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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④] <커스터머> 이종산 작가, "퀴어문학임을 분명히 밝힌 작품이 더 늘어나는 게 중요하다"
이다혜 사진 백종헌 2018-02-26

“드랙 사진 보여드릴까요?” 이종산 작가는 인터뷰 사진 이야기를 하다 말고 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어 드랙 분장을 하고 퀴어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신중하지만 단호하게, 원하는 방향을 분명히 알고 향하는 <커스터머> 속 수니와 안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커스터머>는 SF이자 판타지이며 퀴어소설인 동시에 연애 이야기인데, 두 사람 사이에서 첫 감정이 솟고 압도하는 대목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인 소설이다. 소설 속 ‘커스터머’는 유전공학 기술로 신체를 ‘커스텀’해 바꾼 사람들을 말하지만,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내면을 커스텀하는 방식 중에는 사랑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나’를 알아가는 일에 더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빠지는 일. 한달음에 읽히는 10대 주인공의 감정을, 이종산 작가는 어떻게 써냈는지 알고 싶었다.

-<커스터머>도 그렇고, 전작들인 <코끼리는 안녕,> <게으른 삶>도 그렇고, 작가가 원하는 이야기를 신나서 한달음에 썼다는 인상이었다. 소설을 처음 시작하게 되는 동력은 무엇인가.

=쓰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다. 누구나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테지만 한순간 어떤 이야기가 굉장히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커스터머>도 그랬나.

=처음에는 단순히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소수의 빛의 세계 사람들과 다수의 어둠의 세계 사람들이 있다고. 소설 속 웜스가 어둠의 세계 사람들이고, 그들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웜스가 대부분인 사회지만 그들은 가장 낮은 계급이고, 모래로 뒤덮인 도시에 산다.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쓰는 편인가.

=동시에 여럿이 같이 떠오른다. 전에는 이미지에서 시작할 때가 많았는데 <커스터머>는 이미지와 세계관, 인물이 동시에 떠오른 쪽이다. 이야기가 있는 어떤 이미지라고 해야 할까.

-판타지, 로맨스, SF를 비롯한 장르 설정들이 다양하게 보인다. 어떤 작품들을 읽어왔는지 궁금하다.

=가리지 않고 읽은 듯하다. 내가 <커스터머>를 하면서 나의 장르성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스스로 장르 작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여러 장르의 소설을 계속 읽어왔고, 좋아했고, 영향을 받았고, 장르의 기법들을 차용해왔구나 싶더라. 소위 말하는 순문학 소설도 굉장히 좋아했지만 그렇게 칼같이 나눌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샬레인 해리스의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독서 목록 자체가 섞여 있어, 딱히 어떤 것들을 읽어왔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이종산 작가 사진을 보면 극과 극으로 분위기가 다르다. <커스터머> 인터뷰용으로 나간 사진은 커스터머 인물들이 커스텀을 하는 것처럼 메이크업의 선과 색조가 굵고 강렬하다. 등단 즈음의 사진은 전혀 반대 인상이다. <커스터머> 때문에 그런 사진들을 노출했나.

=책에 맞는 컨셉을 하고 싶어서 메이크업을 세게 했는데 사진을 보니, 더 세게 할걸 아쉬웠다. 지난해 여름에 퀴어전문서점인 햇빛서점에서 있었던 드랙 워크숍에 참여했다. 원래 드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여름 두달 정도 배우고, 그해 퀴어페스티벌도 나갔다. 드랙이라는 말도 모르던 초·중등학생 때부터 퀴어문화와 드랙에 관심이 있었다.

-원하는 이야기를 커스텀하는 과정에 필요한 좋은 도구로서의 장르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사랑 이야기를 멜로드라마적인, 신파적인 요소가 아니라 로맨스로 다루는 점도 굉장히 좋았다. 풋풋하게 시작하는 감정의 이야기를 잘 다루는 듯한데.

=‘연애소설 읽는 여자’라는 소설 리뷰를 연재하고 있다. 샤오루궈의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잭나이프>에 대해 썼고 최근에는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를 썼다. 젊은 연애소설만 주로 다루다가 고전에 관심이 생겨서, 언젠가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읽어야지 하고 생각 중이다.

