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KBS가 새롭게 내놓았다는 세편의 예능 프로그램 포스터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남자뿐이었다. MBC 시사교양 파일럿 <판결의 온도>에는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10명 전원이 남성이었다. 사실, 방송이 여성을 외면해온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지난해 YWCA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 성비는 6 대 4 정도로 남성이 많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성비 격차는 훨씬 커졌다. 그러나 사회적 논란이 된 판결을 소환해 ‘4심’을 열어보자는 자리에, 외국인은 두명이나 있지만 여성은 단 한명도 없는 풍경은 새삼 기이하다. 건축가 김진애 박사가 트위터를 통해 <판결의 온도>,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등 “영향력 높은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존재가 안 보이면서, 의제-토의의 시각뿐 아니라 대중의 편견을 강화하는 위험이 높다”고 비판했듯,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전문가로서 권위를 갖는 여성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삭제된다.
<판결의 온도> 첫 주제로 ‘24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을 다루던 도중 이정렬 전 판사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사회적 통념이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남자들의 상식이 ‘우리’의 것일까? 판사들이 ‘다른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한 패널들은 자신이 여성들과 얼마나 다른 사회에서 살아왔는지 알고 있을까? 이를테면 여성 예능인이 상습도박 혐의로 법정에 선 적 있다면 불과 5년 뒤 ‘법’을 다루는 방송에서 자신의 과거를 은근슬쩍 농담거리로 삼을 수 있을 리 없는 현실에 대해 생각해봤을까? 마침 더 뜨겁게 찾아오겠다는 다음주 주제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가정 안에서나 밖에서나 보육 노동이 오직 여성에게만 떠맡겨져 있는 사회에서, 이렇게 안 궁금할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