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이나 정의감 등을 강조하는 전문직 드라마들이 가족의 죽음에 얽힌 비밀 같은, 사적 동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인이 주인공일 때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사명감이나 자부심, 사고방식의 일정 부분은 줄곧 해왔던 일의 성과를 통해서 발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언론인의 덕목뿐만 아니라 완고함이나 고압적인 태도 같은 부정적인 특질도 마찬가지다. 기자, 작가, 프로듀서 등 업무 특성에 따라 다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처럼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는가에 따라 각각의 입장이 달라진다. tvN 드라마 <아르곤>은 이 차이들을 꽤 세심하게 다룬다.
그리고 이들과 또 다른 미묘한 위치에 있는 기자가 있다. 계약기간을 6개월 남기고 탐사보도 프로그램 <아르곤>팀에 발령받은 이연화(천우희)는 “해고당한 기자들을 대신해 투입된 땜빵 인력”이다. 팀원들의 주변을 쭈뼛거리며 맴도는 모습을 보고 미숙한 기자가 일을 통해 성장하는 전개인가 싶었는데, 뜻밖에도 연화는 딱히 성장이 필요 없는 인물이었다. 쇼핑몰 붕괴사고의 내막을 분석한 보고서를 올렸다가 팀장 김백진(김주혁)에게 허황된 소설이라고 거부당하자, 연화는 그가 정색하고 다시 볼만한 정보를 구해온다. 그제야 자세히 브리핑해보라는 백진에게 연화가 내미는 건 그가 건성으로 보고 던졌던 바로 그 보고서다. “다시 봐주세요.” 스스로 레벨업하는 연화가 간절히 구하는 건 기회와 증명이다.
일을 통해 성장하는 개인을 다룬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종종 잊게 되는데, 현실의 일은 비정규직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경력 같은 신입을 비정규직으로 굴리는 풍토에서 그나마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완성형의 인간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