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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홈커밍>과 MCU의 만남
김현수 2017-07-10

틴에이저 스파이더맨의 어벤져스 인턴십 후기

피터 파커가 돌아왔다. 자신이 스파이더맨으로 활약하던 뉴욕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가 돌아온 뉴욕은 <어벤져스>에서 어벤져스 멤버들이 외계 종족인 치타우리족과 싸우느라 쑥대밭이 된 후 재건된 뉴욕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세계에 드디어 입성한 스파이더맨에게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과거 소니/컬럼비아픽처스 시절의 영화보다 많은 제약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아이언맨을 비롯한 어벤져스 멤버들이 지구를 위협하는 전 지구적 범죄와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때 마블은 스파이더맨이 10대 청소년이라는 점을 이용하기로 한다. 아직은 뭐든 부족하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존재, 어른의 삶을 동경하며 꿈을 키워나가는 소년에게 슈퍼 파워를 부여하면 어떤 일이 생겨날까. 그것은 스파이더맨을 탄생시킨 작가 스탠 리의 고민과 일치한다. 1960년대 초에 이미 천편일률적인 무개성 히어로 양산에 진절머리를 냈던 스탠 리는 이전과는 뭔가 다른 히어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고민을 하다가, ‘왜 10대 캐릭터는 코믹스의 히어로가 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그리하여 탄생한 캐릭터 피터 파커가 수십년동안 인기를 얻었던 것. 그렇다면 MCU의 세계에 처음으로 10대 슈퍼히어로가 들어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스파이더맨: 홈커밍>(이하 <홈커밍>)은 마블의 치밀한 전략에서 시작한다.

천방지축 틴에이저 슈퍼히어로

MCU의 첫 10대 슈퍼히어로라는 관점에서 마블 스튜디오는 기존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신경 쓰지 않고 독자적인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리하여 가장 중요하게 부각된 스파이더맨의 특징은 당연하게도 피터 파커가 10대 청소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주로 외연을 확장시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처럼 무중력 상태의 싸움을 할 수도 없고, <앤트맨>에서처럼 분자와 원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도 없으며 <닥터 스트레인지>에서처럼 마법을 부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스파이더맨은 그저 뉴욕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로써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에서 자이언트 앤트맨과 함께 신선한 활력소가 되어주었던 스파이더맨은 MCU와 현실의 간극을 좀더 좁히는 존재로 기능한다. 스파이더맨의 전통적인 별명, ‘우리의 다정한 이웃’으로서 존재감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아재들이나 다름없는 기존 어벤져스 멤버들에 비하면 새로 합류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수다스럽고 매사에 신중하지 못하고 덜렁대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10대 소년이다. 그러한 모습은 <시빌 워>에서 자이언트 앤트맨과 함께 깜찍한 활약상을 선보이던 모습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어벤져스 멤버들과는 다른 무게감과 성격을 지닌 히어로. 이 지점에서 단 두편의 장편 저예산 장르영화를 연출한 존 와츠 감독은 자신이 <홈커밍>의 연출자로 캐스팅됐을 때 다음의 두 가지 룰을 지켜가면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첫째, 피터 파커를 고등학생 신분으로 유지시키는 것이었고 둘째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스파이더맨의 활약상을 담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의 느닷없는 부름을 받고 독일까지 날아가 캡틴 아메리카 등과 전투를 벌인 피터 파커의 일상은 공항 전투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된다. 그 이전까지 피터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듯이, 누군가의 다정한 이웃으로서 동네에서 잃어버린 고양이나 찾아주고 좀도둑이나 때려잡는 정도의 소소한 히어로의 활약상에 재미를 붙이며 살던 터였다. 그런데 아이언맨의 부름을 받은 뒤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어벤져스 멤버들이 보여준 미션의 규모와 매력은 진짜 슈퍼히어로, 즉 어른들의 삶 자체였다. 이러한 일상의 변화가 <홈커밍>의 시작점이다. 그길로 피터는 메이 숙모(마리사 토메이)에게는 비밀로 한 채 스타크 인턴십에 참여한다는 명목으로 이전과는 다른 규모의 히어로 활동을 시작한다.

