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기가 겨울이를 데리고 미용실에서 나오는 장면. 원래 친한 구교환에게 다가가느라 몸이 대각선으로 기울거나 이옥섭 감독이 있는 방향으로만 돌진하는 겨울이를 통제하기 힘들었다. 나중에는 감독이 목적지에 서서 기다리며 동선을 통제했다.
<겨울이와 황사마스크>의 대사는 거의 현장에서 새로 재창조되고 있다. 특히 테이크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대화 소재를 던지는 심달기의 애드리브가 큰 역할을 했다. 구교환은 “시나리오를 풍성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배우다.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과 즐거움을 줬다.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혹시 아이돌? 아이돌인가?” “분위기를 보니 배우인가봐.” 일기예보와 달리 다행히도 비가 내리지 않았던 지난 7월 10일, 이화여대 인근 옷가게를 바라보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은 <겨울이와 황사마스크>의 1회차 촬영을 시작한 배우 구교환에게 꽂혀 있었다. 이날 진행된 촬영은 극중 실제 이름으로 등장하는 구교환과 심달기가 처음 만나는 신이었다. 달기는 자신이 키우는 개 겨울이에게 황사마스크도 씌우지 않고 산책을 나간 남자친구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다. 교환은 겨울이의 상태를 보러 온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다. 크랭크인 전날까지도 확신할 수 없던 날씨만큼이나 이날 두 배우의 연기도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갔다. 이야기의 흐름은 따르되 대부분의 대사는 거의 배우들의 즉흥 연기로 완성됐기 때문이다. 옷가게 주인이 제시간에 오지 않아 무작정 기다리게 된 교환에게 대신 옷을 공짜로 주겠다던 달기가 이런저런 옷을 대보는 신은 무려 8분 넘는 롱테이크로 촬영되기도 했다.
독립영화계에서 이 콤비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동안 숱한 단편영화에서 공동 작업을 해왔던 이옥섭 감독(오른쪽)과 배우 구교환(왼쪽)이 다시 파트너로 뭉쳤다. 사전에 약속된 것 없이 본능적으로 나오는 아이디어가 중요했던 현장에서, 두 사람은 익숙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장면을 만들어갔다.
“진짜 좁은 통로 옷가게.” 시나리오에서부터 이렇게 묘사된 옷가게는 10명 내외의 스탭이 모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았다. 이옥섭 감독은 “원래 좁은 장소를 좋아한다. 원래는 모두 액션캠으로 진행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공간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연남동 한 미용실 앞에서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장본인인 겨울이의 첫 등장 신도 촬영됐다. 겨울이는 이옥섭 감독이 실제로 키우는 반려동물이다. 낯선 사람만 보면 크게 짖는 겨울이를 통제하기 위해 스탭들이 갖은 노력을 다 해야 했는데, 겨울이의 습성은 원래 다큐멘터리 형식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의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다. 이옥섭 감독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니 처음 생각한 구성안을 벗어나지 못하더라. 결말을 모르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보고 싶어 극영화로 바꾸었다”고 말했다. 구교환의 말처럼 “환경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른 접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의 탄생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