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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월드> 웡춘 감독, 플로렌스 챈 작가 - 바로 지금, 홍콩의 초상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17-08-03

웡춘, 플로렌스 챈(왼쪽부터).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은 <메이드 인 홍콩>(1997) 등의 영화를 통해 분출되었다. 홍콩특별행정구가 설립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홍콩인들은 중국에 안착하여 뿌리를 내렸을까.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7월 26일(수)부터 8월 8일(화)까지 열리는 한국영상자료원의 특별전 <영화와 공간: 홍콩>은 크리에이트 홍콩(Create Hong Kong), 홍콩국제영화제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창조적 비전: 홍콩 영화 1997-2017’ 섹션과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 KOFA에서만 특별히 상영하는 ‘KOFA 특별 상영’ 섹션으로 나뉘어 총 17편으로 풍성하게 꾸려졌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웡춘 감독의 <매드 월드>는 부평초처럼 떠도는 바로 지금 홍콩인들의 피폐한 심리를 담아낸다. 과거의 상처로 조울증에 빠진 남자(여문락)가 자신을 버린 아버지(증지위)와 동거하는 이야기는 오늘날 홍콩의 초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매드 월드>로 대만금마장영화제, 홍콩금상장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홍콩영화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웡춘 감독과 제23회 홍콩영화평론가협회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한 시나리오작가 플로렌스 챈이 한국을 찾았다. 여기 홍콩인의 현재, 홍콩영화의 오늘을 더듬어 전한다.

-1997년부터 2017년까지 홍콩영화 20년을 돌아보는 기획전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오늘의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웡춘_ 영광이다. 나중에 정식 개봉도 할 수 있길 바란다. 홍콩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국 관객이 공감할 부분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플로렌스 챈_ 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뭔가 설교하는 대신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자신의 삶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가 되길 희망한다.

-같은 해 홍콩시티대학 크리에이티브 미디어 스쿨을 졸업한 동기다. 2012년 단편영화 <3월6일>도 함께 작업했다. 파트너로 함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웡춘_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일을 같이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건 행운이다. 홍콩에서 살기 위해선 어쨌든 파트너가 필요하다. (웃음) 나는 감독 지망이었지만 학교를 다닐 땐 기능을 나누지 않고 자주 협업했다. 졸업 후 영화 일을 할 땐 나도 작가로 출발했는데 크리에이트 홍콩이 투자한 제1회 장편영화 제작 프로젝트에 지원하면서 감독을 맡았다.

플로렌스 챈_ 나는 처음부터 시나리오작가 지망이었다. 학창 시절이나 단편 작업을 할 때는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앞으로도 감독을 할 생각은 없다. 내게 영화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좀더 개인적인 작업에 가깝다.

-<매드 월드>는 제목 그대로 미쳐가는 홍콩인의 초상을 그린다. 전직 애널리스트 퉁(여문락)은 조울증을 겪고 있는 걸로 설정되어 있다. 오늘날 홍콩이 미쳐가고 있다고 느끼나.

플로렌스 챈_ 정신병은 홍콩의 흔한 사회문제 중 하나지만 홍콩은 물론 대만, 중국에서도 금기시되는 주제다. 몇몇 영화에선 코미디나 스릴러 장르를 우회해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투자받을 때 그런 제약이 없어서 인물을 중심에 둔 드라마로 접근했다. 다큐멘터리적인 건조한 시선보다는 환자의 마음속 이야기를 다룬, 진짜 영화적인 표현을 하고자 했다.

-어머니(금연령)와 얽힌 아픈 기억들은 플래시백 형태로 작품 내내 파편화되어 지속된다. 이런 방식의 내러티브가 영화적인 표현 중 하나인가.

웡춘_ 그렇다. 영화의 중심에는 아버지 황 선생(증지위)과 정신병원에서 막 퇴원한 아들이 있다. 어머니의 기억은 어떤 형태든 계속 얼룩으로 남아 불쑥 치고 들어온다. 기억이란 건 그런 식으로 되살아나 현재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플래시백을 영화 전체에 활용한 첫 번째 이유다. 부자(父子)는 여전히 어머니라는 과거의 그늘 아래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상황을 대비시키기 위해서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돌보는 장면과 과거 아들이 어머니를 돌보는 상황을 대비시키고 싶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경험에 기대 누군가를 돌본다는 게 어렵다는 걸 느낀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하나의 통로인 셈이다.

