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people
<불온한 당신> 이영 감독, “혐오를 방치하면 사회 전반의 공기가 된다”

이영 감독의 <불온한 당신>(2015, 개봉 7월 20일)에는 한국의 성소수자를 향해 ‘불온하다’고 외치는 이들과 온갖 ‘불온함’에 정면으로 맞서 돌파해가는 이들이 있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1945년생 이묵은 ‘바지씨’다. LGBT라는 말조차 익숙지 않던 시절,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의 성적 지향을 달리 생각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칭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이묵의 인물다큐멘터리인가 싶었던 영화는 ‘동성애=종북, 빨갱이’로 만들어버리는 한국의 보수단체들의 집회 현장을 주목한다. 이어서 이영 감독은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대재앙 앞에서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게 된 이유로까지 영화의 품을 확장시킨다. 그곳에서 관객은 혐오 사회가 가져온 불온한 기류와 죽음에의 공포 앞에서 자신의 삶을 사수하려는 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묵의 인물다큐멘터리로 진행될 줄 알았던 영화는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혐오와 뿌리 깊은 종북몰이의 민낯을 보여주는 데로 이어진다.

=2012년에 기획해 2015년 9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한국경쟁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에서 상영됐다. 당시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종북세력으로, 성소수자들이 ‘종북 게이’로 여겨졌다. 적대와 혐오, 증오의 정치가 이어진 거다. 소수자인 당사자로서도 상당히 우려됐다. 사회가 보수화될수록 소수, 약자가 더 크게 위협받지 않나. 이런 식의 종북 몰이가 대체 어디로 향해 갈지 지켜봐야 했다. 존재와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런 이들을 거부하고 지워버리려는 또 다른 사람들. 그 사이에서 혐오의 프레임이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의 앞뒤에 출연해 집중도를 끌어올리고 인물로서도 흥미로운 이묵과는 어떻게 만났나.

=2009년 4월이었다. 2005년과 2007년에 10대 레즈비언 친구들의 이야기인 <아웃>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 친구들이 “30대에도 레즈비언 해요?”라고 묻더라. 세대간 교류가 전무했던거다. 불현듯 ‘선배 세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2008년부터 무작정 찾아다녔다. 관련 자료가 거의 없어서 옛날 신문부터 뒤졌다. 여성인데 운동을 했다, 택시 운전사였다, 여성들끼리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등의 기사를 찾았고 그걸 단서 삼아 무작정 찾아갔다. 가서 “나랑 비슷한 사람 본 적 있나?”라고 묻는 식이었다. 그때만큼 내 외모가 빛을 발한 적이 있었던가. (웃음) 또 “내가 바지씨 후배다”라고 말했을 때 바로 통하면 나의 선배인 거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발로 뛰어 60여분의 선배들을 취재했다.

-이묵은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했나.

=실은 개봉 준비를 하던 중에 선배가 돌아가셨다. 마음을 다잡고는 있는데 너무 죄송하다. 선배는 “성소수자 후배들에게 용기가 되고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내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나는 숨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내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후배 세대도 자신감을 갖고 살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선배는 한국 사회에서 가시화된 적 없던 ‘바지씨’로도 굉장히 특별한 존재였고 인간적인 매력 또한 대단한 분이다. 선배 자체가 성소수자의 역사이자 든든한 뿌리다. 노년세대의 성소수자 역사가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

-일본 미야기현에서 커밍아웃 후 자신들만의 결혼식을 올린 커플도 등장한다. 동일본 대지진을 겪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커밍아웃을 결정한 그들의 사연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울림이 된다.

=2012년 3월 11일 도쿄에서 <이반검열>을 상영하고 관객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순간 카페가 조용해졌는데 알고 보니 지진이 일어난 바로 그 시각이 돼 모두가 묵념을 한 것이다. 그때 대지진 이후 성소수자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듬해 후쿠시마로 무작정 갔다. 또 한번 “내가 성소수자인데 혹시 나랑 비슷한 사람 본 적 있느냐”며 성소수자들을 찾았다. 대피소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던 성소수자들은 운신의 폭이 더 좁아졌더라. 재난 시 가족만이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과 텐은 커밍아웃을 결심했던 거다. 비록 법적 보호는 받을 수 없지만 두 사람이 커플이라는 걸 주변에 알려둔 거다. 존엄한 그들의 선택이 내게도, 영화에도 하나의 지침이 돼줬다.

-성소수자에게 붙던 종북 딱지가 어느덧 세월호 유가족을 향할 때 영화의 고민은 또 한번 깊어진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3일 정도 지났을까. 진도체육관에 있는 학부모 중 종북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설마’ 하며 서둘러 진도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최소한 함께 슬퍼하고, 공동체에 같이 살고 있다는 걸 상기하는 기본적인 정서가 무너졌음을 목격했다. 자기 존재를 지키기 위한 성소수자들,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 논과 텐의 선택까지. 무관해 보이던 상황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찾고 싶었다. 혐오 세력의 공격이 소수자들만을 향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걸 방치하면 혐오는 사회 전반의 공기가 된다. 그렇다면 공존은 어떻게 가능할까. 내가 고민하는 지점이다.

-2001년 여성영상집단 움을 만들어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겨왔다.

=여성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데 반해 미디어는 전형적인 여성만 보여준다. 진취적이고 복잡한 욕망을 지닌 여성들을 그리고 싶다. 특히 장애 여성,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처럼 비가시화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성소수자는 왜 성소수자 얘기만 찍나, 독립영화집단도, 영화집단도 아니고 왜 여성영상집단이냐, 왜 영화에 여성 캐릭터만 나오냐’와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새로운 여성 이미지를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받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페미니즘이 대세가 되는 미래’를 생각했다. 최근 페미니즘이 주목받은 뒤 비슷한 고민을 하는 관객, 동료들을 만나며 놀라고 있다. ‘우리가 생각한 미래가 온 것이냐!’며. (웃음)

-영화 상영하고 관객과 한국의 성소수자 문제, 레드 콤플렉스 등을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관객과의 대화를 준비할 때마다 긴장되고 공부할 것도 상당하다. 동성애 바로 알기 A to Z와 같은 인권 실태나 페미니즘 담론을 얘기하거나 영화의 미학적 부분을 깊이 논의하기도 한다. 결국 영화는 관객과 교감하는 지점을 찾아가는 거니까. 그런 접점이 만들어지는 자리는 더없이 중요하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