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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 상수의 영화를 보고 회전문을 떠올리다
2002-04-12

제1장 에피소드

<생활의 발견>엔 비밀이 있다. 홍상수 감독은 훨씬 부드럽고 평이한 듯 보이는 <생활의 발견>에 그 비밀을 전작들에서보다 더욱 깊이 묻어놓았다. 정성일씨는 홍상수 감독이 면밀한 계산으로 혹은 직관과 무의식으로 묻어놓은 비밀을 찾아나섰다. 이 비밀 찾기 여행은 간단하지 않다. 꽤 길고 난코스도 있지만, 무사히 완수한다면 보답이 있다. 영화를 읽는다는 것의 진정한 기쁨. <생활의 발견>은 정말 비밀투성이었다! 편집자

나는 그 작품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읽고 나서 나의 생각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허구적 작품 속에서 독자는 매번 여러 가지 가능성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는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나머지들은 버리게 됩니다. (중략) 이렇게 해서 그는 다양한 미래들, 다양한 시간들을 선택하게 되고, 그것들은 무한히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증식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가진 모순들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호르헤 보르헤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數列)3.11 …당신처럼 되는 것: 지금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 그러나 일인칭 목적어 나에게 일인칭 주어 나를 말하게 허락하는 것을 보류하는 것, 이것이 갑자기 시작되고…. 필립 솔레르,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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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또는 경수가 성우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다, 라고 홍상수의 네번째 영화는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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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생활의 발견> 1시간54분이며(영화사 타이틀과 엔딩 타이틀 제외), 모두 일곱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신 수는 89개이며, 숏 수는 117개이다(제목 포함). 일곱개의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져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성우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다, 라는 자막이 붙어 있으며, 2개의 신과 2개의 숏으로 되어 있다(여기서 자막은 컷 수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하 마찬가지이다). 이 에피소드는 2분19초이다(역시 자막은 시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일곱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짧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영화사에 가서 감독과 말다툼을 하다, 이다. 11개의 신, 13숏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소는 서울과 춘천에 걸쳐 있다. 13분49초로 이루어져 있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명숙이 경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다, 이다. 14개의 신, 20개의 숏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춘천에서 이루어지며, 17분47초이다.

네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성우를 하루종일 기다리다, 이다. 12개의 신, 12개의 숏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춘천에서 진행되며, 11분31초이다.

다섯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기차 안에서 선영을 만나다, 이다. 경수가 선영을 만나는 장면은 3분57초로 이 영화에서 가장 길다. 16개의 신이며, 18개 숏으로 되어 있다. 춘천과 기차, 그리고 경주로 장소가 나누어져 있다. 20분31초이다.

여섯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선영을 뒤늦게 알아보다, 이다. 12개의 신이 16개의 숏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경주에서 벌어지며, 21분 48초이다.

일곱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회전문의 뱀을 떠올리다, 이다. 22개의 신이며, 27개의 숏이다. 모두 경주에서 벌어지며, 26분30초이다. 일곱개 중에서 가장 긴 에피소드이다. 영화는 경주에서 끝나며, 경수가 부산으로 갔는지, 아니면 다시 서울로 돌아갔는지, 또는 다시 여행에서 다른 지방으로 갔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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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는 등장인물과 장소에 의해서 세개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우선 장소를 중심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영화는 서울과 춘천, 그리고 경주로 나눌 수 있다. 춘천은 춘천과 소양호로 다시 나눌 수 있으며, 춘천과 경주 사이에 열차가 있다.

춘천은 89개 신, 117개 숏 중에서 5번째 신, 9번째 숏에 도착한다. 이것은 영화가 시작하고 난 다음 6분25초가 지난 다음이다. 춘천에서 벌어지는 일은 (소양호를 포함해서) 39개 신, 45개 숏이다. 그리고 여기서 45분58초를 보낸다.

춘천과 경주 사이를 연결하는 기차장면은(여기서는 기차 안과 기차역을 포함시켰다. 즉 경주는 기차역이 아니라 기차역 광장부터 셈했다. 이것은 선영과 경수가 만나는 장소가 춘천이나 경주가 아니라 원주와 경주 사이의 기차 안이어서 장소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선배 성우가 경수에게 한 말에 의하면 경수는 춘천에서 원주까지 버스를 타고 갔으며, 원주에서 기차를 갈아탔다) 5개의 신, 7개의 숏로 되어 있다(이 대목은 숏을 별도로 나눈 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명숙의 사진 인서트가 한 숏을 차지한다). 기차장면은 7분57초이다.

경주장면은 41개 신, 49개 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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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경수와 명숙, 그리고 경수와 선영으로 나눌 수 있다. 명숙은 영화가 시작하고 22분39초, 그러니까 세번째 에피소드, 20번째 신, 28번째 숏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장면은 춘천 버스터미널인 다섯번째 에피소드, 43번째 신, 57번째 숏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녀의 사진이 기차에서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2분 뒤에 경수는 명숙의 사진을 남에게 준다. 명숙이 나오는 장면을 다시 나눌 수 있지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화면에 그녀가 없지만, 심리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또는 전화 목소리로 등장하는 숏이 있다. 그런데 구태여 나누어야 하는 경우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이미 명숙이 선배 성우가 건네준 전화를 통해서 경수와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별도로 구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선영은 다섯번째 에피소드, 54분37초가 되는 45번째 신, 61번째 숏에서 등장한다. 다섯번째 에피소드에서 명숙과 헤어지고 선영과 만난다. 그러나 그 둘은 겹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기 직전인 일곱번째 에피소드, 1시간50분15초에 골목길 저편으로 사라진다. 이것은 86번째 신이며, 112번째 숏이다. 명숙과 마찬가지로 선영이 나오는 장면과 나오지 않는 장면은 별도로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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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과 퇴장에 대해서. 명숙은 처음 등장할 때 등을 보여준다. 그녀는 숏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서 있다. 그리고 마지막 퇴장장면에서 마찬가지로 등을 보여준다. 그녀는 숏이 끝난 다음에도 서 있을 것이다. 영화적으로 말하면 이미 명숙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선영은 기차 안에서 경수에게서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팬 하면 앉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경수에게서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팬 하면 그녀는 골목 저편으로 사라진다. 영화적으로 말하면 선영은 생성되고, 그리고 소멸된다. 그녀들은 같은 방법으로 나타나고, 같은 방법으로 떠나간다. 한 가지 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화면은 텅 비어 있다. 그리고 경수가 비를 맞으면 등을 돌리고 그 안으로 들어온다(프레임 인). 마지막 장면에서 경수는 비를 맞으며 카메라를 향하여 걸어 나간다. 또는 빠져나간다(프레임 아웃). 나간 다음에도 카메라는 그냥 서 있고, 텅 빈 화면이 보여진다. 이 영화에는 대사와 인물, 소도구, 행위의 반복과 모방이 있지만, 동시에 카메라와 프레임의 반복과 모방이 있다. 그런데 그들 사이의 관계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홍상수는 이야기의 담론과 카메라의 화법 사이에 인과관계를 세우지 않는다. 정성일/영화평론가 hermes59@hamail.net▶ 성일, 상수의 영화를 보고 회전문을 떠올리다

▶ 제2장 자막

▶ 제3장 회전문

▶ 제4장 구조

▶ 제5장 착각

▶ 제6장 아버지

▶ 제7장 …그리고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