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이름의 드라마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SBS의 수·목 미니시리즈 <명랑소녀 성공기>. 그냥 인기가 조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방송 3주 만에 시청률이 평균 30%를 넘고 있으니 속된 말로 대박난 드라마이다.
사실 무슨 성공기라는 식의 제목은 예전 60∼70년대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끔 등장했던 스타일이다. 혹 <와룡선생 상경기>나 <쥐띠부인 억척기> 같은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해피투게더> <호텔리어> <애드버킷> 같은 영어 제목이나, <가을동화> 같은 서정적인 제목도 많은데 왜 하필 <명랑소녀 성공기> 같은 제목을 붙였을까? 드라마의 내용도 제목만큼이나 예스럽다. 시골에서 자란 꾸밈없고 밝은 성격의 소녀가 서울로 상경해 부잣집에서 갖은 설움을 겪으며 성공해 가는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신분차이’가 나는 대기업체 후계자와 사랑을 느끼고, 그의 약혼자로 세상의 아쉬움이 없는 ‘건방지고 안하무인’인 사장 딸로부터 갖은 구박과 수모를 당한다.
뭐, 이 정도면 21세기형 ‘콩쥐와 팥쥐’이고, 70년대 인기 만화였던 <쌍무지개 뜨는 언덕>의 리바이벌이다. 화장품 회사의 주도권을 둘러싼 암투, 눈요깃거리로 등장하는 포르셰, 볼보 같은 멋진 외제차, 여기에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보다 더 터프한 주인공의 친구가 드라마의 잔재미를 위해 포진했지만 기둥 줄거리는 그런 현대적인 포장에도 불구하고 고풍스럽다.
물론 드라마가 반드시 세련된 도회풍일 필요도 없고, 정교하고 세밀한 흐름과 치밀한 감정묘사를 지녀야 명작은 아니다. 때론 유치할 정도로 단순한 정서와 심리, 전통적인 전개방식이 오히려 더 깊은 감동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명랑소녀 성공기>가 그런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의 인기를 심하게 폄하한다면 그것은 주인공인 장나라 개인의 인기일 뿐이다. 솔직히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차양순 역을 맡은 장나라는 무척 매력적이다. 어떤 표정을 지어도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하는 귀여운 마스크와 비음이 조금 섞인 응석어린 목소리는 가까이 하기 힘든 먼 곳의 ‘스타’가 아닌 내일이라도 한번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친근함을 준다. 여기에 애써 예쁜 척하지 않는 소탈한 행동과 약간 어설픈 사투리 연기는 장년층한테 귀여운 딸 같은 애착을 갖게 한다. 결국 연기자의 카리스마와 재능 보다는 아이돌 스타로서의 개인기와 핀업성 매력이 드라마의 인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장나라의 매력을 싹 지우고 살펴보자. 빈자(貧子)에 대한 이유 없는 증오와 멸시를 보내는 부잣집 딸과 그런 수모를 그냥 삶에 대한 낙천적인 기대로 극복하는 시골 출신 가정부 소녀의 모습에서 극적 희열을 느끼는지? 백마 탄 왕자 대신 1억원이 넘는 포르셰 스포츠카를 탄 멋진 남자의 등장에서 드라마의 살아 있는 리얼리티를 발견하는지? 아니면 하룻밤 지새워 화장품으로 그린 포스터가 대상을 타고, 야구 배트를 그냥 휘두르기도 힘들어보이는 가냘픈 팔로 동대문 야구장에서 홈런을 때리는 모습에서 극적 반전의 묘미를 느끼는지….
이 시대의 드라마가 더이상 감동과 작품성이라는 예전의 잣대로 평가하기에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화상품이라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렇다고 해서 30대 중반을 넘은 필자 같은 사람이 초등학교 시절 만화 가게에서 봤음직한 그런 이야기를 드라마에서 접해도 무조건 즐거워해야 할 만큼 드라마의 가치가 전도된 것은 아니다. 스타 시스템이 막강해지고 음반과 캐릭터 같은 부대사업의 수익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결국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상큼하다는 표현이 너무 잘 어울리는 장나라의 미소를 접할 때마다 “이것이 이 드라마의 전부인가”라는 씁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한다. 김재범/ 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sport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