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파리 근교 몽트뢰이 시립극장 멜리에스 입구를 가득 메운 관객.
지난 6월 28일, 파리 근교의 몽트뢰이 시립극장 멜리에스에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의 극장 상영이 있었다. ‘소필름 페스티벌’(Sofilm Festival)의 일환으로, 특별상영 형식으로 예정되어 있던 파리지역 상영이 막판에 전격 취소되면서 수도권에서는 <옥자>를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상영이었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부근의 막스 린더, 샤틀레에 위치한 포럼 데 이마주 모두 이 무료 상영을 보이콧하자는 ‘특정 배급사들의 분노’에 따른 압박에 못 이겨 취소 결정을 내렸다.
상영이 성사되기까지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시작 전부터 언론이 주목했던 ‘넷플릭스 영화’인 만큼, 좌우로 성향이 완전히 다른 <피가로>와 <리베라시옹> 모두 <옥자>의 파리 상영 취소를 흥미진진하게 보도했다. “<옥자>를 작은 화면으로 보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올해 칸영화제에 출품된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수작이다”라는 현지의 평과 칸영화제에서 이미 <옥자>를 접한 평론가와 전세계 언론의 높은 평점만으로도 대중의 기대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거기에 칸영화제 시작 전부터 전세계 넷플릭스 스트리밍 동시개봉이라는 새로운 포맷을 둘러싸고 일어난 공방으로 뜨거운 언론의 관심은 그 열기를 더해갔다.
봉준호는 이미 프랑스에서도 시네필과 대중이 ‘믿고 보는’ 감독으로 그의 신작 <옥자>는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왔다. 칸영화제의 비경쟁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의 전 프로그래머이자 <아르테TV>의 시네마 섹션 디렉터 올리비에 페르는 봉준호의 열렬한 팬을 자처하며 “그는 전세계를 통틀어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감독 중 한 사람이다. <살인의 추억>을 너무 늦게 접해 영화제에 초대하기엔 늦어버렸다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 2006년 <괴물>을 초청해 월드 프리미어로 칸영화제에서 소개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상영이 끝나자 기립박수와 환호가 쏟아지는 열띤 분위기 속에서, 봉준호가 주먹을 쥐며 승리의 표시를 해 보였는데, 프로그래머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고, 거기서 상을 탄다거나 하는 영화제의 ‘인정’이 필요치 않은 시네아스트다. 이미 봉준호는 유일무이하고, 결코 대체될 수 없다. 기존의 영화적 유산을 물려받으면서도,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장르영화의 뻔한 법칙을 비틀고 장르를 가로질러 기묘하게 재탄생시킨다. <괴물>은 한국에서 새로운 흥행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그 미학적 가치가 오히려 저평가된 영화다. 기술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자신의 인장을 찍어 세상에 영화를 내놓는 거장”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13년 11월, 프랑스에서 <설국열차>가 개봉할 당시 <그래비티>와 맞붙었음에도 파리 번화가 멀티플렉스에서는 연일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결국 <설국열차>는 기존 신기록이었던 <취화선>의 관객수를 뛰어넘으며 총 100만명이 넘는 프랑스 관객과 극장에서 만났다.
감독 봉준호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시네필을 포함한 대중의 <옥자>에 대한 관심은 유례없이 뜨거웠다. 넷플릭스와 관련한 논란, 연달아 발표된 상영 취소는 오히려 더욱 <옥자>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멜리에스 극장 측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을 예상해 2개 상영관을 확보하여 총 600석을 준비했고, 오후 8시30분 상영에 당일 오후 2시부터 1인당 2석씩 표를 배부한다는 이야기가 무색하게 몰려온 사람들이 오후 2시 이전부터 줄을 서 매표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모든 자리가 동이 났다. 애써 기다렸으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혹시라도 남는 자리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에 오후 7시부터 극장 주변에 몰려들었다. 수십명은 됨직한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순번을 정해 끝까지 기다림을 이어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혹시라도 남는 표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로 기다리던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서로 최근에 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며 시간을 보냈다.
