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라 슬리마니는 모로코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다. 2016년 <달콤한 노래>로 공쿠르상을 받은 슬리마니는 최근 지난 11월 7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어 진흥 특사로 임명된 직후 한국을 방문했다. 배우, 기자로 일했고 두 아이를 둔 슬리마니의 두 번째 장편소설 <달콤한 노래>는 “아기가 죽었다. 단 몇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라는 오싹한 도입부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죽음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따라가지만, 미스터리를 해결하기보다 더 풍부하게 만들어간다. 평온해 보이는 한 가정의 문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 사건이나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는 쉽게 무시되는 갈등과 비밀. 슬리마니는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묘사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에 오히려 책 속에서 아이들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게 하겠다고 결정했다고. 그녀를 만나 소설과 여성의 삶에 대해, <달콤한 노래>에 대해 들었다.
-<달콤한 노래>는 유럽 각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에도 소개되고 있다. 문화권이나 나라별로 독자나 매체 반응에 차이가 있나.
=38개국에서 출간되었다. 독자들, 특히 여성 독자들이 경험하는 모성, 여성의 노동환경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것 같다. 페미니즘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반응과 동유럽 국가들의 반응이 굉장히 다르다. 동유럽 여성 독자들의 경우 소설 속 엄마 미리암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왜 아이들을 두고 일을 하려느냐 같은 가치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문학에서 남성 작가들이 아주 오랫동안 주류를 점해왔다. 남성 작가가 여성을 신화화하거나 창녀로 그리는 이분법도 많았고, 모성은 신화화되었다. 그래서 현대의 여성 작가들은 진짜 여성의 모습을 여성의 목소리로 더 이야기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 같다. 당신에게 중요한 동시대 여성 작가들은 누구인가.
=프랑스 작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국 작가로는 브론테 자매를 굉장히 좋아한다. <폭풍의 언덕>이라든지 <제인 에어>라든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댈러웨이 부인>과 실비아 플라스의 시도 좋아한다. 모로코 작가로는 파테마 메르니시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녀는 페즈의 할렘에서 태어났다. 우연히도 내 아버지와 같은 해 같은 동네에서 자라서 결국 친구가 되었는데, 그녀는 할렘을 벗어나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모로코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메르니시는 나에게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도 인생의 귀감이 되었다. 미국 작가 중엔 카슨 매컬러스, 플래너리 오코너를 좋아한다.
-<달콤한 노래>는 2012년 뉴욕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 사건 자체를 정통으로 다루는 작품은 아니지만 사건을 아는 사람은 바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 사건이 중요한 문학작품이 된 경우가 꽤 있다. <보바리 부인>이 그렇고 <테레즈 데케이루>도 그렇다. <안나 카레니나>도 기차역에 투신했던 어떤 여성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위대한 소설이다. 작가들에겐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무엇인가에 집착하고 있다가 현실에서 우연히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상상력이 발휘되고 그것이 소설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신문에 뜨는 사건사고가 내 상상력을 도발하고 그 상상력을 통해 작품의 구성을 만들어간다. 최근 단편을 쓰는데, 그 경우에도 실제 사건사고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나는 이런 사건사고를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 신문에서 여러 사건 중에서 그 사건을 골라 보도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사건이 사회집단의 상상력을 발동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건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것일까. 그런 사건들은 공동의 세계관이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달콤한 노래>는 비단 사건을 저지르는 루이즈에 국한하지 않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성장하면서 맺는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시어머니, 보모 등 여성들간의 긴장과 갈등은 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강력한 권력관계다. 처음에는 루이즈에 대해 궁금했는데, 결국은 다른 여성들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되더라. 이 책엔 남성 중심적인 세상이 기록하지 않는 세계가 담겨 있다. 당신의 경험이 책에 녹아 있을 것 같은 부분들이기도 하다.
