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게임이 하나 시장으로 나온다. 그러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만성변비나 급성비만 같은 이쪽 업계의 직업병에 시달리며 오랜 시간 매달렸다. 과연 완성될 수 있을 것인지 회의도 숱하게 일었던 게임을 시장에 보내놓고 가슴을 졸이며 기다린다. 과연 사람들이 좋아할까? 외국 어떤 게임 제작자들처럼 페라리를 타고 다닐 정도는 아니라도 최소한 다음 게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
발매된 지 고작 하루나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상한 소문이 들려온다. 와레즈 사이트에 그 게임이 통째로 올라와 있다고 한다. 불법복제를 막기 위해 걸어놓은 락은 어떤 재기 넘치는 ‘릴 그룹’에 의해 이미 풀려 있다. 수백명이 달라붙어 게임을 다운받고 있다. 운영자에게 항의해보지만 반응이 없다. 전용선은 보편화된 지 오래다. 공짜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몇만원씩 들여가며 살 이유가 있다.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 제작사를 동정할 필요는 없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는 게임 구매결정에서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내 게임산업을 위해 부족한 게임을 사줄’ 필요는 절대 없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게임밖에 만들 수 없는 회사라면 일찌감치 접는 게 여러모로 현명하다. 하지만 와레즈 때문에 게임이 팔리지 않는다면 문제는 다른 국면으로 넘어간다.
와레즈와 정보공유, 카피레프트 등은 한두 마디로 쉽게 단정지을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팝업 광고를 띄우고 심지어 가입비까지 징수하는 와레즈는 이미 정보공유와는 아무 관계없는 남의 것을 훔쳐 팔아먹는 도둑에 불과하다.
더 놀라운 것은 몇몇 와레즈 이용자들의 태도다. 불법복제를 한번도 안 해본 사람보다는 해본 사람이 훨씬 많은 건 딱히 비밀스러운 사실은 아니다. 거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건 적건 약간의 죄책감은 가지고 있다. 최소한 불법복제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열심히 돈벌어 오시는 부모님 보기 죄송하지 않냐’며 정품 사용자를 ‘돈이 튀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너희들은 불법복제를 해본 일 없냐며 논의에 물을 타는 일은 흔하고, 때로는 외국게임을 정품으로 쓰는 것은 매국 행위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기도 한다.
<쯔바이>라는 일본게임이 있다. 국내 사정에 밝은 제작사는 한국 출시를 꺼렸지만 이례적인 쯔바이 발간기원 서명운동 등 우여곡절이 있은 끝에 한글화되어 출시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와레즈 사이트에 <쯔바이>가 등장했다. 거기까진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쯔바이> 공식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정품 사용자를 욕하며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곳을 링크해놓는 패악을 보면 할말이 없어진다.
그런 행동의 논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과 거부라고 미화하기에는 염치가 없고, 설익은 영웅심리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정도가 지나치다. 물건을 훔치는 것만으로도 나쁜 일이지만, 도둑맞은 사람 집에 전화를 걸어 약을 올리는 건 더 나쁘다.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후자가 훨씬 크다. 유난히 정성스럽게 만들어놓은 <쯔바이> 홈페이지가 몇몇 사람들이 던져놓은 돌멩이와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정품 사용자들의 반응으로 얼룩지고 있다. 게임계에서 유독 이런 일이 불거지는 것은 어쩌면 사용자의 연령대가 낮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는 나이와는 상관없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Madoe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