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는 1천장의 컨셉 비주얼 스케치를 일람하는 듯한 영화다. 공들인 디자인과 복잡한 플롯으로 갖춘 이 대작의 진짜 약점은 허약한 스토리라기보다, 이미지들이 그것이 품은 사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외형을 자유롭게 바꾸는 불법 이민자 댄서 버블(리애나) 정도가 예외다. 10살 때부터 정체성 없이 살아온 버블은 노예 신세지만 예술가의 영혼을 지녔다. 가죽과 망사옷, 간호사복, 교복 등 남성 섹스 판타지의 이미지들로 연거푸 변신하면서도 그녀가 추는 춤에는 긍지가 흐른다. 뤽 베송 감독은 분명 페티시즘의 연출자이지만 그의 시선을 지배하는 힘은 성적 착취의 욕망보다 ‘예쁜 것’에 대한 열광이다. 극적 기능만 수행하는 캐릭터가 대다수인 이 영화에서 버블은 유일하게 페이소스를 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08/16
집에서 가까운 멀티플렉스에서 박찬욱 헌정관이 개관한 기념으로 박찬욱 감독이 선정한 영화들을 상영 중이다. 목록 중에는 여태 보지 못한 영화도 있었지만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여파인지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그림자 군단>을 유난히 다시 보고 싶었다. 광복절 주간인 데다가 미국으로부터 네오 파시즘 준동 뉴스가 날아든 지금 관람하기 더할 나위 없기도 했다.
내 둔한 기억과 달리 <그림자 군단>에는 유머가 꽤 많았다. 첫 장면에서 체포된 주인공 필립(리노 벤추라)을 수용소로 호송하는 프랑스 경찰의 위로부터 허탈하다. “독일군 장교 포로 수용하려고 지은 건물이니 괜찮을 거예요. 우리가 이길 줄 알고 지었잖아요.” 배신한 동지를 레지스탕스들이 처결하는 대목에는 “인원은 적은데 할 일은 많고 참…”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동시에 정말 그랬을 법한 광경이다. 처형 과정에서 막 가입한 신참 단원이 총은 몰라도 칼로는 처음이라 차마 못 죽인다고 선을 긋는 모습도 나온다. 처절하고 우스꽝스럽다. 1940년대 초 감독 본인도 가담했던 레지스탕스 활동을 1969년에 재현한 영화 <그림자 군단>은, 전쟁기 레지스탕스의 삶이- 독일군의 고문과 살상을 제외하고도- 얼마나 끔찍했고 구질구질했고 환멸로 점철돼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멜빌은 잔혹한 고문 신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필립과 레지스탕스 수뇌부는 불비한 조건 속에서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중 한쪽을 선택해야만 한다. 실제로 필립과 동지들은 내리막길 도중에 전쟁으로 마모된 휴머니티를 회복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하나같이 불행한 결말을 맞는다. <그림자 군단>이 그리는 인간성의 숭고함은, 레지스탕스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어떤 포즈로 했느냐의 문제 바깥에 있다. 다시 체포된 필립은 집단 총살 직전 “맞은편 벽까지 제일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다음 처형까지 살려준다”는 게슈타포 장교의 가학적 미끼를 외면하지 못하고 다른 프랑스인 포로들과 경쟁하며 달린다. 벽 너머에서 기다리던 동지 마틸드(시몬 시뇨레)가 놀랍게도 그를 구한다. 필립은 안도하면서도 참담하다. “내가 살겠다고 뛸 거라는 걸 알았군. 그렇게 날 생각했군.” 이 말에 마틸드는 자신의 손으로 필립의 손을 덮으며,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그녀가 이 말을 했는지, 나의 상상을 내가 들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순간 교회 종소리가 울린다. 내 목숨을 구하고자 경쟁하며 달리는 일은 수치가 아니며, 레지스탕스 투쟁이 추구하는 바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 멜빌은 레지스탕스들이 의로웠다고 주장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강하지만, 더 나은 선택이 없었음을 믿는다. 새삼스럽지만 <그림자 군단>은 피해자들의 무고함과 결백함에 기대지 않은 채, 폭력 스펙터클로 가해자의 악을 증명하거나 관객에게 대리 카타르시스를 안기지 않으면서, 파시즘의 해악과 그것이 많은 인간의 삶에 끼친 고통을 증언하는 극영화다. 이 인물들은 매우 정치적이고, 일부는 특정당 소속이며, 그때까지 살아오며 획득한 사회적, 철학적 신념에 근거해 파시즘과 침략 세력의 억압에 항거한다. 전 대통령이 모델이었던 <변호인>을 포함해 현대사를 그린 한국영화들이 ‘정치’를 금기어로 설정하고 아무것도 몰랐다가 사태에 휘말려 눈앞의 물리적 폭력에 분노하는 소시민 남성을 주역으로 세워 보편성 콤플렉스의 벽에 부딪히고, 결과적으로 역사 안으로 관객을 한 발짝도 더 깊이 데려가지 못하는 광경이 갑갑한 여름이다. 오랫동안 나는 현대사 영화들의 그러한 선택이 색깔 논란으로부터 작품을 지키고 “일단 알리고 보자”는 긴급한 필요의 결과라고 믿었지만, 점점 그것이 영화를 만든 주체들이 역사를 이해하는 관점은 아닐까 두려워하게 된다.