미드타운 과학고에 다니면서 화학과 같은 과학 분야에 능통하고 예쁜 여학생에게는 제대로 말도 걸어보지 못한 채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평범한 학생 정도로 묘사되는 피터 파커의 모습은 이전 시리즈를 비롯한 원작 코믹스에서도 그대로 묘사되는 그의 오리지널리티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토비 맥과이어가 <스파이더맨2>에서 훌륭하게 묘사했던 청년 실업자로서의 면모나 혹은 과학자 아버지의 비밀을 캐기 위해 거대 화학기업을 상대로 활약했던 앤드루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피터와는 외향도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톰 홀랜드 버전의 피터 파커는 매사에 보다 적극적이고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캐릭터다. 물론 이성 관계에서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언맨의 부름을 받은 피터가 또래와 생활하는 학교생활을 하찮게 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동경의 대상이 생겨버렸고 아이언맨이 선물해준 슈트를 입고 자신이 담당하지 못할 범죄 소탕에 욕심을 내기 시작한다. 피터가 친구 네드(제이콥 배덜런)의 도움을 받아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제한되어 있던 슈트의 기능을 해킹한 뒤, 위험한 기능을 시험해보는 모습 등이 피터의 심리 변화를 대변하는 장면들로 등장한다. 이전 시리즈를 비롯해서 원작에서도 다뤄왔던 피터의 사진 재능, 이를테면 프리랜서로 활약하는 신문사 데일리 뷰글에 관한 묘사나 에피소드 등은 과감하게 거둬내고 학기 말에 다가올 ‘홈커밍 데이’를 준비하는 10대 소년의 일상 묘사에 집중하는 것도 이번 영화의 특징이다.

이런 영화의 특징 내지는 변화의 지점은 마블이 존 와츠 감독을 기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뒤이어 다루게 될 영화 안팎의 이스터 에그를 소개하면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존 와츠 감독은 나이 어린 세대의 위험한 도전 또는 현실 참여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그의 전작인 <캅카>(2015) 역시 우연히 경찰차를 절도한 소년들이 도로를 질주하며 총을 손에 쥐게 되면서 벌어지는 처참한 비극을 다루고 있다. 그런 면에서 존 와츠 감독은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에 오토바이를 즐겨 타며 일탈을 즐기던 순간의 기억, 또 화학을 특히 좋아해 매일 수많은 공식과 씨름해왔던 자신의 10대 시절 모습을 피터 파커에게 상당 부분 투영했다. <홈커밍>은 마블 스튜디오의 새로운 고민에 딱 부합하는 어린 히어로의 성장담을 보여주고 있다.

피터 파커의 고민은?

<홈커밍>에서는 전통적으로 스파이더맨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고민들, 예를 들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며 자신을 다잡아주던 벤 삼촌을 향한 피터의 죄책감도 과감하게 리뉴얼됐다. 샘 레이미마크 웹 감독 모두 전통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인장과도 같은 묘사를 과감하게 MCU화해버린 것. 대신에 <홈커밍>의 피터는 어떻게든 아이언맨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 자꾸 엄청난 범죄 현장을 찾아간다. 사실 이전 시리즈를 비롯한 원작 코믹스에서 피터는 벤 삼촌을 향한 죄책감과 더불어 메리 제인과 해리 같은 친구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며 그것이 자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홈커밍>에서는 피터의 주변 인물 관계도의 기본 뼈대만 남긴 뒤 피터의 뇌구조를 오로지 아이언맨을 향한 일편단심 모드로 전환해버린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모르고 빨리 인정받고 싶어서 범죄 현장에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사건을 더욱 키우고 마는 에피소드 등이 어설픈 10대 히어로의 치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아이언맨이 피터를 향해 자꾸 그렇게 능력 밖의 일을 벌이면 슈트를 압수하겠다고 하자, “슈트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리광 부리는 설정으로 변형됐다. “슈트를 입기 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더더욱 슈트를 입지 말아야 한다”는 토니 스타크의 꾸지람이 곧 10대 소년 피터 파커의 어깨를 짓누르는 고민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전 시리즈에 비해 캐릭터의 깊이나 고민이 너무 가벼워졌다고 볼 수도 있다. 시종일관 유쾌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마블의 고민도 함께 느껴지는 대목이다.

