장할 사건을 암시하는 복선을 깔아두며 역순으로 플롯을 전개하는 구성이 <행복도시>만의 독창적인 요소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각 파트의 시대 묘사에 확연한 차이를 두고 장르색까지 과감하게 변화시키는 데서 오는 쾌감이 존재하고, 이것이 주인공의 내면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신선한 영화적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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