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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실망
김혜리 2018-04-04

<레디 플레이어 원>

2045년 지구. 사람이 살 만한 땅이 줄어들고 자원이 간당간당해지자 등장한 주거 형태가 20세기 트레일러 촌을 수직으로 재편한 ‘스택’(stack, ‘더미’라는 의미)이다. 미술가 토니 크랙은 불특정 잡동사니를 육면체로 압축한 설치작품에 같은 이름을 붙인 바 있다. 여남은개의 컨테이너와 트레일러를 대충 쌓아올리고 철골로 간신히 지지해놓은 스택은 위태로울 뿐 아니라 범죄의 온상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프닝은 부모를 잃고 가난한 이모에게 얹혀사는 웨이드(타이 셰리던)가 밧줄을 타고 폐차 더미 사이를 기어 스택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을 따라간다. 웨이드가 지나치는 이웃들은 이미 VR 바이저와 장갑을 착용하고 가상현실에 몰두해 있다. 시대상을 한 호흡에 축약한 이 고밀도 시퀀스는, 매 프레임이 수많은 캐릭터, 탈것, 무기, 인용으로 터져나가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스타일도 예고한다. 스필버그에게 영감을 준 영화 리스트에 <레고 무비>가 포함된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

03/20

<레이디 버드>의 지역배경은 감독 겸 작가인 그레타 거윅의 고향 새크라멘토다. 하지만 영화에 감독의 사춘기 체험이 얼마나 반영돼 있는가는 관객에게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레이디 버드>의 성장담이, 누가 됐든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특정인의 경험처럼 느껴진다는 데 있다. 그리고 서사 예술은 구체적일수록 보편성을 획득한다. 희로애락을 널뛰는 엄마와의 쇼핑, 반마다 한명씩 꼭 있는 폼잡는 아웃사이더, 베스트 프렌드와의 유치찬란한 냉전, 대학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의 멀미. 그레타 거윅의 시나리오는 메인 사건의 기승전결을 좇는 대신, 누구든 감정이입할 구석이 있으되 개성적인 에피소드를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테러 때문에 사람들이 뉴욕을 기피한다”는 대사로 미뤄보아 때는 2002년. 크리스틴 맥퍼슨(시얼샤 로넌)은 대단한 반항아도 최상급 우등생도 아닌 가톨릭계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따로 설명되지 않지만, 난임인 부모가 아들을 입양해 키우다가 뒤늦게 얻은 딸이다. 맥퍼슨 가족은 동네의 부유층 구역 밖에서 살지만 딱히 빈곤층은 아니다. 프로그래머 아버지(트레이시 레츠)가 실직하고 간호사 어머니(로리 멧커프)의 초과근무로 생계를 지탱하는 크리스틴네는 쉴 새 없이 발장구를 쳐야 중산층 안에 머무를 수 있는 가정이다. 가족 멜로드라마와 코미디에 덮여 두드러지지 않지만 그레타 거윅 감독은 분명히 경제적 계급을 청소년기 삶의 중요한 변수로 다룬다. <레이디 버드>의 포스터에 쓰인 서체와 시얼샤 로넌의 옆모습은 서양의 중세 종교화를 연상시킨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레타 거윅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순교한 기독교의 성인(聖人)들이 어쩌면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라는 자아도취에 빠진 틴에이저가 아니었을까 상상했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평범한 축에 속하는 크리스틴에게서 가장 특별한 점은, 특별한 사람이 되려는 의지다. 소녀는 제 뜻과 무관하게 주어진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자신이 선택한 속성들만 모아 삶을 꾸리고 싶어 안달한다. 그래서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스스로 짓고 “콜 미 바이 마이 네임!”을 외치고 다닌다(어쨌거나 학교도 가족도 크리스틴의 요구를 들어준다). 분홍색으로 물들인 머리칼은 물려받은 것들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깃발이고, 좋아하는 대상의 이름을 쓰고 사진을 붙인 침실 벽은 레이디 버드의 자기소개서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모든 ‘좋아요’ 리스트가 어떤 모습의 개인을 가리키고 있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레이디 버드는 다만 속물적 서부를, 지루한 새크라멘토를, 상상력 없는 엄마를, 무력한 미성년을 간절히 벗어나고 싶다. 잘하지도 못하는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겠다거나 당선 가능성 없는 학생회 선거에 출마하는 행위 역시, 나는 열일곱이고 세상이 어떻게 말하건 나는 뭐든 될 수 있다는 시위라서 해볼 만한 것이다.