=내가 겪은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어렸을 때 겪은 것이라든지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또 보모를 고용하는 사람으로서 체험한 것이 다 들어가 있다. 그런가 하면 내 주변의 여자친구들이나 어머니를 통해 관찰한 요소도 같이 녹아 있다. 여성들의 이야기,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최대한 구체적이면서 평범한 방식으로 하고 싶었다. 아기 기저귀 갈아주기, 요리 준비하기, 보모 고용하기와 가정 유지하는 법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루이즈의 남편 자크의 말이다. 자크는 루이즈의 말에 “아, 그건 여자들끼리 하는 하찮은 이야기야”라고 멸시하듯 이야기한다. 여성간에 충돌이 있거나 다툼이 있으면 여성들은 닫힌 구조 안에 존재하므로 그런 것들을 중요시하지만, 남성들은 시시한 이야기라며 밀어낸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 이야기들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중요하다. 여성들 사이에 충돌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아내와 보모 사이에,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남편들은 대부분 거기에 참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여성들끼리 해결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들을 가정 내에서 밖으로 끌어낸다면 한정적으로 여성들의 일일 수 있었던 충돌 문제나 긴장 문제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가치를 띨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성들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게 해야 한다. 왜 집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여성 혼자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지, 왜 아내가 커리어를 위해 가정 일을 충분히 하지 못할 때 아내 혼자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지.
-남성 작가들이 사회적, 구조적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을 써온 반면,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 작가들이 지나치게 사적이고 개인적인, 여성들의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는 비판도 있다.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인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모로코에서도 그런 말이 있었다. 내가 <섹스와 거짓말>에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을 썼을 때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성의 교육이나 빈곤퇴치나 사회·정치적 권리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런데 그런 이슈들 때문에 여성의 내밀한 삶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논리는 여성을 이중, 삼중의 지배 아래에 있게 한다. 내 생각에 내밀한 권리와 사회·정치적 권리는 연동되어 있다. 이와 관련된 모든 제약을 터뜨려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사적인 삶에서 자유롭고 편하게 느낀다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엄성이라는 문제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달콤한 노래>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아이들에 대한 묘사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그 힘을 이용한다. 아이들이 죽는 것으로 시작하는 소설에서, 아이들을 ‘불쌍한 천사’ 같은 모습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 책을 쓰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아이들을 죽여야만 불안한 요소가 제대로 표현될 테니까. 그래서 첫 장면에서 아이들의 시체를 등장시키고, 아이들이 어떻게 죽는지 같은 장면은 묘사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결론지었다. 아이들을 소설 속에서 죽게 해야 한다면, 완전히 생동감 있는 아이들로 만들어주자고. 사람들이 아이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밝고 가벼운, 희화화된 캐릭터 같은 상투적인 모습 말고 진짜 아이들을 키울 때 경험하게 되는, 모순, 변덕, 짜증나게 하는 장면 등을 다 묘사해서 정말 살아 있는 아이들을 보여주자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의 영화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복수’라는 주제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나의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인생에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잘 마시고, 잘 먹고, 잘 복수하는 것.” 복수는 매혹적이고 나의 관심을 끄는 주제다. 그것을 예술적으로 어떻게 잘 다룰까, 그런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정말 매혹적인 것은 여성 주인공들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최근 하비 웨인스타인을 비롯한 유명한 남성들의 성추문 뉴스가 매일같이 터져나온다. 이른바 더 개방적이고 더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예술계에서 이런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처음 작가가 됐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작가들은 아주 똑똑하고, 훌륭하고, 개방적이고, 관대하다고. 그런데 작가가 되어 만난 사람들 중에는 정말 어처구니없이 바보거나, 돈만 밝히거나, 인종차별주의자도 있어 실망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순진한 바보였다는 거다. 위대한 화가, 조각가, 영화감독, 무용가가 있는 반면에 저질인간들도 있다. 문화계라고 해서 그런 인간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달콤한 노래>
한 아이는 죽었고, 다른 아이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발견되었다. 두 아이를 돌보던 보모 루이즈는 자해를 한 채. 루이즈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이유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두 아이의 부모는 어떻게 루이즈를 보모로 고용하기로 했는지, 다른 집 보모가 본 루이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루이즈의 딸이 생각한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등이 차례로 알려진다. 과연 이 사건에서 속시원한 해결은 가능할까. 레일라 슬리마니는, 어쩌면 간신히 비극을 면해 살고 있는 현대 가정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