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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숀 베이커 감독 - 아이러니한 슬픔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18-04-26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숀 베이커 감독이 개봉 한달 후인 지난 4월 12일 내한해 3일 동안 관객과 만나는 ‘마스터톡’ 행사를 가졌다. 그는 또 일정 중에 영화수입사 오드(AUD)와 마음 스튜디오가 협업해 만든 쇼룸도 직접 들러 관객이 ‘영화 굿즈’를 즐기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6살 소녀 무니와 미혼모 엄마 핼리가 보여주는 위험천만한 매직캐슬 라이프에 보내는 한국 관객의 지지와 응원을 뒤늦게나마 눈으로 확인한 그를 만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의 여정에 관해 물었다. 이미 세 차례에 걸친 토크 행사를 통해 관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여전히 이 쓸쓸하고 아름다운 영화에 관한 궁금증은 남아 있다. 아직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관객을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보탰다.

-한국 관객이 ‘N차 관람’이나 ‘굿즈 수집’ 등을 통해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지지를 보내는 모습을 직접 본 소감이 어떤가.

=많은 관객이 깊이 있는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이는 등 다른 나라의 관객에게서는 찾아 보기 힘든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즐기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디즈니월드 주변부에 머무는 아이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가 관객과 만날 때 마치 디즈니영화의 머천다이즈 마케팅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 같지는 않던가.

=정말 특이한 현상인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웃음) 우리가 영화를 통해 초점을 맞췄던 세계, 그러니까 ‘매직캐슬’도 어찌보면 디즈니에 이끌려온 관광객을 사로잡기 위해 디즈니와 비슷한 방식으로 건물을 꾸미거나 자신을 홍보한다. 그 관광객들처럼 간접적으로는 결국 디즈니에 매료되는 것 아닐까 싶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결과가 아쉽지는 않았나.

=내가 상을 덜 받은 것에 실망하는 이유는 정해져 있다. 첫 번째는 더 많은 연기부문에서 더 많은 수상을 했다면 무니 역을 맡은 브루클린 프린스 같은 배우들이 앞으로 연기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거라는 점, 그리고 더 큰 상에 노미네이트됐더라면 더 많은 미국인들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나는 지금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 영화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가 미국에서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는 수상 여부에 크게 상관없다. 어차피 다음 영화도 내가 늘 해왔던 방식과 비슷한 예산 규모의 제작과 배급 방식을 택해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엄마나 매니저의 시선이 아니라 무니의 눈높이에서 어린아이들의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로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영화를 구상할 때 중요한 것은 싸구려 모텔에서 사는 아이들이 있는데 하필 그 모텔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알려진 디즈니월드 근처에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러한 아이러니와 슬픔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히든 홈리스 문제는 미국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고 또 그렇기에 어디에서도 찍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디즈니월드 주변부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찍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미국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더 뚜렷하게 전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브루클린 프린스에게 본인이 연기하는 영화 속 장면의 상황을 얼마나 설명해줬나? 가령 “내가 이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고 있기 때문이야”라는 대사를 할 때처럼 자신이 어떤 대사를 하는지 과연 알고 이야기하는 건가, 궁금한 순간이 종종 있었다.

=웬만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시켜줬다. 나무에 관한 그 대사는 프로듀서 중 한명이 로케이션 헌팅 다닐 때 마침 그 나무를 보고는 실제로 그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가 꼭 써야겠다고 생각한 대사였다. 왜냐하면 그 한마디가 영화의 주제를 요약해주는 것 같았다. 6살 꼬마에 맞게끔 단순화시켰다. 브루클린은 나이에 비해 굉장히 똑똑해서 그런 대사를 제시해주면 충분히 이해했다. 실제로 본인은 영화 속 세계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이와 근접한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른 혹은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또 영화 개봉 이후에 이 지역 문제와 관련한 단체들의 홍보대사 역할도 하고 있다. 그리고 어른들만의 문제를 다루게 될 때는 굳이 아이들에게 설명하거나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유일하게 노출된 부분이 아이들이 쓴 욕설인데 모든 아이들의 욕설 연기는 부모와 연기 코치의 동의와 현장 동반하에 촬영했다. 연기할 때만 쓰고 다른 일상에서는 쓰면 안 된다는 말을 인지시켰고 리허설 때조차 욕을 못하게 했다.

-모텔의 디자인이나 주변 풍경은 너무 아름다운 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은 정반대다. 영화가 담아낼 이미지에 관해 가장 중요하게 고민한 점은 무엇이었나.

=바로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되 그것은 실제 현실의 표면일 뿐이라는 거다. 페인트칠을 해서 굉장히 예뻐 보이는 건물이지만 건물 안의 침대에선 벼룩이 들끓고 있는 현실. 그 자체로 문제를 덮어버리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했다. 알렉시스 자베 촬영감독과는 아이의 관점에서 그들이 바라보는 풍경을 담기 위한 미장센을 연구했다.

-영화 엔딩에 디즈니월드의 모습을 등장시킬지 말지를 두고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우선 아이들이 성을 향해 뛰어가야 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처음 대본을 쓸 당시에는 아이들이 우주로 향하는 어트랙션쪽으로 뛰어가게 한 다음 그걸 타고 달로 가는 결말도 생각했다. 결국은 어디가 됐든 최종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는 결말을 만들어야겠다고 결론내렸다. 디즈니월드의 성 자체가 워낙 아이콘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서 찍어볼까도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처럼 아이들이 꼭 디즈니월드 성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실제하는 장면인지 아닌지는 관객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어쨌든 아이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향해 달려간다, 라는 의미로 영화를 끝내고 싶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발표가 나자마자 직접 트위터로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의 경쟁부문 진출 소식을 축하했다. 평소 그의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해왔는데 그의 영화의 어떤 점이 당신을 사로잡았나.

=그의 영화 중 최근작 세편은 내 감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오아시스>(2002)는 인간이 처한 상황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소외 계층의 삶을 존중하면서 다룬다고 말한다. 내가 이런 감성을 갖게 된 데는 이창동 감독처럼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땅을 깨고 나온 것 같은 선구자 역할을 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 대답은 “예스”다. 영화는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람의 사고방식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살면서 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나 이슈에 말 그대로 조명을 비춰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다. 혹은 잊혔던 사건을 다시 법정에 세우는 등 정의를 구현할 수도 있다. 아주 흥미롭고 효과적인 예술 형태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지만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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