08/22
뤽 베송 감독의 신작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이하 <발레리안>)를 보았다. 아폴로호의 달 착륙 화면부터 중국과 러시아 우주비행사의 악수, 시크 교도들의 우주 진출, 외계인들의 방문으로 이어지는 프롤로그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을 향해 진행될 역사를 낙관적으로 예고한다. 다만 알파 우주정거장의 이상인 다문화주의가 이 영화의 스토리와 깊은 관련을 맺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운 반전이다. 뤽 베송은 오직 보기에 훨씬 아름답다는 이유로 다문화주의를 신봉하는 예술가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또한 매우 중요하고 정당한 지지의 근거다. <발레리안>의 배경은 28세기. 지구 출신 특수요원 발레리안 소령(데인 드한)과 파트너 로렐린(카라 델러빈)은 상관의 지시에 따라 우주 장물아비를 급습해 ‘컨버터’라는 희귀동물을 거래현장에서 알파 우주정거장으로 되찾아온다(사물을 대량복제하는 능력을 가진 컨버터의 디자인은 중국 용의 미니어처 버전이다. <발레리안>에는 중국 자본이 투자됐다). 그런데 알고보면 이 귀여운 크리처는 30년 전 소멸된 뮐 행성의 에너지 공급자였다. 뮐 행성에 살던 평화를 숭상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고등 종족 진주족은 경제적 이유로 벌어진 전쟁에 억울하게 희생됐고 교전수칙을 무시한 장군(클라이브 오언)은 아직도 증거 인멸을 꾀하고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장군의 경호 임무를 맡았다가 알파 우주정거장 중심부에서 재기를 꾀하는 진주족과 조우한다.
<발레리안>의 러닝타임 30분 즈음 떠오르는 영화의 제목은 누구나 비슷할 터다. 워쇼스키 자매의 <주피터 어센딩>과 <클라우드 아틀라스>, 브래드 버드의 <투모로우 랜드> 그리고 비운의 대작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이다. 시야를 넓히면 <론 레인저>도 포함될 수 있겠다. 이들의 공통점은 확실한 자기 세계와 상업성을 전작으로 입증받은 감독이 거대 예산을 부여받은 다음 스튜디오 표준을 무시하고 표현 욕구를 펼친 야심작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영화를 바닥에 쏟은 액션 페인팅을 보는 기분인데, 그 동기가 창의적이라 정색하고 미워할 수도 없는 비싼 영화들이다.
스스로 프랑스 최대 스튜디오의 수장인 뤽 베송이 할리우드를 끼지 않고 만든 2억달러짜리 ‘인디영화’ <발레리안>은 역시나 작심하고 분방하다. <발레리안>은 지칠 줄 모르는 시각적 영감의 전시로 점철돼 있다. 훨씬 역동적이고 액션에 방점이 있지만 <발레리안>의 미학적 전범은 CG로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다시피한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이다. 진주족의 뮐 행성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티에폴로가 그린 듯한 하늘을 중심으로 솜사탕 톤의 팔레트로 칠해졌고 21세기 SF영화로서는 드물게 밝다. 그나마 색상이 풍부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조차 <발레리안>에 비하면 누아르에 가깝다. 극중 기술의 발전으로 주인공들은 가상현실과 리얼리티를 오가며 활약하는데, 신체 일부만 대형 마켓 안에 들어가 전투를 벌이는 초반 액션 세트피스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종류의 즐거움을 준다. VR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고려해볼 만하다. 3D로 진행된 언론시사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3D 안경을 쓰고 있는 내 처지가 영화와 제법 어울린다고 느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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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여배우는 오늘도>는 ‘한국에서 여성배우로 산다는 것’을 세개의 짧은 필름으로 말하는 옴니버스영화다. 세편 모두 주인공은 배우 소리(문소리)다. 소리는 영화와 일을 진지하게 사랑하지만 그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여성 연기자에게 주어지는 선입견과 왜곡된 기대에 장단을 맞춰야 한다. 일하는 많은 기혼여성이 그렇듯 소리도 육아와 가사를 위해 어머니의 노동에 기댄다. 반대급부가 독특하다. 고액 임플란트 시술 할인이 간절한 어머니는 딸에게 치과원장과 협찬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고 달리 보답할 길이 없는 소리는 거절할 수 없다. 그냥 갔다간 실망스런 외모라는 소문이 날 테니 미용실도 들른다. 어느 날 등산하다 제작자를 마주친 소리는, ‘좋은 상태’를 입증하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가 황급히 파운데이션을 두드린다. 여배우는 일이 아니어도 수시로 ‘메이크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