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보유를 명분으로 미국이 전쟁을 한창 준비 중이던 2002~2003년. <충격과 공포>는 시민의 두려움을 먹이 삼아 전쟁의 몸집을 불려가던 조지 부시 정부의 내막을 파헤치는 저널리즘 드라마다. 군대 내 폭행 사망 사건을 파헤치는 법정물 <어 퓨 굿맨>(1992)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인물들을 힘 있게 그려낸 적 있는 로브 라이너 감독이 이번에는 거대 권력에 돌을 던지는 실화 속 주인공들을 불러낸다. 대량살상무기, 충격과 공포 전술, 합동 언론 나이트 리더지 등 <충격과 공포>를 보기 전에 복기해볼 만한 실재 소재들을 정리해봤다.
작전명 ‘이라크의 자유’의 위력은 어느 정도?
2003년 3월 20일 새벽,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미국의 대규모 공습이 시작됐다. 미 공군이 영국 및 호주와 연합해 바그다드 곳곳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한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도시는 불길에 휩싸였다. 첨단 무기로 주요 군사시설에 정밀 타격을 가해 군사 체계 및 통신망을 마비시켰고, 정부 청사와 방송국 등 주요 기관이 초토화됐다. 미국 <CNN>을 비롯한 언론들은 이 끔찍한 광경을 뉴스룸 화면에 띄우며 일제히 “쇼크 앤드 아”(Shock and Awe)라고 보도했다. 충격과 공포. 일시에 압도적인 타격을 입혀 적의 전투 의지를 상실케 만드는 무력화 전술을 의미하는 군사 용어로 ‘신속 제압’(rapid dominance)이라 불리기도 한다. 걸프전의 해군 구축함 함장이었던 할란 울먼과 전 국방부 차관 출신인 제임스 웨이드가 고안한 이 개념은 1996년 그들의 저서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2003년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실제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론적으로는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하면서 적진의 사기를 꺾자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위압적인 군사력과 제한적인 정밀 타격이 가능한 최첨단 기술을 과시하는 의미도 있다.
공식적으로 ‘이라크의 자유’(Operation Iraqi Freedom)라 불렸던 이 작전은, 1991년 걸프전과 비교할 수 없이 진일보한 최첨단 무기를 사용해 이라크의 방공포대와 레이더 시설 등에 막강한 타격을 입혔다. 반경 300~400m 내 전자장비를 마비시키는 극초단파 전자폭탄을 사용해 이라크군의 무기, 통신 체계를 붕괴시켰다. 크루즈 미사일 1200기, 스마트 폭탄 800여발 등 처음 이틀간 폭격에 사용한 비용만 1천억원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군사 전문가들이 창안한 충격과 공포 전술은 현재 이슬람 무장단체 IS가 참수, 화형 등의 인질 살해 동영상을 전세계에 퍼뜨리는 방식에서도 그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IS의 동영상은 압도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테러의 효과와 동시에 잔혹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로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으로도 활용된다.
로브 라이너 감독이 연기한 존 월콧 나이트 리더 위싱턴 지부 편집장.
대량살상무기는 언론의 보도처럼 정말 존재했나
부시 정부의 이라크전쟁을 논하기 위해선 2001년 9월 11일로 돌아가야 한다. 이날,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무장단체 알 카에다에 의해 납치된 비행기가 뉴욕 쌍둥이빌딩으로 돌진했다. 이어서 조지 부시 정부는 알 카에다를 돕는 탈레반 정권 박멸을 목표로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선포했고,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 또한 알카에다와 연관이 있다는 정보가 뉴스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2002년 딕 체니 부통령이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언급한 것을 필두로, 주요 언론인 <뉴욕타임스> 등이 연속적으로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의 제조 증거로 추정되는 자료들을 신문 1면에 내보낸다. 대량살상무기란 핵무기, 생화학무기, 중장거리 미사일 등 단시간 내 대량의 인명을 살상하고 질병 유발 및 환경 파괴를 일으키는 무기다. 뉴욕의 상징적인 건물이 재처럼 바스라지는 광경을 목격한 미국 사회가 두려움에 잠식되는 과정에서 대량살상무기의 존재감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충격과 공포>의 기자들은 침공당하지 않기 위해 침공하려는 시민의 공포를 이용한 부시 정부의 음모를 추적하고자 한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주도하에 이뤄진 펜타곤의 주도면밀한 전쟁 준비 과정은, 실체 없는 대량살상무기로 명분을 얻은 다음 미국의 군사력을 증명해 보이려는 완벽히 조작된 무대라는 것이 기자들의 믿음이었다.
워런 스트로벨(제임스 마스든)과 조너선 랜데이(우디 해럴슨) 기자(왼쪽부터).
‘불필요한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을 조명하다
1974년 출범한 나이트 리더(knight-ridder)는 여러 신문사가 모인 합동 언론사다. 나이트 리더에 속한 모든 매체에 기사를 전송하되, 기사의 게재 여부는 각 신문사 편집부의 재량에 달려 있는 시스템이다. 당시 나이트 리더 워싱턴 지부의 편집장이었던 존 월콧(로브 라이너)과 이라크전쟁 담당 기자인 조너선 랜데이(우디 해럴슨), 워런 스트로벨(제임스 마스든)은 이라크를 완벽한 악의 축으로 이미지 메이킹하려는 부시 정부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의문을 가졌다. 이는 정부 발표와 논조를 같이하는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등 핵심 언론에 돌을 던지는 행위였을 뿐 아니라, 9·11 테러 이후 만연해진 미국 사회의 도 넘은 애국주의에도 경종을 울리는 도전이었다. <충격과 공포>에서는 랜데이와 스트로벨이 펜타곤 내 관계자들과 대량살상무기 전문가, 은퇴한 베테랑 기자 등을 섭외해 특종 기사를 발표했음에도 논조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기사를 게재해주지 않아서 낙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로브 라이너 감독은 전쟁의 도덕과 윤리를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라크가 아닌 미국의 젊은 군인들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충격과 공포 전술이 시행된 2003년 이라크에선, 대규모 공습 직후 쿠웨이트 국경 지대에 주둔 중이던 24만여명의 미군이 지상전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국경을 넘어 이라크 남부의 전략 요충지인 바스라항으로 진격할 요량으로 동원됐다. 9·11테러 이후 많은 청년들이 군에 자원 입대했고, 나이트 리더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이들이 베트남전쟁에 동원된 군인들과 다르지 않다며 불필요한 전쟁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