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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감독 인터뷰
2002-04-20

느려터진 영화 보니 속이 터지더라

- 에로틱한 장면도 있고, 판타지도 있다. 뜻밖이다.

“내 영화 보고 금욕적이라는 선입견을 갖는 모양인데, 그건 내가 특별히 금욕적인 인간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웃음). 내가 영화 처음 시작할 때, 많은 한국영화들이, 예컨대 <애마부인> 같은 영화들이 너무 그런 걸로 팔아먹었다. 그래서 난 의도적으로 그런 요소를 피하려 했던 것 같다. 물론 이젠 그런 걸 신경 쓸 시대는 지났다. 이야기에 필요하니까 당연히 그런 장면이 들어가는 거다. 그리고 판타지도 처음이 아니다.”

- 개인적 욕망이 투영된 주관적 판타지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 1인칭 화자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그같은 맥락이다. 내 영화 중에는 가장 주관적인 영화가 될 것이다.”

- 그렇다 해도 <방아쇠>는 충분히 박광수적이다. 무대는 충분히 역사적이며 더구나 특정 장르를 택하지 않았고, 장르적 결말로 빠져나가지도 않는다.

“새로운 걸 시도하고 더 넓은 커뮤니케이션을 원한다 해도, 이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벗어나면 작품도 소통도 실패한다.”

- 전작들은 롱테이크 위주였는데, 이번엔 컷이 많은 것 같다. <이재수의 난>은 200컷이 안 됐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엔 많다. <이재수의 난>은 180컷 정도였는데, <방아쇠>는 한 500컷쯤 될 거다. 그만큼 롱테이크가 적고 속도감을 살리겠다는 의도다.”

-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따라간 건가. 아니면 의도적인 변화인가.

“이전엔 숏을 분할하는 건 일종의 기교라고 생각했고, 그 기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빤스 벗고 덤벼라>와 <아닌 밤중에> 같은 단편 작업하면서 컷이 자연스럽게 두, 세배쯤 늘었다. 굳이 말하자면 의도적인 변화다. 허진호가 <봄날은 간다> 찍을 때 촬영현장에 갔었는데, 아주 느려터져서 속이 타더라(웃음).”

- 지난 3년 동안 세계관이 바뀐 건가.

“영화관이 바뀐 거지(웃음). <이재수의 난> 찍으면서 이제 이렇게 찍는 건 이게 마지막이지, 라고 생각했다. 여기다 과거를 다 묻고 간다는 마음이었다. 그뒤에 다른 감독 촬영현장을 둘러보면서 내 영화를 좀더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허진호도 롱테이크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확신이 안 서서 그냥 갔다는 얘기를 하더라.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은 국제영화제 가서도 들었다. 재미가 없더라. 재미없고 진지하기만 한 영화들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같은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영화의 국내 관객은 어차피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상정하고 관객을 해외로 넓혀야겠다고 생각해왔는데도 그걸 수정하게 됐다. 오늘 여기의 관객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진 거다.”

- 대중적 소통을 목표로 한다는 건가. 그게 혹시 독이 되진 않을까.

“글쎄. 우리는 예술영화, 작가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현실적 유용성에서 멀어질수록 가치가 있다는. 물론 내게도 그런 게 있었다. 하지만, 이젠 소통이 되면서도 가치가 있는 영화가 있다. 그게 이번에 내가 내게 낸 숙제다,”

- 사실은 <이재수의 난>을 보면서, 이제 박 감독은 충무로와 결별할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했었다.

“그동안 영화계 밖에서 단편작업을 했다. 영상원에 간 것도 제작이 손쉬워진다는 면도 있어서였다. 단편작업을 하면서 오히려 소통범위를 넓힐 수 있겠다는 예감이 생겼다. 제작비나 흥행 부담없이 이런저런 실험을 해본 게 그런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줬다.”

- 소통을 의도한다면 대상은 주로 오늘의 젊은이들일 텐데, 소통 가능성을 확신하나.

“<이재수의 난> 끝나고 나서, 현대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많이 뒤져보고 접해봤다. TV도 열심히 보고, 잡지도 뒤적거리고, 게임도 이것저것 해봤다. 정서가 변화한 걸 체감한다.”

- 요즘 역사의식이나 인문주의를 강조하면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젊은 세대에게 정이 안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진 않다. 내가 학교에서 집에서 늘 대하는 사람들이 요즘 젊은이들이다. 내 영화의 관객이기도 할 테고. 누군가에게 온 연애편지를 뜻하지 않게 보게 된 적이 있는데, 감각적이면서도 사려깊은 게 인상적이었다. 젊은이들이 망쳐놓은 건 아무것도 없다. 문제가 있다 해도, 우리 세대가 만들어놓은 것이 그들에게 물려졌을 뿐이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인데, 시대의 첨단을 간다. 많이 배운다.”

▶ 달라진 박광수 & 뉴 박광수 프로젝트 <방아쇠>

▶ 박광수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