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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 단독 인터뷰 - “영화인, 블랙리스트 고발 함께해달라”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7-09-25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82명 대표해 민형사 소송 준비 중인 문성근 단독 인터뷰

결국 ‘이번에도’ 문성근이 총대를 멨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 82명을 대표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겨울 한국 사회를 수놓은 촛불집회를 통해 “내가 움직여야 세상이 바뀐다”는 진리를 깨닫고 “피해자들이 고소를 하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으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그는 문화·예술인 82명의 전화번호를 일일이 수소문해 함께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박찬욱, 김미화, 이외수, 김여진, 문소리, 김규리, 명계남 등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기로 했다. 검찰조사를 받은 다음날인 9월 19일 오후 일산에서 문성근을 만났다.

-7시간 동안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쟁점이 무엇이었나.

=주로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검찰에 전달한 자료(‘MB 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건’)를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내 경우에는 조사 범위가 2011년으로 한정돼 있었다. 또 하나, 국정원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그것을 문화체육관광부, 방송사, CJ 같은 대기업 투자·배급사에 실행 지시를 내린 거잖나. 블랙리스트가 바닥(문화·예술인들)에 가서 피해를 발생시켰는데 그 과정 또한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로지 MB 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건과 관련된 조사만 한 건가.

=그렇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했지. 이 문건에 나온 내용은 극히 일부분이니 전모를 밝히기 위해서는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 검찰은 “지금 당장 조사할 인력이 부족하다. 전모를 밝혀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그래서 추가 조사가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언제든지 조사를 받으러 가겠다, 전모를 밝히는 게 목적이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혼자서 했을 리 없으니 이명박 전 대통령을 소환해 법적 책임을 꼭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사 과정에서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도 있었나.

=김여진씨와 나체로 침대에 누워 있는 합성사진이 국정원 문건에 인쇄돼 있더라. 그 사진 유포 방법도 있었다. 국정원이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총장에게 나를 규탄하고 음해하는 큰 규모의 시위 2번, 1인 시위 20번을 지시했고, 각각 800만원이라고 문건에 적혀 있었다.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에 지원을 받는 건가라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국정원이 직접 지원한 게 확인된 셈이지. 또 ‘SNS를 통해 나를 종북 DNA를 가진 자라고 공격하라. 지라시에도 넣고, 인쇄물을 만들어 뿌려라’,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하 국민의 명령) 회원들의 탈퇴 운동을 해라’ 같은 지시 사항도 있었다.

-과거 악성 유언비어를 유포한 사람들을 몇 차례 고발한 적 있지 않나.

=그때 공격을 어마어마하게 당했지. 나에 대한 공격은 2011년부터 심해졌다. 당시 국민의 명령 활동이 활발했고 정치권에서 그걸 유의미한 운동이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명령을 와해시키고, 내 이미지를 추락시켜 운동의 동력을 꺾는 게 그들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블랙리스트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었나.

=2008년 초 SBS 드라마 <신의 저울>에서 정의로운 검사 역할을 맡았고 10월경에 출연금지 조치가 내려졌으니, 5월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부터 블랙리스트가 실질적으로 작동된 것 같다. 그게 2008년 9월인가 10월쯤이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변호사와 얘기하겠지만, SBS, MBC, KBS, CJ 모두 한번씩 출연을 거부당했다. “저 사람(문성근) 안 돼요”라는 지시가 하달되면 그 이후로 안 되는 거니까.

-당시 방송사들로부터 어떻게 출연을 거부당했나.

=그때 관련됐던 사람들이 먼저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SBS 노조에 이렇게 얘기했다. 일선 PD는 본부장 또는 CP한테서 “걘 안 돼”라는 말 한마디밖에 들은 게 없으니 그런 말을 들은 PD가 조각 정보를 얘기해줘야 그걸 가지고 본부장한테 물을 수 있고, 본부장이 얘기해줘야 그게 어떤 방식으로 하달됐는지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겠나. 김규리가 출연 배제됐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권해효를 ‘자르라’는 걸 연출 PD가 버텨냈다는 거 아닌가? 아무튼 SBS 노조가 중간 발표를 했는데 또 다른 사안도 밝혀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방송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감했을 때 어땠나.

=배우 데뷔한 게 1985년 5공화국 때였는데 그때부터 출연하기로 했던 프로그램이 취소된 경우가 수차례 있었기 때문에 이번 블랙리스트에 오른 일이 큰 충격은 아니었다. 명단이 있겠지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포함됐는지 몰랐다.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 82명이 박근혜 정부 때는 8천여명까지 늘어난 거니까. 이번 사건이 가슴 아픈 건 민주정부 10년 동안 사라졌던 리스트가 부활해 광범위하게 작동됐다는 사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이명박 전 대통령 고소를 두고 이명박쪽에서는 “정치보복”이라고 반응하던데.

=참 뻔뻔하고 비겁하다. ‘박원순 제압문건’과 ‘블랙리스트’ 자체가 정치보복이지. 적법절차에 따라 조사해 불법행위가 드러나 처벌하자는 건 MB께서 좋아하시는 법치를 세우는 일이다. 한때 국가 지도자였으면 대통령 직속 국정원 수장과 직원들의 불법행위가 드러났을 때 ‘내 책임’이라며 직원들을 빼줘야지, 그들 뒤에 숨어버리는게 얼마나 비겁한가. 국격을 있는 대로 추락시켰는데 이제라도 자백해 대한민국 국가 지도자의 격을 지켜라.