-<매드 월드>는 ‘영화와 공간: 홍콩’이라는 기획전을 위해 제작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공간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변변한 창도 없는 닭장 같은 아파트 내부는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

플로렌스 챈_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영화의 캐릭터 중 하나다. 홍콩의 현실, 얼굴, 속내가 반영된 거라고 봐도 된다. 부자가 같은 방에서 함께 사는 건 홍콩의 흔한 현실이다. 문제는 그게 일상이 되다 보니 관계가 나빠져도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그냥 투명인간 취급하는 데 익숙해져버렸다는 거다. 타인과의 관계를 피하고 문제를 마주하려 하지 않는 게 지금 홍콩 사회의 문제다. 그 지점을 지적하고 서로를 돌아보도록 하고 싶었다.

웡춘_ 다큐멘터리 같다고 했지만 정확히는 홍콩의 현실보다 미화해서 그렸다. 실제 대다수 닭장 아파트들은 너무 작아서 카메라가 들어갈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폐교된 고아원을 빌려서 세팅을 했다. 애초에 계획했던 영화의 색깔은 훨씬 어둡고 무거웠다. 유명 배우들이 함께 해줬고 좀더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 최종적으론 조금 더 밝은 톤으로 접근했다.

-아파트 옥상도 흥미롭다. 마치 감옥 같기도 하지만 해방감도 느껴지는 기묘한 공간이다.

웡춘_ 의도를 정확히 읽었다. 옥상은 이 영화에서 유일한 해방과 안식의 공간이다. 홍콩에는 여가를 보낼 해변이나 공원 같은 공간이 없다. 그나마 하늘을 볼 수 있는 아파트 옥상은 작지만 유일한 쉼터다.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아기도 나오고 마지막 포옹도 여기서 이뤄진다.

-아버지 황 선생 역은 증지위, 아들 퉁은 여문락이 맡았다. 두 사람은 <무간도>(2002)는 물론 <흑백전장>(2005) 같은 작품에서 멋진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 더 인상적이다.

웡춘_ 원래는 독립영화로 만들고 싶었지만 좀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기에 대중적인 스타의 필요성도 느꼈다. 시나리오를 건넸을 때 감사하게도 두 배우 모두 흔쾌히 응해줬다.

플로렌스 챈_ 아버지 역할의 증지위 배우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염두에 뒀다. 아들 역할은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여문락 배우가 예전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어서 부자로 설정하면 아는 분들은 좀더 복합적인 관계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홍콩 감독이라고 하면 서극, 진가신 등 본토 자본과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허안화 감독처럼 지역의 정서를 강하게 드러내는 감독이 있다. 두 사람의 지향은 사회파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웡춘_ 모두 존경하는 감독님들이다. 나의 영화는 크게 보면 허안화 감독님의 작품 같은 로컬 시네마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누구의 길을 의식하고 따르진 않는다. 내가 생활하는 이곳에서 영감을 얻지만 이제껏 접한 적 없는 전혀 다른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목소리와 방식을 고민한다. 목표가 있다면 매번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화를 만드는 거다.

-쉽게 화해를 말하진 않지만 끝내 포옹을 한다. 홍콩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로 봐도 될까.

플로렌스 챈_ 부자의 포옹을 해피엔딩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다음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시도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고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홍콩 사회가 안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푸는 실마리도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홍콩의 노란우산혁명은 주변국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국의 일국양제와 동화정책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홍콩인들이 직접 마주하는 현실은 어떤가.

웡춘_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우산혁명이 일어났고 촬영을 시작할 때 마침 우산혁명이 끝났다. 영화 속 우울하고 무기력한 정서가 녹아있다면 아마도 우산혁명을 바라봤던 우리 젊은 세대의 마음일 것이다. 포옹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과거의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마주 본 끝에 언젠가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작은 씨앗을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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