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더스 랭글랜즈 시각효과감독, 임창의 라이팅기술감독(왼쪽부터).
“시네마가 요구하는 모든 스펙터클이 그들의 얼굴에 담겨 있다.” <텔레그래프>의 평에서 유추할 수 있듯,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액션블록버스터 이전에 비장한 드라마로 기억될 영화다. 종의 명운을 건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을 조명한 이 작품의 시각효과는 최첨단 디지털 시네마 기술을 감정의 시각언어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혹성탈출> 3부작을 통해 할리우드 시각효과의 놀라운 진보를 입증한 뉴질랜드 시각효과 업체 웨타 디지털의 두 스탭이 한국을 찾았다. 시각효과감독을 맡은 앤더스 랭글랜즈와 라이팅기술감독 임창의가 그들이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마션> 등을 작업한 시각효과 업체 MPC(Moving Picture Company)에서 13년간 일했던 앤더스 랭글랜즈 감독은 이번 작품이 웨타에서의 첫 영화다. 지난 2014년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개봉 당시 한국을 찾아 <씨네21>과 인터뷰를 진행했던 임창의 라이팅기술감독(963호 기획 인터뷰 참조)은 이십세기폭스가 리부트한 <혹성탈출> 시리즈의 3부작에 모두 참여한 시각효과 전문가다. 두 사람이 참석한 국내 매체와의 기자간담회와 내한 단독 인터뷰에서 오갔던 이야기를 전한다.
-<혹성탈출> 시리즈의 3편을 준비하며 새롭게 염두에 두어야 했던 점은.
=임창의_ <혹성탈출> 세편에 모두 참여한 사람으로서, 3편의 가장 큰 도전과제는 전편을 넘어서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2편(<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1편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의 CG가 정말 잘 나왔다. 관객의 기대치를 한껏 높인 상황에서 그 기대에 부합하려면 전편을 넘어서는 퀄리티의 시각효과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혹성탈출> 시리즈의 시각효과 작업은 부문을 막론하고 전편의 기술력을 넘어서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이었다.
-앤더스 랭글랜즈 감독은 이번 작품이 웨타 디지털에서의 첫 영화다. 그동안 <마션>(2015),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1>(2010) 등 다양한 영화의 시각효과 작업을 해왔는데, 이전에 작업한 영화들과 비교해 <혹성탈출: 종의 전쟁>만이 가지고 있는 차별점이 있다면.
=앤더스 랭글랜즈_ 가장 큰 차이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맷 리브스 감독은 작가 출신인 만큼 캐릭터와 이야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기술팀까지도 열정을 가지고 임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3편은 전작에 비해 클로즈업숏이 유독 많은 영화였다. 디지털 캐릭터의 감정을 보다 섬세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었을 법하다.
앤더스 랭글랜즈_ 클로즈업 장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분석’이다. 시각효과 제작진은 스스로 작업한 CG컷을 보며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캐릭터가 사실적으로 보이는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말이다. 디지털 캐릭터의 두상을 만드는 작업부터 그들의 얼굴에 음영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CG로 잘 전환되었는지 등에 주목하며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했다. 특히 이번 영화에는 시저가 내적으로 깊은 갈등을 겪는 장면이 많은데, (시저의 모션 캡처 연기를 맡은) 앤디 서키스의 심오한 감정 연기가 인상깊었다. 한 프레임에 담기나 싶을 정도로 매우 짧은 순간에서조차 그는 시저의 미세한 표정과 떨림을 표현해내더라.
임창의_ 앤더스 감독님의 말대로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했다. 그들의 클로즈업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전달돼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이번 작품의 클로즈업 신에 대해 조명 기술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전작에서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작업방식을 선택했다. 이전 <혹성탈출> 영화에서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완전히 마친 다음 라이팅 작업을 시작했다. 라이팅과 렌더링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로즈업 장면의 경우에는 조명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작업 단계에서부터 라이팅이 필요하다. 이번 영화에서는 기존의 라이팅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애니메이션 작업만을 위한 라이팅을 새롭게 만들었다. 애니메이터들이 클로즈업 장면을 작업할 때 거의 완성본에 가까운 라이팅을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숲, 설원 등 야외 촬영분이 전편보다 많았다는 점도 3편의 중요한 특징이다. 시각효과 측면에서 도전과제가 있었다면.
앤더스 랭글랜즈_ 야외 촬영이 굉장히 많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많은 영화를 통해 축적해온 웨타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탄탄해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영화에는 ‘토타라’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는데, 실제 숲의 생애 주기나 변화의 과정을 묘사할 수 있는 툴이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산악지대나 자연환경의 모습을 최대한 리얼하게 반영할 수 있어 좋았다.
임창의_ 야외 촬영은 빛의 방향과 날씨에 따라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라이팅을 하기 쉽지 않다. 시각효과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실제로 촬영한 이미지의 라이팅을 바꿔야 하는 순간인데, 야외 촬영이 굉장히 많았던 이번 작품에서는 라이팅 작업을 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번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장면을 꼽는다면.
앤더스 랭글랜즈_ 배드 에이프가 눈 내리는 산장 속에서 말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배드 에이프를 연기한 스티브 잔은 배우 자체가 재미있고 흥이 많다. 캐릭터의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특성을 굉장히 잘 살려냈고,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임창의_ 시저와 루카와 병사들이 폭설 속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이 장면은 캐나다에서 촬영했는데, 폭설이 내리는 날에 배우들이 퍼포먼스 캡처 슈트를 입고 진짜 난투극을 벌였다. 최근 영화로는 아주 보기 드문 사례였다. 보통 눈 내리는 장면은 후반작업을 통해 만들어내기 때문에 맑은 날 촬영하거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뒤 CG 작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캐나다의 폭설이 내리는 환경에서 촬영했다는 건 라이팅 아티스트로서는 정말 축복이었다. 실제로 눈이 왔을 때 라이팅 조건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고 배울 수 있어서 굉장히 도움이 됐다.
-시각효과 전문가로서, 최근 업계의 화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앤더스 랭글랜즈_ <혹성탈출> 시리즈를 통해 유인원 캐릭터를 일정 수준 이상까지 현실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을 정말 인간다운 모습의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하는 건 아직도 시각효과 업계의 도전과제다.
임창의_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매 작품이 도전일 수밖에 없다. 영화마다 시각효과에 대한 아이디어와 기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라이팅 아티스트로서 향후의 도전과제가 있다면, 노이즈 문제에 대한 해결이 될 것이다. 현존하는 라이팅 기술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이 노이즈다. 지금으로서는 노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컴퓨터 프로세스를 이용해 오랜 시간 동안 계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라이팅, 렌더링 분야의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