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던진 말을 되받아치며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는 대화는 김은숙 작가의 장기다. 하지만 동시대 배경에 같은 언어를 쓰는 캐릭터가 쌓일수록 개별성은 옅어지고 대화는 패턴만 남게 된다. 작가는 이 문제를 어투의 변화로 돌파해왔다. KBS <태양의 후예>는 ‘다나까’로 끝나는 군대식 종결어미가, tvN <도깨비>는 문어체가 두드러졌다. <미스터 션샤인>의 ‘격변하는 조선’은 어투 또한 그러한 시대다. 개화기 조선 말투로 설정한 하오체를 비롯해 영어와 일어, 프랑스어까지 나온 참이다. 다양한 배우들이 이를 소화하는 방식에 자연히 관심이 쏠리고, 그중 가장 흥미로운 건 사대부 집안 ‘애기씨’이자 총을 든 의병 고애신 역의 김태리다.
미 해병대 대위로 조선에 돌아온 유진 초이(이병헌)와 애신이 처음 말을 섞는 상황. 유진이 먼저 애신을 당황시키고 시간차 없이 밀어붙이는 선공을 하자, 그가 이방인이라고 간파한 애신은 “조선에는 그 어떤 사내도 감히, 나를, 노상에 이리 세워놓을 순 없거든”이라고 응수한다. 보통, 사극 대사의 인토네이션은 상황이나 감정에 강세를 두고 끊어짐 없이 유려하게 리듬을 탄다. 한데 김태리의 대사처리는 ‘감히’와 ‘나를’에서 연달아 쉼표로 꾹 누른다. 전형적인 양반의 ‘사극 톤’과 분명 다르게 들린다. 화자인 애신이 자신을 중심에 놓은 단어를 힘주어 강조한 까닭에, 오만한 귀하보다 더 오만한 화법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성품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