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 붕괴사고 현장에서 동생을 잃는, 끝이 늘 똑같은 꿈.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뜬 여자는 목욕탕 간판을 켜고 영업 준비를 한다. 카운터에 앉아 건물 모형을 만들다가 미용사를 찾는 손님이 오면 숙취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엄마를 깨워 일으킨다. 일감을 받는 건축사 사무소에 들렀다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 목욕탕을 청소하는 하루 일과를 마칠 무렵, 탕에서 일하는 세신사가 여자를 부른다. “문수야, 나 간다.” 문수, 이름이 하문수(원진아)였다. 시작부터 주인공 이름을 각인시키는 대개의 드라마와 달리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첫회 20분이 지나도록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공사장 잡부인 이강두(이준호)도 마찬가지.
사고 생존자인 동시에 유가족인 문수와 강두는 10년이 지나 건축 모델러와 인부로 다시 개발을 시작한 현장을 찾았다. 사고를 겪은 두 사람을 특별한 감정으로 엮나 싶었던 이야기는 시공사가 마련한 추모비를 강두가 해머로 깨부수는 사건 이후, 비석에 새겨졌던 이름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 큰 사고에서 48명밖에 안 죽었다’는 사람들의 말은 ‘48명이나’로 정정되고, 사고 여파로 자살한 이의 목숨이 더해지며, 죽은 자식을 기다리던 치매 노인의 고독사로 다시 확장된다. 사망자와 생존자 명단으로 갈린 이름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살아내고 있는가. 추모비의 글귀로 다 담지 못하는 것들을 짚어간 다음에야 비로소 이름은 생과 사의 무게를 걸맞게 짊어진다. 딱히 비밀도 아닌 주인공들의 이름을 뒤로 미뤄서 알려준 까닭도 이들의 삶을 먼저 눈에 새겨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