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의 장래희망은 체육 선생님이다. 향은 엄마처럼 간호사가, 광숙은 헤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공부하기 바쁜 고3이지만 화장을 할때만큼은 왠지 들뜬 얼굴이다. “화장은 기본이죠. 자신감이 생겨요.” 그런데, 의외의 말이 이어졌다. “좀더 대한민국 사람이 된 것 같은 자신감.” KBS1 <우리가 태어난 곳>은 북한이탈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죽을 고비를 넘어, 가족과 헤어져 한국에 왔지만 ‘따뜻한 남쪽나라’는 꽤 많이 낯설고 외롭고 추운 곳이다. ‘북한 핵실험’ 기사가 뜰 때마다 악플에 마음 다치고, 아직 국경을 넘어오지 못한 가족 때문에 가슴 조이는 삶의 무게를 ‘여기서’ 태어난 나는 알지 못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존재를 ‘늘어나는 숫자’로 인식하고, 비참한 생활에서 탈출한 그들이 여기에 무난히 정착하길 막연히 바랐을 뿐 그들 각자의 삶에 무관심했던 나는 효정의 말에 부끄러워졌다. “저희라고 왜 거기가 안 그립겠어요. 거기서 굶고 힘들게 살면서도 제일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어요.” 여명학교 3학년 2반의 급훈은 다음과 같다. 하나. 절대 싸우지 않는다. 둘.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셋. 지각 결석 하지 않는다. 단순하지만 단단한 결의에서 그만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 날들이 읽혔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 내가 알고 있는 삶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생각했다. 그래서 효정은 대학에 가고, 향은 10년 만에 엄마를 만났냐고? 궁금하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봐주길, 그리고 태어난 곳을 떠나 ‘여기에’ 온 수많은 이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