뉴욕 재건 이후 악당들의 분노는 어디로?

최근 마블 스튜디오가 재미있는 발표를 했다. 사실 피터는 어벤져스 멤버들이 활약하던 시대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 세대라며 <아이언맨2>에서 아이언맨이 구해준 어린아이가 피터 파커라고 공식적으로 카메오 출연을 인정했다. 피터가 살아가는 뉴욕은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이 공존하는 뉴욕이다. 이런 상황에서 히어로와 대적할 악당은 어떤 이유로 나쁜 짓을 일삼아야 할까. <홈커밍>에서 피터 파커의 변화와 더불어 영화의 또 다른 축을 맡고 있는 악당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사실, <홈커밍>은 피터 파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악당 아드리안/벌처(마이클 키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피터 파커가 머무는 뉴욕의 현재는 어벤져스의 활약 이후 초토화되었다가 재건하게된 뉴욕 사회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이 그날 희생됐고 또 살아남았다.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는 데 많은 민간 건설업체가 투입되지만 외계물질 등 보안상의 이유로 무작정 민간 기업에 맡길 수도 없는 상황. 결국 이 와중에 희생자가 나오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아드리안이다. 어떤 이유로 한순간에 일자리를 뺏기고 거리로 내몰린 건설업자 아드리안은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범죄의 소굴로 발을 들이고 악당 벌처로 거듭난다. 피터가 상대하게 될 인물은 바로 스파이더맨을 향한 복수심이 아니라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복수심으로 가득한 벌처인 것. 피터에게는 동네 좀도둑이 아니라 거대 범죄를 꾸미는 벌처를 소탕하는 것이 곧 스타크 인턴십에 합격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영화는 피터와 벌처의 대결을 통해 진정한 히어로로서의 삶을 깨닫게 하는 한편, MCU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일반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면서 이 판타지 세계를 보다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주력한다.

이와 같은 현실적인 악당의 설정과 더불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전통적인 액션이라고 할 수 있는 활강의 쾌감이나 스펙터클에 치중하는 액션 장면 등을 극히 줄이고 보다 현실적인 규모의 액션을 추구한 것 역시 MCU에 합류하는 스파이더맨을 향한 배려이자 전체 세계관을 조율하고자 하는 마블의 전략일 것이다. 맨 처음에 이야기한 대로, 작가 스탠 리가 스파이더맨 캐릭터를 탄생시킨 이유이자 지금껏 스파이더맨이 수십년 동안 사랑받았던 이유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스파이더맨은 MCU가 아니라 진짜 현실에서 슈퍼히어로가 등장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작가의 전략이 만들어낸 캐릭터다. 그리고 코믹스의 주 독자층이었던 10대들의 공감대를 공략한 맞춤형 10대 슈퍼히어로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스파이더맨이 수십년 동안 대중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유다. 결국 <홈커밍>은 스파이더맨을 MCU에 합류시킴으로써 이 견고한 세계가 지금껏 꾸준하게 지키고자 했던 그럴싸한 판타지 세계 MCU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 전략의 성공 사례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거기에 더해 얼마 전 서울에서 열렸던 <홈커밍> 내한 기자간담회 말미에 존 와츠 감독이 황급하게 한마디 덧붙인 점이 <홈커밍>의 매력과 의미를 잘 설명해주는 듯하다. 존 와츠 감독은 “스파이더맨은 슈트를 입기 전의 모습 또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언맨을 통해 깨닫게 되고, 아이언맨 역시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 어벤져스 임무에 투입시켰던 스파이더맨을 통해서 자기 나름의 책임을 지게 되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했다”라며 <홈커밍>의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의 관계를 정리했다. 슈퍼히어로영화와 틴에이저 성장 드라마의 성공적인 결합을 통해 마블은 우주로 뻗어나갈 MCU의 세계를 견고하게 다져나감과 동시에 또 한번 스파이더맨 액션 피겨를 팔아치울 수 있는 근사한 목적을 달성했다. 10대 슈퍼히어로와 MCU가 만나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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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니픽처스