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드라마를 좋아한다. 하지만 여성이 등장하면 불안해진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 남자주인공의 연인인가? 희생양인가? (흔히 둘 다다.) 혼자만 정의감에 목소리를 높이나? 재미없는 대사만 도맡아 하나? 결정적 순간에 납치되나? 이런 함정들을 비껴가는 작품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넷플릭스 <에일리어니스트>는 인권개념도 과학수사의 필요성도 희박하던 19세기 뉴욕을 배경으로, 셜록과 왓슨 같은 남성 콤비가 연쇄살인범을 뒤쫓는 이야기인데, 중요한 인물은 이들이 아니라 경찰국장 비서인 세라 하워드(다코타 패닝)다.
“남자들이 여자를 혐오하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뉴욕 경찰국에서 일하게 된 최초의 여성인 세라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남성 경찰들의 성희롱과 거친 세파로부터 ‘숙녀’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 신사들의 차별을 동시에 겪는다. 퇴근 후, 소매를 커다랗게 부풀린 드레스를 벗어던졌을 때 맨살에 촘촘히 남은 코르셋 자국은 그를 억압하는 사회적 규범을 보여준다. 여성에게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고, 숙녀라면 ‘섹스’라는 단어도 입 밖에 내선 안 됐던 시대다. 그러나 쉽사리 웃지 않고, 논쟁에서 신랄하게 상대를 몰아붙이며, 뉴욕에서 담배를 가장 맛있게 피우는 세라는 남자들이 자신에게 허용한 자리에 머무르길 거부한 채 수사를 진척시키고 팀을 이끈다. 그런 그에게 감히 “여자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라던 악당에게 묵념을. 그리고 다음 시즌은 세라 하워드의 뉴욕 경찰 승진기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