-MB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사람 중에서 20여명이 넘는 문화·예술인들이 민형사 소송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감독들의 연락이 적은데 충분히 이해한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거다”라는 생각 말이다. 변호사의 의견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 많지만 명단에 올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배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이름을 많이 걸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유명한 감독들이 말이다.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를 촉진하고 그래야 이명박을 구속시킬 거 아니냐. 영화인들에게 그저 문자만 보낼 거지만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이 기사 제목을 ‘영화인, 블랙리스트 고발에 참여해달라’고 꼭 써달라.

-동료 감독들에게 직접 연락해 설득할 생각은 없나.

=2001~2002년 ‘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을 만들 때는 함께하자고 일일이 연락했다. 근데 함께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불이익을 받는 걸 보면서 피해는 나만 받으면 되지 뭐하러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여서… 그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영화인들이 입을 열기를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정권이 바뀌면 보복 당할지도 모른다”는 거다.

=에이 설마. (웃음) 정권이 안 넘어가게 노력을 해야지 걱정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나라가 정상화되려면 민주진보 정권이 상당 기간 연장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배 세력 연구소라는 재단법인을 만들겠다는 신학림 <미디어오늘> 전 대표가 해준 얘기 중에서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잊히지 않는 게 있다. 월가 사태가 터졌을 때 국가경제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대통령, 경제부처 장관들, 경제수석, 전경련 의장단이 모여 대책 회의를 하고 찍은 단체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신학림씨가 사진을 분석해보니 사진 찍은 25여명이 모두 친인척 관계라는 거다. 그 인맥을 동원하면 검찰이고 사법부고 뭐 제대로 작동되겠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제야 구속될 수 있었던 건 촛불의 힘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재용쪽이 ‘강요에 의한 뇌물’이라고 주장한 걸 보면 쟤네(기득권)들은 박근혜를 버리고, 이재용을 살리려는 거다. 재판부가 이재용 같은 범죄자에게 법이 정한 만큼의 형량을 때리게 하려면 민주정부가 상당히 길게 갈 것 같다는 예상이 가능해야 한다. 나라 모양새도 문제지만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보복 걱정할 때가 아니라 정권이 연장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모태펀드를 운영하는 한국벤처투자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다고 얘기한 적 있다.

=모태펀드를 운영하면서 박근혜 정권부터는 위에서 내려보낸 감사가 투자심사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했다더라. 그가 “송강호의 러닝개런티가 왜 이렇게 많아”라고 지적하면 ‘아, 정권이 이 영화를 싫어하는구나’ 알아서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작동됐다고 한다. 구두로만 전달되고, “정말 러닝개런티가 때문에 거절했다”고 둘러대면 되니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아 법적 책임을 묻는 게 쉽지 않지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투자심사회의에 파송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렇게 투자가 배제된 작품들이 무엇인지 정도는 밝혀져야 한다. 무엇보다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사람은 다시는 공적인 자리에 가서는 안 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화이트리스트에 대한 진상 조사도 필요하다고 했는데.

=국정원 입장에서 보면 블랙리스트를 실행하는 데 돈이 별로 안 든다. 전화 몇통이면 되니까. 반면 화이트리스트의 경우 극우단체에 상당히 큰 지원을 했을 거다. 화이트리스트 진상 조사는 서훈 국정원장도 저항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돈을 만진 사람들이 아직 현직에 있으니 드러내기가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국정원이 그런 식으로 버티면 제대로 된 적폐청산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라도 밖에서 계속 떠들어야 한다. 합성사진도 한심하지만 화이트리스트에 내가 낸 세금이 얼마나 쓰였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닌가.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보면 당시 김기춘 실장이 ‘좌파는 부유하고, 우파는 가난하니 좌파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고 우파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영화계만 그렇지. (웃음) 좌파에 대해 지원은 다음 문제이고 방해만 안했어도 좋았겠다. 여담 같지만 2년 전쯤 군대에 간 친구 아들이 휴가를 나왔는데 절망에 빠져 있더라는 거야. 정훈교육시간에 문성근이 종북이라는 내용의 강의를 하더래. 지난 2010년 공주시 우금치에서 백만민란 집회를 열었는데 거기서 횃불행진을 한 적 있거든. 그때 찍은 사진과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 만난 사진, 내가 김정일 만난 사진을 띄워놓고 강연을 했다는 거다. 친구 아들이 집에 와서 하는 얘기가 군에서 장병들에게 그렇게 세뇌교육을 하고 있는데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겠냐는 거지. 그들이 합성사진 같은 조악한 짓을 왜 했겠나, 효과가 있으니까. 내가 김정일 앞에서 막 웃고 있는 사진만 봐도 공포가 자극되잖나. 영화계가 풀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과 영진위 위원장 선임이 왜 이렇게 늦어지고 있나. 위원들이 선임되면 몇 가지 건의하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살 길을 찾아, 또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정부가 그분들의 후손에게 영화 교육 기회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지금 영화계를 주름잡는 배우들 대부분이 대학로 출신이잖나? 연극계의 도움을 받는 거니 영진위가 연극에 대한 지원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은 첫 단계로,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 수의 일정 비율 이상을 독식하지 못하게 영비법을 개정해야 한다. <군함도> 얘기도 안할 수 없는데, 스크린 2천개 이상 잡은 건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욕을 먹고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지 류승완 감독이 그렇게 욕먹을 일이 아니다. 류감독, CJ에서 자회사로 들러오라며 큰 금액 제시했는데 영화계 생각해 거절했다던데...참. 다음 단계로는 투자사의 제작사 겸업 금지, 마지막으로 배급과 상영업 분리를 해야지. 지금 국회 구성으로는 통과가 쉽지 않을 거다. 또 공적 배급망을 형성해나가면 좋겠다…. 아이고, 나 언제 배우하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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