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거의 십년 전의 일이다. 윗집에 사시는 어머니 친구분 딸이 나한테 공짜 영화표를 두장 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중 하나인 <슈퍼 마리오>의 주인공 마리오와 루이지 형제가 나오는 영화였다. 제목까지 확실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일이지만 신사동 낡은 극장의 몇 안 되는 좌석이 10의 1도 차 있지 않았던 것은 생생하다. 하지만 영화 내용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공룡이 나오고 소녀가 있었는데(공룡소녀였던 것 같기도 하다), 마리오 형제가 소녀를 도와 지구를 구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와 간짜장을 먹으면서 참 내용 없는 영화라고 성토대회를 열었다. 그 정도로 없던 내용이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기억날 리가 없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서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보편화된 지 오래다. 조금만 인기있는 만화는 재빨리 게임으로 만들어진다. TV애니메이션이 반응이 좋다 싶으면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곧 나오고 캐릭터 상품도 엄청나게 쏟아진다. <포켓 몬스터>의 경우 애니메이션이 너무 성공해버려서 원작이 게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어디에서나 함께>처럼 국내에는 원작 게임이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도 휴대폰 액세서리 시장에서는 선전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유독 맥을 못 춘다. 검증된 캐릭터성과 충성스러운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도 그렇다. <스트리트 파이터>나 <모탈 컴뱃>의 경우 그해의 최악의 영화라는 소리까지 들은 것은 물론이고 흥행에서조차 참담하게 실패했다. 역시 디지털 화면을 실사로 옮겨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임에서는 멋지게 보이던 것들이 실사로 옮겨지니 영 엉성하기만 하다.
하지만 기술적인 면이 상당 부분 해결된 뒤에도 게임 원작 영화는 성공하지 못했다. 게임 분위기를 잘 살린 <툼 레이더>는 어느 정도 인기를 누리기는 했지만, 수천개의 팬 사이트를 거느린 라라와 게임 <툼 레이더>의 인기와 비교하면 보잘것없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화이널 판타지>의 경우는 더욱 참담하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화이널 판타지>는 제작비만큼이나 적자를 내며 제작사인 스퀘어의 기둥뿌리를 뽑아놓았다. <화이널 판타지>의 실패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엉성한 스토리다. 게임에서는 스토리성을 잘 살리기로 정평있는 스퀘어다. <화이널 판타지>의 실패는, 인터랙티브성을 가진 게임의 스토리와 영화의 스토리, 그리고 연출은 전혀 다르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래도 게임의 영화화는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남코의 격투게임 <철권>이 미·일 합작으로 영화화된다는 소문이고, 역시 격투게임인 <데드 오어 얼라이브>, 건슈팅 게임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역시 곧 영화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미소녀 격투게임으로 유명한 <데드 오어 얼라이브>와 흉측한 쌍도끼 좀비들만 잔뜩 나오는 <하우스 오브 더 데드>를 같은 제작사가 영화로 만든다는 게 재미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은 플레이스테이션 사상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인 <바이오 해저드>(미국 출시명 레지던트 이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툼 레이더>를 벤치마킹했는지 밀라 요보비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3월 셋째 주 개봉수입 2위를 차지했으니 일단 흥행에서는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게임 캐릭터와 배경을 살리면서도 전혀 새로운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는지는 직접 보기 전에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