<옥자>에 응답한 프랑스 시네필들
<옥자> 상영을 앞두고 만난 멜리에스 시립극장 예술감독 스테판 구데는, <옥자>를 보이콧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배급사들에 맞서 극장 상영을 진행했음을 밝히며, “<옥자>는 영화를 본 다음 서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배급사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시네필들은 훌륭한 영화를 함께 누리고 나눌 권리가 있다. <옥자>는 진정으로 훌륭한 영화(grand cinema)인 만큼 영화관의 큰 화면(grand ecran)이 필요하다. <옥자>를 보고 나면 영화를 본 시간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칸영화제에서 처음 <옥자>를 본 이후, 극장을 빠져나와 러닝타임이 2시간인 이 작품을 두고 2시간 넘게 이야기해도 끝이 없었다. 올해 최고의 영화인 <옥자>에 칸영화제가 저지른 말도 안 되는 사건에 대해 관계자들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프랑스영화진흥위원회(CNC)는 <옥자>에 비자 넘버를 발급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영은 모두 무료다. 이렇게 일회적 행사로 진행되는 상영까지도 마치 일반극장 상영과 다를 바 없다며 날을 세우는 태도에는 심각한 왜곡이 있다. 단지 1회에 불과한 무료 상영으로 배급 시스템이 큰 타격을 입고 당장 망하는 건 아니다. 결국 이 논란들은 넷플릭스를 무료로 널리 알려주는 효과만 줄 뿐이다”라며 뼈있는 발언을 이어나갔다. 프랑스의 넷플릭스 가입자는 150만명을 육박하고 있으며 그 숫자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잡지 <그라치아>의 문화부장인 필립 아주리는 “나는 <옥자>를 진심으로 즐겼다. 할 말이 많은 영화다. 만약 후진 영화였다면 이런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넷플릭스의 영화이기 이전에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작가주의 영화감독 봉준호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이기 때문에 이렇게 논란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 배급사들이 칸영화제에 책임을 물으며 영화 산업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압박해왔지만 칸영화제가 지난 70년 동안 지속해온 상징적인 역할이 있다. 국적과 장르를 불문하고 가치있는 영화를 소개하는 것 말이다. 봉준호가 이전에 만든 모든 영화들이 보여준 특유의 미학이 한껏 발현된, 응집된 에너지로 가득한 직진하는 스토리의 <옥자>를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욕망이다”라고 의견을 전해왔다.
이날 멜리에스에 모인 관객은 <옥자>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쿠키 영상이 나올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영화관의 조명도 켜지지 않았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 봉준호의 여섯 번째 장편의 여운을 즐겼다. 쿠키 영상이 끝나자 드디어 영화관 내부에 불이 켜졌고, 누군가가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모두가 박수를 이어나갔다. 이윽고 한 사람이 치는 박수처럼 소리가 하나로 모였다. 한참을 이어진 박수 소리는 마지막 넷플릭스 로고가 나오자 환호로 바뀌었다. 살아 있는 전설인 지휘자가 유럽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들려줬던 브루크너 교향곡이 떠올랐다. <옥자>와 그 만듦새가 꼭 닮아 있기도 했다. <옥자>에서 그는 가진 모든 재능과 열정, 영화에 대한 사랑을 순수하고 담백하게 하나씩 쌓아올리며 얕은 기교 따위는 부리지 않고 세계를 빚어내 보였다. <옥자>는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봉준호 특유의 비틀린 유머와 미학적 고집,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는 리듬이 고스란히 빛나는 영화였다.
봉준호는 장르를 파괴하며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미덕을 잃지 않으면서도, 거대 자본과 산업이라는 벽에 맞서 온몸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돌파해나간 미자처럼 타협과 양보 없이 영화라는 예술에 온전히 자신을 던져왔다. 삼겹살, 등심, 안심, 항정살 등 부위별로 나뉘어 맛을 평가받는 <옥자>처럼 영화도 제7의 예술이 아닌 대기업의 자본이 주도하는 문화상품이 되어 제작비, 관객수, 2차 매체, 판권수익, 손익분기점 등으로 조목조목 나뉘어 난도질당하기 일쑤 아니었던가. 옥자를 구하러 서울로, 뉴욕으로 간 미자처럼, 봉준호도 자신의 영화를 가차 없고 가혹한 영화산업의 현실에서 구해내기 위해 미자처럼 넘어지고 부딪히며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구해주고, 서로에게 가장 절실한 미자와 옥자의 관계를 감독 봉준호와 그의 영화로 치환해도 될 것 같았다. 영화관에서 <옥자>를 만나기 위해 파리 동쪽 외곽까지 찾아와 반나절 넘게 기다릴 수 있는 시네필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는 이 사랑 이야기에 담긴 진심에 대한 뜨겁고도 열렬한 응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