-소설 속 명사들은 어떻게 지었나. 가난한 사람들을 일컫는 웜스라는 호칭은 ‘-충’이라는 표현을 연상시키고, 존경받지 못하는 부자들인 비취는 영어로 욕을 할 때 쓰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하다. 저그는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주인공에게 한국식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순이의 발음을 요즘 식으로 해서 수니라고 지었다. 영어식으로 바꾼 이름이라기보다 현대식이라고 생각했다. 저그는 무당벌레를 떠올리고 ‘버그’처럼 저그라고 지었는데, 친구가 <스타크래프트>를 연상시키니까 바꾸라더라. 나는 그냥 이 이름이 좋아서 남겨두었지만. 라울을 비롯한 태양시의 사람들은, 태양시의 지리적 배경을 남미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으로 지었다. 고민이 좀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소설에 외국어로 된 이름이 들어가면 이질감이 느껴지고 잘 안 읽힐 때가 많았다. <커스터머>는 세계를 배경으로 하니까 이름을 외국식으로 지었는데,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에 어색하게 읽히지 않을까 고민은 했다.

-수니와 사랑에 빠지는 ‘안’의 이름은? 안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계급인 비취 출신인데, 무심한 듯한 태도가 모든 것에 열정적인 수니와 대조된다.

=그게 좀 이상하다. 다른 이름은 다 생각이 나는데, 안은 처음부터 안이었다.

-<커스터머>는 3부작으로 쓴 작품이다. 3부작은 보통 3부에서 끝나는 큰 서사인 경우가 많다. 주인공들이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는 점을 생각하고 큰 사건을 더할 생각으로 3부작을 계획했는지, 아니면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른 일들도 그리고 싶어서 세편 정도는 쓰려고 했는지 궁금했다.

=둘 다다. 이런 세계관을 가진 이야기를 시리즈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 시리즈가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전민희의 <룬의 아이들>, 이우혁의 <퇴마록> 같은 작품들이 있지만- 내가 원하는 시리즈는 없다고 생각했다. <헝거게임> 시리즈나 <밀레니엄> 시리즈, ‘수키스택하우스 시리즈’ 같은 식을 원했다. <커스터머>의 세계관을 떠올리면서 시리즈로 할 수 있겠다, 나도 시리즈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계속 써나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코끼리는 안녕,>으로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등단 전과 후, 소설 쓸 때 달라진 점이 있나.

=부담은 두 번째, 세 번째 소설 쓸 때가 더 심했다. 문창과 수업을 계속 들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아서 써본 게 <코끼리는 안녕,>이었고, 그래서 해방구가 되어준 책이다. 그런데 첫 책을 내기는 쉽지만 계속 책을 내는 생활을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떤 분야든 ‘지망생’인 사람들에게 떠도는 막연한 공포감이 있었다. 데뷔보다 그다음이 어렵다고. 첫책 내고도 다음이 있을까 고민이 있었다.

-전업으로 글을 써온 셈인가.

=20대까지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직장도 다녔다. 서른살이 되던 해 2월까지 직장을 다니다 계약이 종료되던 시기에 <커스터머>가 떠올라서 쓰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면 못 쓸 것 같아 소설만 썼다. 출간 확정이 된 뒤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최근에 그만두었다. 또 쓰고 싶은 게 생각나서.

-생활비를 벌어놓고 작업하기를 반복하는 스타일인가. 양립하지 않고.

=하루에 쓸 수 있을 만큼 쓴다. 에너지가 있을 때 빨리 초고를 쓰면 그다음 퇴고는 어떻게든 되니까, 라는 식으로 해왔다.

-<커스터머>는 처음 원고와 얼마나 달라졌나.

=지금보다 빈약했다. 쓰면서 어떤 이야기인지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게 이런 얘기구나’ 알고 더 쓰는 식이었다.

-“<커스터머>를 쓰면서 내가 양성애자라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였다”는 인터뷰를 읽었다. 그렇게 밝힌 이유가 있었나.

=그때는 서면인터뷰여서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커스터머>는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퀴어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 쓴 뒤에는 퀴어라는 이름표를 붙여서 세상에 내보낼 필요가 있을까, 자연스럽게 읽는 것을 제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이 임박했을 때 퀴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게 좋겠다고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우리나라에 퀴어문학은 이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없었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 퀴어라고 얘기하는 본격적인 퀴어문학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퀴어문학이 시작하는 데 있어 퀴어문학임을 분명히 밝힌 작품이 더 늘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뷰에서 굳이 양성애자라고 밝혔다.

-SF를 SF라고 부르지 않고 퀴어를 퀴어라고 부르지 않고, ‘자유분방한 상상력’,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 같은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게 현 상황이라, 퀴어문학임을 분명히 밝힌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커스터머>에는 환경오염이나 혐오범죄 같은 현실 반영적인 부분도 많다. 지금 가장 관심을 둔 현실 문제는 뭔가.

