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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②] <누가 총을 쐈는지 궁금해?> <바로네사> <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 外
장영엽 2018-05-02

<씨네21> 기자들이 가려뽑은 추천작 20편

<누가 총을 쐈는지 궁금해?>

Did You Wonder Who Fired the Gun? 트래비스 윌커슨 / 미국 / 2017년 / 90분 / 프론트라인

이 영화의 감독 트래비스 윌커슨에겐 악명 높은 조상이 있다. 새뮤얼 브랜치. 윌커슨의 증조할아버지인 그는 1946년 자신이 운영하던 앨라배마의 가게에서 흑인 빌 스팬을 총으로 쏴 죽였다. 하지만 법은 총기 사용이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한 브랜치의 손을 들어줬다. 빌 스팬의 죽음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윌커슨은 가족들조차 얘기하지 않는 그때 그 사건의 전말을 밝혀보기로 결심한다. 연출자의 사적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 <누가 총을 쐈는지 궁금해?>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에서 일어났던 인종차별과 폭력의 역사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감독은 살인자와 살해당한 자, 살인자의 가족과 살해당한 자의 가족, 백인과 흑인의 삶을 교차 대조하는데, 그 결과가 사뭇 충격적이다. 영화 속 푸티지로 등장하는 <앵무새 죽이기>의 그레고리 펙이 대변했던 ‘선한 백인’의 신화를 산산조각내는 다큐멘터리.

<바로네사>

Baronesa 훌리아나 안투네스 / 브라질 / 2017년 / 70분 / 국제경쟁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슬럼가.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두 여성이 <바로네사>의 주인공이다. 안드레이아는 마을 주민을 상대로 네일숍(이라고 부르기에 몹시 조악한 수준이지만)을 운영한다. 레이트는 수감된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아이를 키운다. 그녀들이 살아가는 슬럼가에서는 마약 갱단 사이의 전쟁이 한창인데, 안드레이아는 위협을 피해 ‘바로네사’라는 지역으로 떠나려 한다. 하지만 바로네사 역시 또 다른 빈민가일 뿐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필치로 브라질 슬럼가 뒷골목의 풍경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마약과 폭력이 만연한 정글 같은 슬럼가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살아가는 두 여성의 모습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자극적인 소재에 현혹되지 않고 여성들간에 오가는 섹스와 폭력,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브라질 슬럼가의 현실을 재구성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

Streetscapes(dialogue) 하인츠 에미히홀츠 / 독일 / 2017년 / 132분 / 익스팬디드 시네마

독일의 실험영화 거장, 하인츠 에미히홀츠의 신작. <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는 그가 트라우마 상담을 위해 심리학자 조하르 루빈스타인과 나눴던 대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우루과이를 배경으로 노년의 영화감독과 젊은 심리학자가 6일간 대화를 나눈다. 유려하고 지적인 문답이 오가는 가운데 그들의 대화는 계속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감독을 가로막는 물리적, 심리적 장벽, 유년 시절의 아픈 기억과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독일인들의 트라우마, 건축에 대한 관심과 필름카메라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편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거니는 풍경은 영화에 새로운 정서를 덧입힌다. 우루과이의 유명 건축가 훌리오 빌라마호, 엘라디오 디에스테가 설계한 건축물은 마음의 행로를 좇는 이 작품의 테마를 시각적 상징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와 건축, 풍경과 마음의 관계를 탐구한 흥미로운 작품.

<폭스트롯>

Foxtrot 사무엘 마오즈 / 이스라엘 / 2017년 / 114분 / 마스터즈

20년 전, 이스라엘 감독 사무엘 마오즈는 학교에 늦은 딸에게 택시를 탈 돈을 주지 않았다. 20분 뒤, 그는 딸이 탄 버스가 오가는 길에서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다행히 마오즈의 딸은 무사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딸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었다는 자책감은 오랫동안 마오즈에게 남았다. 사무엘 마오즈의 두 번째 극영화, <폭스트롯>은 이날의 강렬한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영화다. 이야기는 크게 세 파트로 진행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마이클과 다프나 부부가 이스라엘 군인들의 방문을 받으며 시작한다. 아들 조나단이 군 복무 중 사망했다는 소식에 다프나는 쓰러지고 마이클은 상실과 절망감에 괴로워한다. 이겨낼 수 없는 슬픔에 빠진 남자에게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생경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건조한 말투로 장례 절차를 들려주는 군인, 부모보다 크게 울부짖으며 애도를 표하는 사람들, 네가 어떻든 세상은 돌아간다는 걸 일러주는듯 무심하고 규칙적으로 울리는 알람처럼. 두 번째 이야기는 조나단을 비춘다. 어딘지 모를 황량하고 외딴 장소에서, 조나단은 다른 세명의 동료와 함께 검문소를 지키고 있다. 무료하고 무기력한 이들은 바닥에 통조림을 굴리며 시간을 재거나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예기치 못한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다시 마이클과 다프나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다. 부부가 공유하는 감정은 더 깊고 통렬하다.

<폭스트롯>은 인간의 일생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비극과 전쟁의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를 독창적인 시각적 스타일 속에 담아낸 영화다. 총을 껴안은 채 로맨틱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군인, 사람보다 더 자유롭게 검문소를 통과하는 낙타 등 이 영화엔 잊을 수 없는 명장면들이 마련되어 있다. 작품의 테마와 정서에 완벽하게 상응하는 형식과 구조의 묘를 만끽하고 싶은 관객에게, <폭스트롯>은 필견의 영화다. 사무엘 마오즈는 이 작품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사라와 살림에 관한 보고서>

The Reports on Sarah and Saleem 무아야드 알라얀 / 팔레스타인, 네덜란드, 독일, 멕시코 / 2018년 / 132분 / 국제경쟁

사라는 이스라엘 여성, 살림은 팔레스타인 남성이다. 사라가 운영하는 카페에 살림이 물건을 배달하며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불륜 관계인 이들은 밤마다 비밀스럽게 만나 사랑을 나눈다. 살림은 부업으로 이스라엘 물건을 대신 구입해 팔레스타인의 도시 베들레헴에 배달하는 일을 한다. 어느 날 밤, 사라가 베들레헴으로 가는 살림을 따라나서며 문제가 생긴다. 클럽에서 사라에게 추파를 던지던 남자와 시비가 붙은 살림은,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팔레스타인 정보국에 끌려간다. 요원들은 살림이 이스라엘 여성과 팔레스타인에 온 이유를 추궁하고, 그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정보를 빼내기 위한 목적으로 사라와 어울렸다는 거짓 보고서를 작성한다. 공교롭게도 얼마 뒤 이스라엘 군대가 팔레스타인 정보국을 습격한다. 살림의 거짓 보고서는 이제 이스라엘 정보국의 손에 들어간다. 외교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치정극이 정치드라마로 변모하는 건 한순간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스파이 혐의를 받는 팔레스타인 남자가 직면하게 되는 냉혹한 현실을 담담하게 조명한다. 불륜으로부터 시작해 국적과 계급의 문제를 경유하는 영화로,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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