03/21

성장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이성애 로맨스가 아니라 모녀다. 영화 도입부는 극단적 에피소드로 어머니 매리언과 딸 크리스틴의 관계성을 요약한다. 자동차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은 모녀는 <분노의 포도>의 오디오북의 결말에 공히 감동한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그러나 다음 찰나 어느 지역 대학에 진학해야 하나가 화제에 오르면서 시작된 언쟁은, 딸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림으로써 끝난다. 그렇게라도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레이디 버드는 딸의 단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하는 엄마의 화법과 수세적 공격성을 지독히 싫어한다. 매리언과 레이디 버드가 매번 상대가 제일 아픈 말의 표창을 서로에게 던지고 한쪽이 피를 흘려야 전투를 끝내는 적수인 까닭은 두 사람이 무척 닮아서다. 모녀는 투닥거리다가도 동시에 마음에 쏙 드는 드레스를 찾자 환성을 지르고, 기분풀이로 사지도 않을 근사한 집을 같이 보러 다닌다. 딸은 아들의 여자친구까지 자식으로 거둔 엄마가 강하고 너그러운 사람임을 잘 알고 있다. 영화를 통해 관객이 목도하듯 레이디 버드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상처주지만 기본적으로 강하고 관대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본인의 현재를 극복해야 할 ‘구체제’로 보는 소녀는 지금의 자신을 닮은 엄마를 좋아할 수 없다. 가족의 메커니즘을 그린 많은 영화가 있지만, 사랑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관계를 <레이디 버드>만큼 정확히 포착한 작품은 기억에 없다. 사춘기는 부모가 단점이 있는 인간임을 깨닫고 그들을 사랑하지만 존경하지 못하는 현실에 죄의식과 원망을 품는 시절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진 대로 가족이란 패키지 딜이라 흡족한 면만 골라 취할 수 없다. “엄마, 날 사랑하겠지만 좋아해요?” 레이디 버드의 질문에 매리언은 “당연히 좋아하지!”라고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려 딸을 아프게 한다. 왜일까? 매리언은 세탁기 가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딸이 쓰는 수건의 개수를 통제하는 엄마다. 즉, 극단적 실용주의자로서 그는 딸이 헛된 꿈을 꾸다 낙망할까봐 칭찬에 인색하다. 동시에 딸이 충분히 노력해 최선의 모습을 갖추도록 압박하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 믿는다. 레이디 버드가 반문한다. “만약 지금 내 모습이 최선이라면요? (내가 싫어요?)” 매리언의 침묵은, 사실 어떻게 답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공포의 결과다.

성장영화로서 내게 <레이디 버드>의 비범함은 두 가지다. 첫째는 주인공의 비중을 위협할 만큼 레이디 버드를 둘러싼 모든 인물을 사려 깊게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레타 거윅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린다는 말의 의미가 장점을 두 가지, 약점을 두 가지 보여준다는 의미가 아님을 아는 작가다. 성격의 다양한 측면은 분리할 수 없으며 잇닿아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다. 스크린 타임이 짧은 배역까지 이는 관철된다. 수녀님(로이스 스미스)의 유머감각은 독실한 신앙과 이어져 있고 신부님의 배려심은 그의 우울과 하나다. 둘째, <레이디 버드>는 실망을 끌어안는다. 기대를 배신한 첫 섹스에 낙심해 남자친구의 집을 뛰쳐나가는 레이디 버드의 원경에 감독은 불치병으로 무력하게 누워있는 남자친구의 아버지를 배치한다. 신나는 파티 장면의 한구석에는 냉장고 문을 연 채 원하는 음식이 없어 멍해 있는 이름 모를 소년이 있다. <레이디 버드>의 마지막 장은 뉴욕으로의 탈출이 아니라 뉴욕에서 느끼는 실망이다. 크리스틴은 시시껄렁한 숙취에서 깨어난 다음 그토록 지겨워했던 성당을 찾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삶은 본래 실망스럽고, 청산되는 부채가 아니다. 마침내 동부로 날아간 레이디 버드는 미움으로 말미암은 열렬한 관심이 사랑과 멀리 있지 않으며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살아갈 자기의 저력임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렛 더 선샤인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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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

<렛 더 선샤인 인>은 클레어 드니 감독 버전의 로맨틱 코미디다. 첨가물 제로의 사랑 없는 사랑영화라고 불러도 좋다. 화가 이자벨(줄리엣 비노쉬)은 이혼 후 실망스런 연애의 개미지옥에 갇혀 있다. 남자들은 줄지어 다가오지만 덤불만 두드리다가 결국 자기애로 도피한다. 최악은 유부남 은행가 뱅상(자비에 보부아). 뱅상을 경멸하면서도 데이트를 계속해온 이자벨은 어느 저녁 바에서 그의 장광설을 듣다 임계점에 도달한다. 돈 많은 남자는 금융업이 인간을 소외시킨다며 동업자들을 무시하더니 이자벨의 몸을 더듬으며 예술을 예찬한다. 안 물어봤지만 참고로 이혼은 안 한다며 “당신은 매력적이고 아내는 특별해”라고 말한다. 칭찬하는 척 모욕하는 화법이 발군이다. 결정적으로 뱅상은 바텐더에게 무례하다. 클레어 드니는 긴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로 세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다가도 연신 폭발 직전인 줄리엣 비노쉬의 얼굴을 살핀다. 있지도 않은 풍선이 터질까봐 귀를 막게 되는, 서스펜스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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