=서지현 검사 사건에 관심이 있다(이종산 작가와의 인터뷰는 설 연휴를 앞두고 이루어졌다.-편집자).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이다. 문단 내 성폭력과 이어지는 흐름이잖나. 처음에는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며 마음이 어두웠지만 이렇게 변화하는구나 싶더라. 이 사건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해석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거기 여러 문제가 다 들어가 있으니까.

-인간이 답을 구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질문 중에는 ‘어떻게 행복해질까’가 있다. 자기계발서식으로 ‘상상하면 이루어진다’든가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라’든가 조언하기도 하지만, <커스터머>의 매력은 ‘당신이 갖고 태어난 몸도 가족도 그 안에 영원히 속해야 하는 게 아니라 바꿀 수 있고 바뀐 당신이 진짜 당신일 수 있다’는 세계관에 있다. 작가의 세계관이 아닐까 생각했다. <커스터머>의 등장인물 중 시리즈 다음번 책에 나오는 건 누구인가.

=다 나올 것 같다. 새 인물들이 등장하겠지만 <커스터머>의 인물들이 거의 다 같이 갈 듯하다. 언젠가는 ‘움직이는 돌’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좋아하고. (웃음) 그래서 돌 계속 나오냐고 누군가 물어보기에 나온다고 했다.

-잘되면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자.

=굿즈로 만들까.

-그러면 3부작을 관통하는 큰 사건도 있나.

=내겐 항상 굵은 줄기의 서사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안 그래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첫 두 장편은 잘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쪽이었다. <커스터머>는 욕심을 내보자는 쪽이었다. 더 잘해보자, 더 재미있게 해보자,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고. 원하는 기준치까지 끌어올리며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게 힘들었던 것 같다. <커스터머> 출간 이후 소설과 거리를 두고 보면서 거대한 서사보다 사소한 에피소드나 인물간의 관계가 좋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잘하는 걸 하면 되지, 뭐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커스터머>

유전자 기술의 발달로 인해 ‘커스텀’이라는 신체 변형이 대중화된 세계. ‘비취, 태양, 모래’ 세 구역으로 나뉜 이 세계에서 최하층인 웜스는 모래 구역에 산다. 팔을 초록색 호스로 커스텀한 사람을 어려서 본 뒤 커스텀에 매혹된 수니는 웜스 출신이지만 통합교육정책 덕분에 부유하고 커스텀이 활발한 태양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수니는 커스텀을 통해 다른 존재가, 커스터머가 되고자 소망한다. 수니는 기숙사 룸메이트로 두 가지 성이 공존하는 중성인 안을 만나 끌린다. 어느 날 수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라울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좋아하는 여성 작가_ 정소연, 정세랑, 박현주

“너무 많다. 긴 목록이 필요할 정도로.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를 꼽자면, 정소연 작가, 정세랑 작가, 박현주 작가다. 이 세 작가는 스타일이 다 다르지만 읽으면서 ‘내가 지향하는 것과 목표가 비슷하다’ 싶어 벅찬 느낌이 들었다. 다 따로지만 같이 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느낌.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좋은 품질의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느낌으로 글을 쓴다. 이들의 글을 읽을 때 그랬다. ‘이 사람들은 좋은 물건을 만들려는구나, 무게를 잡지 않고도 인간과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이런 글이 우리말로 쓰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

내 인생의 영화_ 하이틴 로맨스 영화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중학생 때부터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외삼촌 주택에 살았다. 사촌언니가 같이 살았는데, 자기 집 열쇠를 주면서 오고 싶을 때 와서 놀라고 했다. 그래서 수업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려 언니네서 봤다. 그때 본 영화들이 다 내 인생의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하이틴 로맨스 영화들을 좋아했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커스터머>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 <프린세스 다이어리>(2001). 하이틴 로맨스는 아니지만 <금발이 너무해>(2001).”

원고 마감의 친구_ 스타벅스

“스타벅스. 작업실로 쓴다. 소설만 쓸 때는 스타벅스로 출퇴근을 한다. 집에서 걸어서 20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데 산책도 되고 딱 좋다. 물건이라면 노트를 중요시한다. 나는 노트에 글을 쓴다. 새로 작업을 시작할 때나 중요할 때 새로 노트를 산다. 그날그날 노트에 쓰고 집에 와서 컴퓨터에 옮긴 뒤 프린트해서 읽고 수정한다. 너무 환경에 나쁜 것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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